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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곧고 강한 직선 디자인... '안전한 차' 이미지로 소비자 사로잡아

입력
2018.07.17 15:00
수정
2018.07.17 18:59
20면

볼보는 최근 독일차 인기의 거센 바람을 뚫고 두각을 나타내는 브랜드다. S90 이후 XC90 XC60 XC40 등으로 신형모델을 연이어 투입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과거 한국 소비자들은 특히 볼보를 좋아했다. 벤츠에 이어 시장 2위에 오를 정도였다. 한국이 처음 자동차 수입을 시작했던 1988년 얘기다. 88년 수입차 판매량은 총 62대. 이중 벤츠가 27대였다. 볼보는 16대로 BMW(13대)보다 많았다. 1억을 호가하는 벤츠와 달리 볼보는 5,000만원대 전후의 가격으로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입차였다.

시장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도 볼보는 선두를 유지했다. 91년에도 여전히 벤츠에 이은 2위였다.

볼보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판매한 차종은 760과 740(사진)이었다. 760과 740은 1980년대 볼보의 주력 모델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차들이다. 두 차종 모두 자를 대고 그은 듯한 곧고 강한 직선이 지배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수직에 가깝게 세운 뒤창, 책상처럼 평평한 트렁크 리드 등이 인상적이었다. 760은 82~90년, 740은 84~92년 사이에 생산됐다. 두 차종 모두 한국에서는 88년 수입ㆍ판매를 시작해 91년에 후속 모델인 960, 940에 바통을 넘겼다.

볼보 760은 V6 2.8 가솔린 엔진에 4단 자동변속기 조합이었다. 최고출력은 170마력. 740에는 131마력짜리 직렬 4기통 2.0 가솔린 엔진이 올라갔다.

한국 소비자들이 볼보를 좋아했던 건 ‘안전’ 때문이었다. 튼튼하다는 이미지가 강해 사고를 당해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차로 소비자들은 인식했다. 볼보 760 7대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테스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모습을 통해 ‘볼보는 튼튼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당시에는 튼튼함이 곧 안전을 의미하는 시대였다.

볼보는 왜건에 강한 브랜드였다. 740ㆍ760에 에스테이트라는 이름으로 왜건 스타일을 만들었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이를 외면했다. 960ㆍ940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왜건은 안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증명한 게 볼보였던 셈이다.

볼보를 한국에 수입 판매한 곳은 한진그룹의 계열사인 ㈜한진이었다. 92년에는 한일개발로 이름을 바꾼다. 한진의 수입차 사업부를 이끈 인물은 박동훈씨였다. 89년 한진건설 볼보 사업부장으로 수입차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폭스바겐코리아와 르노삼성차 사장을 지낸다.

수입차업계 최초의 여성 CEO를 배출한 곳도 볼보였다. 2004년 이향림 사장이 주인공이다. 당시 볼보는 재규어 랜드로버와 함께 포드 산하의 고급차 브랜드를 모아놓은 PAG 산하에 편입돼 있었다. PAG코리아의 볼보 브랜드 총괄 사장으로 임명된 이향림 사장은 이후 스웨덴 볼보 본사의 임원으로 발탁된다.

한동안 힘든 시절을 보낸 볼보가 이제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며 한국 시장에서도 실적회복세를 보인다. 일부 차종은 주문이 밀려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이다. 구르고 굴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하다. 볼보, ‘나는 구른다’는 스웨덴 말이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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