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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금 표시대로 차 몰다간 역주행… 못 믿을 구조물 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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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 충돌 방지 위한 차량진행 방향 표시
대부분 뭔지 모르고, 틀린 게 많아 ‘알아도 병’
엉뚱한 방향 유도 등 서울 시내 오류 수두룩
강변역 아차산로는 84개 중 82개나 ‘거꾸로’
도로ㆍ시설물 감독 주체 각각… 관리 안돼
만약 누군가 사진 속 빗금이 지시하는 대로 차를 몬다면 대형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빗금의 모양이 역주행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빗금을 잘못 칠한 관할 기관의 명백한 잘못이지만 다행히도 운전자들이 그 의미를 모르는 덕분에 사고가 나지 않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알고 보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도로안전시설에 관한 이야기다.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표시 아닌가요?” 17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에서 만난 조성민(34)씨는 도로 중앙 교각에 설치된 노란색과 검은색 빗금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다. 눈에 잘 띄는 모양과 색깔로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건 맞지만 빗금의 모양으로 차량 진행 방향을 지시, 유도함으로써 구조물과의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빗금의 주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운전하다 보면 흔히 만나는 이 빗금은 도로안전시설 중 하나인 시선유도시설로 정식 명칭은 ‘구조물 도색’이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구조물을 왼편에 두고 차량이 진행하는 경우 빗금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해야 한다. 반대로 오른편에 구조물을 두고 진행할 경우 빗금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한다. 즉, 빗금 아랫부분이 차량이 지나는 도로 쪽을 가리키는 형태가 되어야 맞다.
그러나 한국일보 ‘View&(뷰엔)’팀이 살펴본 서울시내 주요 도로의 구조물 도색 중에는 빗금의 방향이 잘못된 경우가 수백 건에 달했다. 특히, 지하철 2호선의 지상 구간인 한양대역부터 강변역까지 이어지는 아차산로의 경우 도로 중앙 교각에 설치된 84개의 구조물 도색 중 82개의 빗금 방향이 거꾸로 돼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창동역~당고개역 구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엉터리 구조물 도색은 서대문구 홍제교차로, 성북구 정릉교차로, 용산구 북한남삼거리, 마포구 광흥창역사거리 등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흔하게 발견됐다. 구조물 도색 외에 각종 교통 표지판 오류도 다양하고 흔했다.
사고를 유발하는 엉터리 안전시설이 도로를 점령한 것보다 더 황당한 점은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서울시를 비롯한 관리 주체들이 문제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하철 지상구간 시설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연 2회 정기적으로 시설물 점검을 하고 있지만 구조나 안전에 집중하다 보니 빗금 표시 오류는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내년 예산을 책정해 전면 수정하기로 내부에서 결정했다”고 18일 알려 왔다.
도로안전시설의 일관성 있는 설치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시설물마다 관리 주체가 복잡하게 나뉘어 있는 탓도 크다. 대형 교량이나 고가도로의 경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 관할이지만 지하철은 서울교통공사, 순환도로는 서울시설공단, 일반도로는 권역별 도로사업소가 관리하다 보니 업무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안전총괄본부 관계자는 용산구 한남1고가의 구조물 도색 오류에 대해 문의하자 “해당 도로를 관리하는 서부도로사업소에 문의하라”고 했다가 뒤늦게 “2016년 구조물 도색을 할 당시 작업자들이 실수로 잘못 도색한 것으로 보인다. 빠른 시일 내에 시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통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도시교통본부는 “조치가 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서둘러 파악한 후 지도 감독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조물 도색을 비롯해 각종 교통 관련 표시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 온 택시기사 손복환(73)씨는 “도로 위 교통 표시는 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이므로 보여주기 식 장식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도로안전시설로 인해 세금이 낭비될 가능성도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잘못된 교통 표시가 사고 원인을 제공한 경우 당사자나 보험사가 차후 관리 기관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라고 하더라도 국가 기준에 따라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서울시가 미리 문제를 파악해 시정을 지시했어야 한다”면서 “교통안전을 위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 만큼 하루속히 원칙대로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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