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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많은 동네, 새벽 폭우로 4분의 1 잠겨…재해 대비 선진국도 기존 매뉴얼로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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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입구엔 진흙 범벅 가재도구
성처럼 쌓여 1㎞ 넘게 이어져
이재민들 폭염ㆍ갈증ㆍ수면 부족
3중고 시달리며 체력과의 싸움
#2
“어디서부터 손 대야할지 막막”
더딘 복구ㆍ생필품 부족 등 하소연
취약시간 발생하는 재해 경보
어떻게 전달할지 다시 생각해야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 마비쵸(真備町). 도쿄 서쪽 700㎞의 이 작은 도시는 지난 7일 새벽 폭우에 따른 하천(오다가와ㆍ小田川)의 범람으로 시내의 4분의1이상이 물에 잠겼다. 일본 전역에서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이번 폭우의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다.
12일 오전 이곳에 들어서자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초입인 가와베(川辺) 파출소 삼거리 부근에는 진흙 범벅이 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텔레비전과 냉장고, 옷장, 이불 등 가재도구를 쌓은 줄이 성처럼 늘어서 있었다. 길이가 족히 1㎞는 넘어 보였다. 섭씨 30도를 넘은 폭염에다 주민들이 트럭에 싣고 와 버린 젖은 가재도구들이 뿜어내는 악취로 마스크 없이는 숨쉬기가 어려웠다.
마을 초입에 성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마비쵸 아리이(有井) 사거리에서 주택가로 들어서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9일부터 복구 작업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침수된 도로와 주택이 적지 않았다. 어느 집 집 앞마당에는 전복된 차량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인근 미나모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난바 히로코(64)는 건물 2층 상단부의 병원 간판을 가리키며 “2층은 물론 저기까지 물이 찼었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전쯤 폭우 피해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고령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새벽에 일어난 범람에 대처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물이 일부 빠진 집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가재도구를 꺼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집 마루바닥은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대피소가 있는 오카다(岡田)소학교 위치를 물으니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나마 덜 더운 오전에 집안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앙해를 구한 뒤 “여기서부턴 차로 가는 것보다 걷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한 그를 붙잡고 피해 상황을 묻을 수가 없어 대피소로 걸음을 재촉했다.
오카다소학교 근처에서 만난 사토 요코(65)는 “마비쵸에 사는 친척 언니가 있어 문병하러 왔다”며 “범람 후 며칠간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어제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고령자들이 휴대전화가 아니라 집전화를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침수로 전화가 고장 나면서 연락을 주고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체력ㆍ정신적 한계에 이른 이재민들
오카다소학교에는 이날 오전 현재 300여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체육관과 교실 건물 두 동에 분산 배치돼 있었다. 집안 정리에 나서기 어려운 고령자들이 매트를 깔고 누워 있었다. 체육관 한 켠에서 누워 있는 70대 부부에게 “대피소 생활이 어떠냐”고 말을 걸자, 아내로부터 대뜸 “좋을 것 같겠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니 남편이 “현지 기자들에게 매일 같은 답변을 하기도 지쳤다”며 “어제 에어컨이 10대 설치돼 그나마 생활이 나아졌지만 개인 공간이 없어 여전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도 1층이 진흙으로 가득 차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교실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도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밖에 설치되지 않았고 방충망도 없다 보니 저녁에 문을 열고 잘 수가 없어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교실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세탁기가 지원물품으로 도착했지만 아직 설치되지 않은 데다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학교 한 켠에는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옷가지와 신발, 생필품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시청 직원들과 교사, 민간단체 자원봉사자, 의료진들이 이재민들의 생활과 건강을 돌봐주고 있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은 50여명이 교대로 24시간 이재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이재민들도 폭염과 끝이 보이지 않는 복구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관행적 정부 재해 매뉴얼 재검토 해야”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실 물은 태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자위대원들은 매일 물탱크에 마실 물을 공수하고 있었다. 침수 피해가 크지 않아 대피소 생활을 하지 않는 주민들도 두 손에 페트병을 들고 학교를 찾아 식수를 제공 받았다. 두 자녀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는 “지대가 높은 곳에 살아 피해가 크지 않았다”면서도 “여전히 더딘 복구에 힘들어 하는 이웃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들은 “생필품을 인근 소자(総社)시로까지 가서 구입하고 있다”며 “이번 주 토요일 상점 한 곳이 문을 연다고 들었지만 피해지역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식수를 받기 위해 학교를 찾은 고조 히데오(70ㆍ영어교사)는 ‘재해 대비 선진국’인 일본에서 폭우로 2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할지 몰랐다는 기자에게 “이 지역에 30~40년간 큰 재해가 발생하지 않다 보니 다들 ‘이 정도의 비로 마을이 물에 잠기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라며 “취약시간에 발생하는 재해 경보를 정보 습득에 느린 고령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처럼 폭우 피해를 입은 서일본 지역도 난카이(南海) 트러프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자연재해를 정부가 기존의 매뉴얼만 가지고 대응하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라시키=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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