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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 국국의의...' 문희상 의장의 뼈 있는 사자성어 사랑

입력
2018.07.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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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야당의 입장, 소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보겠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쌈짓돈이 어디 있나.”

여의도에 때아닌 사자성어 열풍이 불고 있다.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의 유별난 한자 사랑 덕분이다. ‘무신불립’과 ‘역지사지’ 정신을 강조한 취임 일성을 시작으로, 문 의장은 취임 한 주 만에 무려 13개의 사자성어를 입에 담았다.

이 같은 문 의장의 ‘사자성어 사랑’은 사실 예견됐던 일이다. 문 의장은 무인풍의 외모와는 달리 서예와 한문에 조예가 깊기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서예 모임인 서도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동료 의원들에게 직접 쓴 글씨를 선물로 건넨 적도 많다. 심지어는 국회의사당 지하 통로에도 문 의장의 글씨가 걸려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글씨가 국회의사당 지하 통로에 전시되어 있다. 이의재 인턴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의 글씨가 국회의사당 지하 통로에 전시되어 있다. 이의재 인턴기자

벽면에 나란히 걸린 문 의장의 글씨는 각각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태산은 한줌의 흙을 사양하지 않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취임 전부터 협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온 ‘대화의 달인’다운 문구 선택이다.

문 의장이 가장 애용하는 사자성어는 단연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무신불립은 본래 논어 안연편에서 등장하는 고사로, ‘국가는 국민의 신뢰 없이 바로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문 의장은 여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국회가 산다’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문 의장은 지난 17일 오전 현충원 방문 때도 방명록에 ‘무신불립 화이부동(無信不立 和而不同)’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국회, 차이를 존중하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풀이된다.

지난 제헌절 경축사에서는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이라는 독특한 문구를 꺼내 들기도 했다. 청와대와 여야, 언론이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만 한국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날 언급한 신조어 ‘국국의의(國國議議)' 역시 ‘나라다운 나라는 국회가 국회다워질 때 완성된다’는 의회주의자로서의 신념을 담고 있다. 이날 문 의장은 두 한자어를 발판 삼아 연내 개헌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문 몇 자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문 의장의 화법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의재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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