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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주방에 전용소화기? 처음 듣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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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부터 다중이용시설에
주방화재전용 소화기 의무화
홍보 부족해 대부분 모르거나
기존 업소엔 소급 적용 안돼
강남 일대 식당 20곳 조사
비치된 곳 없고 “그게 뭐냐” 반문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치킨집에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 안 식용유에 불이 붙었다. 현장에 있던 종업원(33)이 주방 안에 있던 빨간 소화기를 들고 초기 진화를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식용유 화재에 효과가 적은 ‘분말소화기’여서다. 화마(火魔)는 80만원 상당 재산 피해를 내고 사그라졌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6월 ‘소화기구 및 자동소화장치의 화재 안전기준’이 개정되면서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불특정다수 이용업소)에서 K급소화기(주방화재전용 소화기)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실제 음식을 조리하는 현장에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홍보가 부족해 대부분 모를뿐더러, 기존 영업하던 업소에는 새 기준이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방(Kitchen)의 앞 글자를 딴 K급소화기는, 뜨거운 기름 표면에 순간적으로 막을 만들어 공기 접촉을 차단하기 때문에 식용유 화재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대개 은색 스테인리스 외관을 하고 있어, 빨간 소화기와 구분된다. 식용유에 불이 붙는 주방 화재의 경우 ‘물’이나 ‘분말 소화기’는 화재 진압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불과 기름이 한 공간에 있는 주방에는 항상 화재 사고 위험이 상존해 적절한 소화기 설치가 필수다. 19일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서울에서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 3,555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건 음식물 조리 중 부주의(1,351건)다. 실제 전국에서 발생한 주방 화재 건수는 2013년 4,180건, 2014년 4,352건, 2015년 5,297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16일 오전 한국일보 취재진이 강남구 일대 식당 20곳을 찾아 ‘K급소화기를 비치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들어본 적 없다’는 반응이었다. 간혹 ‘들어본 적 있다’는 대답도 있었으나 구비는 하고 있지 않았다. K급소화기 비치는 전무 수준이었다.
점심 영업을 앞둔 신논현역 인근 치킨집 가스레인지 위에는 식용유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직원에게 ‘K급소화기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소화기는 저기 있다”고 빨간색 분말 소화기를 가리켰다. 이 식당 주인은 “다른 요식업자들이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 정도라고 하길래 굳이 살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튀김요리가 많은 중식당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남역 인근 한 중국집 주인은 “K급소화기? 그런 소화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게 뭐냐”고 반문했다. 오전 11시50분쯤 직장인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홀이 금세 꽉 찼다.
강남소방서 이영한 화재조사관은 “기름이 많은 주방에서 불이 났을 때 깜짝 놀라 물을 뿌리는 경우가 많은데, 유증기(기름을 품은 수증기)가 팽창하면서 불길이 치솟아 더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절대로 물을 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름을 담은 프라이팬 위에 불이 붙었을 때 분말 소화기는 기름 안쪽의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없다”며 “잠깐은 꺼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불길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소급 적용 여부와 관계 없이 식당은 K급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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