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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그는 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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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소방호스를 몸에 감고 안산 단원고 학생 20여명을 구한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53)씨가 지난 13일 청와대 앞에서 자해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김씨의 자해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벌써 네 번째. 그는 왜 반복해서 자해를 시도하고 있을까.
김씨의 아내 김형숙씨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남편이 겪고 있는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전했다. “‘아저씨 좀 기다려 주세요’라며 창문을 두드리는 모습, 그날의 영상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죠. 본인이 구조하고 나와서 해경에게 배 안에 200~300명이 있다고 했잖아요. (해경) 자신들이 모두 구조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믿었던 걸 가장 후회하는 거죠.” 이런 죄책감에다 책임을 질 사람들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행태에 대한 분노가 섞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다. 물론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집이 있는 제주에서 트라우마센터가 있는 경기 안산까지 오가면서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혹시라도 유가족을 만나면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포기했다는 게 아내 김형숙씨의 설명이다. 이후 김씨는 2015년 3월 제주도 자택에서 자해했고, 그 해 12월 14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도중 방청석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2016년 4월에는 제주도청 로비에서 “세월호 진상도 밝히지 못하고 사람들 고통도 치유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싫다”고 외친 뒤 다시 자해했다.
‘국가가 해준 보상으로 다 치유 받은 것 아니냐’,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냐’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김씨는 2015년 6월 의상자로 인정돼 올해 1월 국민추천포상을 받았고, ‘숲길 안내사’라는 일자리도 소개 받았다. 그가 받은 보상금은 1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내 김형숙씨는 “남편이 훈장을 거부하겠다고 얘기했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든데 훈장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남편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실질적인 치료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물질로 해결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정은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방송을 통해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75명의 아이들 옆에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전문의가 2년 동안 상주하면서 붙어 있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을 아이들과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함께해 줬다. 그런데 김씨의 경우 적극적이고 핵심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 통념상 성인 남자들의 경우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해는 문제 행동이라기보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방치하면) 더 망가지고, 가족들은 더 이해가 안 되고, 그러면 가족 전체가 삶이 고통스러워지는 쪽으로 점점 빠지게 된다”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전문가가 옆에서 도와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갈 수 있다. 가족들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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