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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가 사는 세상] 지옥까지 체험해 본 듯...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스크린 조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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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신과 함께’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니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옥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고,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도 막막하니까. 급기야 ‘대표님이 지옥에 갔다 와서 알려 달라’고 하더라.”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가 들려준 이야기다.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당시엔 무모한 도전이었다. 국내 기술로만 판타지 영화를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따라다녔다.
다행히 제작자가 직접 지옥을 체험해 볼 일은 없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상상 속 세계를 창조한 김용화 감독과 그가 이끄는 시각효과회사 덱스터 스튜디오(덱스터) 덕이다. 이들이 바로 ‘지옥의 조물주’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빚어낸 지옥은 황홀했다. 관객들은 앞다퉈 지옥행 티켓을 끊었다. 지난해 말 개봉한 1편 ‘죄와 벌’은 순식간에 1,440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전역의 박스오피스도 휩쓸었다. 2편 ‘인과 연’도 개봉(8월 1일)을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다.
‘신과 함께’ 시리즈뿐 아니다. 덱스터의 세공술은 곳곳에 스며 있다. ‘독전’(2018)과 ‘조작된 도시’(2017)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을 비롯해 중국 영화 ‘쿵푸요가’(2017)와 ‘몽키킹’ 시리즈(2014~2018)에서도 CG는 ‘메이드 바이 덱스터’였다. ‘신과 함께’ 1편과 같은 시기에 경쟁했던 ‘1987’도 덱스터가 참여한 작품이다. 나란히 극장에 걸린 두 영화를 보며 덱스터 CG 팀의 정석희(49) 부장과 강원철(36) 과장은 흐뭇한 웃음을 함께 나눴다. 우산과 짚신, 둘 다 잘 팔리는 일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신과 함께’ 1, 2편과 ‘1987’을 각각 책임진 CG슈퍼바이저다.
CG가 창조한 신세계
CG슈퍼바이저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알기 위해, 우선 영화 제작 과정부터 살펴봐야겠다. 콘셉트 아트 작업이 시작이다. 시나리오에 묘사된 주요 공간들, 이를테면 살인지옥(불)과 나태지옥(물) 불의지옥(얼음) 천륜지옥(모래) 같은 곳들이 어떤 물성을 갖고 있고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보는 단계다. 불의지옥만 해도 수천 장을 그리고 또 그렸다. 이 이미지를 토대로 영화 세트가 지어진다. 엉성하면 안 된다. 세트가 정교해야 후반 작업 때 CG가 잘 어우러진다. 촬영이 끝나고 색보정까지 마친 1차 편집본이 나오면 그때부터 CG팀이 본격 가동된다. 지휘권도 CG슈퍼바이저가 이어받는다.
사자가 밀림에서 울부짖는 장면을 CG로 만든다고 해 보자. 첫 공정은 매치 무브(Match Move)다. 카메라로 찍은 영상에서 나무, 바위, 땅 같은 사물의 위치와 카메라 움직임을 계산해 데이터화한다. 카메라의 눈을 따 와서 가상의 3D 카메라를 만든다고 이해하면 쉽다. 이 가상의 3D 카메라에 맞춰 사자 애니메이션에도 움직임을 준다. 털에는 색감과 재질이 입혀지고, 전체적으로 빛과 음영이 삽입된다. 입김도 넣을 수 있다. 수차례 수정 보완도 거친다. 이렇게 완성된 3D 데이터를 2D로 변환해 마지막으로 실사 영상에 얹어 합성하면 완성. 우리 눈앞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린다.
CG에 참여하는 세부 파트는 총 11개. 전체 인원은 평균 70명. 많을 때는 100명까지 작업에 투입된다. CG슈퍼바이저는 이 모든 과정을 지휘, 조율, 확인, 조정하는 컨트롤타워다. ‘CG 감독’인 셈이다. 두 번째 역할은 파이프라인 설계다. 어떤 CG 프로그램을 쓸 것인지,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가공해서 적용할 것인지, 전체 작업 공정을 세팅하고 결정해야 한다. 각 파트가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국 CG 어디까지 진화했나
정석희 부장과 강원철 과장은 실력자들이 포진한 덱스터 내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 CG슈퍼바이저다.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정 부장은 미술 스태프로 영화 일을 시작해 게임회사 등을 거쳐 덱스터에 합류했고, 정 부장을 멘토로 여기는 강 과장도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내공을 쌓았다. 국내 CG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두 사람이 크게 기여했다. 최소한 한국 영화 CG를 두고 조악하다는 평은 나오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CG라고 해 봐야 달리는 자동차의 창 밖으로 보이는 배경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국가대표’도 2009년 개봉 당시 CG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지금 보면 살짝 부끄러워진다.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본 정 부장의 체감 변화는 더 크다. “2006년작 ‘구미호 가족’ 작업에 참여했어요. 그때 우리 기술로는 여우 CG를 못 만들었어요.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하나 만드는 것도 벅찬 작업이었어요. 완성된 CG도 어색해서 차라리 특수분장이 낫겠다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뭐, 털 달린 동물은 쉬운 축에 속해요. 털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잘 나올 수가 없어요(웃음).”
덱스터의 시작도 ‘털’이었다. 김 감독은 ‘미스터 고’(2013)에서 고릴라 야구선수에 도전했다. “2년 반 동안 털만 팠다”더니 진짜 털의 질감이 살아났다. 비록 흥행은 못했지만, 그때 경험과 기술이 덱스터의 뼈대가 됐다. 그 뒤 몇 년, 덱스터는 아시아 최고 CG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80개 이상이다. 그 기술로 ‘신과 함께’의 스펙터클을 빚었고 ‘1987’의 감동을 연출했다.
‘신과 함께’ 2편은 CG에 더 힘을 줬다. 바다괴물과 공룡도 등장한다는 귀띔. 정 부장은 “물과 불, 회오리바람 같은 자연 현상을 자연스럽게 연출하기가 가장 어려운데 그중 단연 어려운 게 물”이라며 “물과 동물이 동시에 나오는 바다괴물 CG가 그래서 특히 자랑스럽다”고 했다.
‘1987’에선 민주화 열망으로 가득 찬 시청광장 시위 장면에만 한 달 이상 공력을 쏟았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던 장면에도 CG의 손길이 닿았다. 강 과장은 “풍선에 가짜 피가 흐르도록 한 뒤 그 모습을 촬영해 CG를 만들었다”며 “가슴 아픈 장면인 만큼 더 진실하게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테일 1%를 위해 전력투구
국내 CG 기술은 할리우드를 거의 따라잡았다.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면 디테일이다. “할리우드 CG가 100%라면 저희도 90%까지는 해요. 거기서부터 1% 싸움인데, 그 1%에 90%만큼의 돈과 시간이 들어요. 할리우드는 2억달러짜리 영화를 만들면 그중 CG 비용만 1억달러를 써요. 대충 따져도 1,000억원이죠. ‘신과 함께’는 고작 100억원 들었어요.”(강 과장) “그래서 사전 계획이 더 철저해질 필요가 있어요. 세트도 한층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고, 모션 캡처 같은 작업에도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기술로도 더 훌륭한 CG를 만들 수 있어요.”(정 부장)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CG는 여전히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매번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과거엔 월급을 못 받거나 아예 회사가 망하는 일도 허다했다. 강 과장은 “눈물 날 것 같다”고 농담을 보탰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이잖아요. 공정으로 따지면 불량률이 높은 셈이죠. 마감일은 정해져 있는데 그에 맞추지 못하면 월급이 안 나와요. 출근할 차비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유능한 인재들이 대우가 더 나은 게임업계로 몰렸다. 연간 관객 2억명으로 영화 산업 규모가 커진 요즘도 마찬가지다. 정 부장은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CG 기술자가 되고 싶은데 그 일이 무엇인지 부모님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신과 함께’를 보여 드렸더니 바로 지지해 줬다면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CG 기술의 진보는 콘텐츠부터 제작 시스템까지 한국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두 사람은 “기술과 예술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탠리 큐브릭(‘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만든 SF 영화의 선구자) 감독이 위대한 건 1960~1970년대 기술 수준에서 그런 상상력과 이미지를 창조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그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훨씬 더 위대해졌을 겁니다.”(정 부장) “예술이 기술에 자극을 주고, 기술이 예술을 이끈다는 말이 있어요. 저도 미술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기술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죠. 기술이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은 이제 없을 거라 생각해요.”(강 과장)
두 사람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에도 한계가 없다. 강 과장은 게임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처럼 다양한 디지털 크리처가 뛰노는 판타지 영화를, 정 부장은 ‘고질라’ 같은 괴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머지않아 관객들이 이 영화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스태프의 물건] ‘연습장’으로 생각 정리하고 ‘스마트폰’으로 소통하고…
CG 전문가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도 고가의 컴퓨터 장비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강 과장은 ‘연습장’을 꺼냈다. “수학적 아이디어를 풀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연습장에 기록해요.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죠. 최근 두 달 동안 끙끙 씨름하던 문제가 있었는데 그저께 드디어 해결했어요. 혼자 환호성을 질렀어요.”
정 부장에겐 ‘스마트폰’이 가장 중요한 도구다. 업무상 소통을 모바일 메신저로 하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도 기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후배들이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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