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이형주의 동물에 대해 묻다] 가족 여행인 줄 알고 좋아서 따라나섰을텐데…

입력
2018.07.20 16:00
수정
2018.07.20 20:59
12면
지난해 여름 강원도 강릉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인을 잃은 채 화단에서 우왕좌왕하던 강아지를 구조해 새 가족을 찾아주었다. 어웨어 제공
지난해 여름 강원도 강릉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인을 잃은 채 화단에서 우왕좌왕하던 강아지를 구조해 새 가족을 찾아주었다. 어웨어 제공

“아이고, 이거 개 또 버리고 갔네. 이번 주만 벌써 몇 번째야.”

지난 해 여름, 강원도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화단에서 우왕좌왕하던 강아지를 발견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경계심을 보이는 녀석을 어렵게 안아 들고 휴게소 관리소에 찾아가자 직원들은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1주일에도 몇 마리씩 버려지는 동물들을 감당하지 못해 벌써 휴게소 직원들이 한 마리씩 입양했다고 했다. 막 목욕을 시켰는지 딸기향 샴푸 냄새를 풍기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안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결국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과 논의해 일정 기간의 공고기간 후 서울로 데려왔다. 다행히 지금은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유기동물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연례행사처럼 들려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유기동물 10만2,593마리 중 30%가 넘는 3만2,384마리가 여름철인 6월부터 8월에 버려졌다.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줄 알고 좋아하며 집을 나섰을 텐데, 갑자기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동물의 마음을 생각하면 버린 사람이 아닌데도 미안하다.

지난해 발생한 유기ㆍ유실동물 중 주인에게 반환된 동물의 숫자는 14.5%에 그친다. 절반이 넘는 숫자가 보호소에서 폐사했거나 안락사 당했다. 보호소로 인계되지 않고 로드킬 당하거나 부상, 질병으로 길에서 목숨을 잃은 동물들도 있을 것이다.

동물이 고통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버리는 것인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동물 유기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유기했을 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데, 그나마도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벌금형과 달리 과태료는 행정처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물을 유기하는 현장을 목격했거나 증거가 있어도 경찰에 수사를 요청할 수도 없다. 동물유기 적발과 과태료 부과의 의무가 있는 지자체는 수사권이 없고 전담인력이 부족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는 동물 유기를 일일이 단속하기 어렵다. 반면 해외의 경우 동물유기 시 영국에서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미국 뉴욕 주에서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활동가들이 경기 이천 덕평휴게소에 '반려동물을 유기히자 말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어웨어 제공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활동가들이 경기 이천 덕평휴게소에 '반려동물을 유기히자 말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어웨어 제공

처벌 수위가 낮아서일까. ‘동물 유기는 범죄’라는 사실에 무감각해진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동물농장에서 보면 버려도 다 키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키우지 못하게 된 동물을 받아주지 않으면 길에 버리겠다”는 반 협박조의 전화도 간혹 걸려온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전국 휴게소와 관광지에 동물을 유기하지 말라는 내용의 포스터와 현수막을 부착하고 있다. 일부러 먼 곳까지 와서 동물을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생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현수막을 보고 한 번 더 생각해달라는 바람을 담았다.

지난 해 유기동물 구조와 처리에 쓴 사회적 비용은 150억원이 넘는다. 반려동물의 생산, 판매의 규제부터 소유자의 책임 강화와 유기 시 처벌 규정까지, 모든 단계에 걸친 철저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 평소 동물복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ask@aware.kr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질문 가운데 선정해 이형주 대표가 답해 드립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