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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유학’ 간 아이들… 숲과 텃밭이 키운 함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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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ㆍ농가서 생활하며 생태교육
게임ㆍ스마트폰 중독 도시 초등생들
밭일ㆍ놀이에 몰입하며 적극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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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뒤섞여 놀며 배려심 늘어
‘공부 포기하는 것 아니냐’ 우려에
“지역 중학교 전교 1등 우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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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비 月 40만~80만원 수준
임실 대리초 6명이 유학생
울주 상북초 소호분교는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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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 시골학교 살리기로 시작
반응 좋아 부모와 귀촌하기도
농ㆍ산ㆍ어촌 유학생 7년 만에 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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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떨어져 생활’ 우려에
“도시서 부모와 살다 문제 생긴 경우
농촌 생활이 숨통 트여줄 것” 반박
호미질에 열중한 소년의 손과 눈이 반짝 빛났다. “주현(12ㆍ가명)이도 뭔가에 저토록 몰입할 수 있는 친구였구나.” 마을 어른들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게임에 빠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그였다. 장소와 상황에 불문하고 누구를 만나도 “거절한다!”는 게임 속 대사만 주문처럼 반복했고, 식사 시간엔 밥상에 드러눕는 기행도 선보였다. 밤이면 어른들이 숨겨놓은 게임기를 기어코 찾아내 벌건 눈으로 화면에 빠져들고, 낮이면 꾸벅꾸벅 조느라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이 도시 아이를 바꾼 건 수개월의 산골 마을 생활이었다. 물자, 학원, 친구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산촌에서 스스로 놀 거리, 할 일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덕일까. 숲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살아서일까. 텃밭의 주인이 돼 채소를 심고 가꾸고 거둬본 덕일까. 어른들도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변화였다.
“처음엔 ‘우리 센터에서 이 친구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해 어머니가 걱정하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유독 밭일을 하면 무섭게 몰입하고, 고요해지는데 참 신기하더라고요.“ (김정화(49) 소호마을산촌유학센터 생활지도교사)
촌에서 배우며 놀며 자라는 아이들
산골 생활을 자처한 도시 아이들이 있다. 이른바 농ㆍ산ㆍ어촌 유학생이다. 도시 아이들이 지역 학교로 전학해 6개월 이상 기숙사(생활관)나 농가에서 먹고 잔다. 마을 주민들이나 유학센터 교사들이 꾸리는 생태교육을 받고, 방과 후에는 밭을 매고, 숲에서 뛰논다. 유학비는 월 40만~80만원 수준.
시작은 폐교위기를 맞은 지역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마을주민, 교사 등이 팔을 걷고 학생 유치에 나섰던 지역 살리기 운동 성격이 강했다. 곳곳에서 사단법인, 교사모임 등이 자발적으로 학생을 모집하던 것이 2010년부터는 농림축산식품부 시범사업으로, 2013년부터는 지자체 보조사업으로 본격 추진됐다. 우선 목표는 농촌 소규모 학교 유지 및 공교육 활성화.
그런데 막상 더 반긴 이는 생활해 본 아이와 부모들이었다. 농촌 살리기는 지역의 관심일 뿐, 부모들의 최우선 목표는 ‘내 아이의 행복’일 터였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지내는 문제부터 걸림돌이 제법 되는데도 적잖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고 확신한다. 도시에 비하면 결핍투성이인 촌에서 아이들이 더 잘 먹고, 잘 크고, 잘 웃게 됐다는 것이다.
2010년 전국 3곳 교육시설 57명에 불과했던 농ㆍ산ㆍ어촌 유학생 규모는 지난해 전국 18곳 260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웃게 했을까.
9일 찾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상북초 소호분교 앞 냇가에서는 소호산촌유학센터의 임형우(48) 생활지도교사와 학생들의 ‘숲 학교’ 수업이 한창이었다. 소호마을은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 신불산, 문복산에 인접한 고헌산과 백운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해발 500㎙ 산골 마을로 30가구 정도가 산다. 분교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한 유학센터는 유학생들의 생활을 살피고 교육 활동을 기획하는 곳으로 소호분교의 방과 후 수업 중 ‘숲 학교’, ‘마을 학교’ 등을 맡는다. 이날은 ▦숲 탐방 ▦개구리, 나무, 열매, 꽃 등 숲속 친구와 교감 나누기 ▦밧줄 놀이 등으로 이어진 숲 학교 수업의 마지막 회차, ‘물속 곤충 관찰하기’ 시간이다.
아이들이 연신 “삼촌”을 불렀다. 저마다 손에 든 뜰채를 자랑하려는 참이다. 마을 어른이자, 학부모이자, 태권도 사범이기도 한 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임두령 삼촌’으로 통한다.
“삼촌! 삼촌! 제 것 좀 봐요!”
“와! 이건 무늬하루살이 유충이야. 흙 속에서 사는 애들은 어떻게 생겼다 했노? 흙 속에 사는 애들은 깊이 파고 들어가기 위해 몸이 뾰족하고 길쭉하고 날씬하다고 했지.”
“삼촌, 이건 뭐예요?”
“오! 잘 찾았네. 얘는 강도래야. 돌바닥에 붙은 강도래는 납작하고 발톱이 두 개, 하루살이는 발톱이 한 개라고 했지?”
청정 1급수에 산다는 강도래 유충까지 찾아내자 아이들 표정이 우쭐해졌다. “아악, 발 시려요!” “어디 있어요?” “안 보여요!” 등의 외마디 비명과 푸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교생 31명, 총 5학급의 소호분교 학생 중 7명이 유학생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총 10명이 등록된 유학센터 학생들의 출신지는 서울, 인천, 경북, 울산, 부산 등으로 저마다 다르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나머지 마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아침저녁에는 2~4명씩 나뉘어 마을 주민의 집에서 생활한다. 이들 주민이 유학 기간 아이들의 ‘농가 부모’가 되는 셈이다. 현재 아이들이 지내는 농가는 유학센터 교사들의 집으로, 모두 수년 전 이 마을로 귀촌했다. 생협 활동가, 초등교사, 태권도 사범 등으로 전직은 다 달라도 아이들에게는 달코미 이모, 호미 이모, 임두령 삼촌 등 모두 이모ㆍ삼촌으로 불린다.
농가에서는 이모, 삼촌 및 이들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센터에서는 농사, 어린이 협동조합, 계절별 생태놀이, 어린이밴드, 어린이풍물, 합창단, 자치회의, 치유의 숲, 스스로 여행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어른들도 농가 모임, 학부모 워크숍, 학부모 만남의 날 등을 통해 수시로 마주하며 교육방향 등을 논의한다.
때론 결핍이 성장을 이끈다
아무리 숲과 물이 좋다지만, 전교생이 31명에 가장 적은 1학년은 3명에 불과한 시골 분교로 선뜻 아이를 보내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친구나 사귈 수 있을까” 망설일 부모들이 있지만 달코미 이모 김정화(49) 생활지도교사는 바로 그 점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다.
“도시에서는 같은 학년끼리 놀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의 전체 수가 적으니 다 같이 놀지 않으면 놀이에 낄 수 없거든요. 애들이 언니 오빠 할 것 없이 섞여 숲에서 뛰고 서로 배워요. 동생을 보살피는 법도 큰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도요. 아이들끼리 물놀이하다 동생들 옷이 젖으면 언니들이 가까운 집에 데려가 옷을 갈아입혀 주고, 어둑해지면 손잡고 집에 바래다 주고요. 요즘 도시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또래 관계죠.”
김씨도 심리상담, 숲 해설 등을 공부하다 반한 소호마을에서 남매를 키웠다. 그는 “아파트 울타리 안에서만 자랄 때는 늘 놀이에 목말라했던 아이들이 입 주변이 얼룩덜룩해질 정도로 오디를 따먹고 숲을 뛰는 모습을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학부모 정영순(40)씨가 1학년 때 시작한 딸 아이(13)의 유학 생활을 계속 지지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저를 따라 몇 번 마을 구경하고 언니, 오빠들과 놀아본 아이가 ‘엄마 나 여기서 학교 다닐래’ 하더라고요. 너무 어린 게 아닌가 고민도 했는데 워낙 적응을 잘했어요. 또래 관계에 대한 고민은 더욱 치열하더라고요. 여기선 내가 불편한 친구랑은 안 놀고 친한 친구랑만 놀 수 없으니까요. 서로 모르는 아이 없이 전 학년이 같이 놀고, 그 안에서 작은 아이를 배려하고 불편한 친구와도 관계 변화를 이끄는 모습이 다 눈에 보여요.” 블로그, 인터넷 카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시로 공유되는 아이의 생활과 수업 내용 등을 살피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 별로 불안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3학년 때는 큰 학교도 궁금하다는 아이 뜻에 따라 잠시 울산 시내 학교에 전학했지만, 아이는 한 학기 만에 “이제 경험해 봤으니 됐다”며 산촌행을 택했다. “시내에서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반에 장애 학생이 있는데 유독 우리 아이가 많이 돕고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더라고요. 소호에서의 생활이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유학생들의 존재는 마을과 마을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단다. 무엇보다 학교가 유지되는 것부터가 유학생의 규모 덕이다. 박현태(41) 소호분교장은 “유학생들이 아니라면 지금 3개 학급으로 복식수업(서로 다른 학년을 한 학급으로 묶어 하는 수업)을 해야 했을 상황”이라며 “인근 다른 분교는 3, 4년 전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됐다”고 했다.
“지천이 숲이고 냇가고 밭이잖아요. 저희 학생들은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는 경우가 없어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찾아 놀아야 하는데, 일단 자연은 펼쳐져 있으니 냇가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함께 어울리는 게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임두령 삼촌’의 딸 휘경(12)이는 유학생 동생 두 명과 자기 방을 함께 쓴 뒤 부쩍 성장했다. “아이들에게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고, 이부자리 정리하고, 숲 산책하고, 밥상 차리는 걸 돕게 하거든요. 동생들이 하니까 딸아이도 자연스럽게 함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재작년 지진에 집 벽이 갈라진 뒤로는 경운기 소리만 나도 놀라던 아이가 많이 진정되고 의젓해졌어요.”
울산에서 10년 넘게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임씨는 휘경이가 5세 때 이 마을로 귀촌했다. “어릴 때는 정말 다채로웠던 개성을 보인 아이들이 성적 경쟁이 치열한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눈빛부터 무력해지더라고요. 원형탈모를 겪을 정도로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엄마가 장래희망을 물으니 ‘엄마가 되라는 것 될게요’라고 답했을 정도랍니다.”
뭘 하고 싶은진 몰라도 일단은 성적을 잘 받고 봐야 하는 도시 학교 내 경쟁의 심각성을 확인한 그는 산촌행을 선택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는 자신이 없어 이사부터 했죠. 강제로 다녀야 하는 학원도 없고, 사회가 바라는 대로 자라줄 필요가 없고, 아이 본연의 모습 자체를 어른들이 사랑해 주는 곳에서 키우고 싶어서요. 부모라는 두 가닥 동아줄 말고도 산촌 마을 어른들이라는 여러 가닥의 새끼줄이 아이를 지지하고 지켜봐 주는 곳에서요.”
실컷 뛰고 처음 밥그릇을 비웠다
마을 가정이 아닌 기숙사에서 지내는 농ㆍ산ㆍ어촌 유학생들도 있다. 지난달 27일 찾은 전북 임실군 신평면 대리마을농촌유학센터에선 양성주(44) 센터장이 문의 전화 응대에 한창이었다.
“적응이요? 아이 성향에 따라 모두 다르긴 하죠. 미리 캠프를 통해 친구가 여기를 좋아할지 경험하고 나서, 아이 의견을 최우선으로 들어보셔야 해요. 네, 여기서는 스마트폰은 못 써요. 일단 도착하면 모두 걷어뒀다가 집에 갈 때 나눠 줍니다.” 손자의 유학을 문의하는 할머니의 질문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유학센터는 대리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대리초 운동장 바로 오른편에 텃밭과 나란히 자리 잡았다. 대리마을은 험준한 산지가 많은 임실군에서도 섬진강이 흐르고 상대적으로 비옥한 평야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큰 마을을 이뤄 ‘대리’라 불렸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대리초의 2009년 신입생은 0명, 재학생은 17명에 불과했다. 농촌유학생 유치가 본격화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전주 시내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양성호(45) 교사와 뜻을 함께한 교사 가족 9가구가 2009년 나란히 임실로 귀촌했고, 이 중 3명 교사가 대리초에 근무하며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센터와 농가가 중심인 산촌마을의 유학과 달리 학교 중심의 교육프로그램에, 센터가 의식주를 맡는 형태인 셈이다. 학교에서는 양 교사가 농촌 유학 담당교사로, 센터에서는 사회복지사 출신의 양 센터장과, 그의 남편이자 중등교사 출신의 임성호(49) 사무장이 유학생들의 보호자로 함께 지낸다. 현재 초등생 6명, 중고생 10명 등 총 16명이 센터에 참여해 학교 운동장과 대리마을을 앞마당 삼아 뛰고 놀며 지낸다.
양 교사는 “교육환경을 일구기 전 우리 아이들부터 시골에서 키우자는 생각에, 전북에서 상황이 열악하고 인구감소가 심한 곳, 손들고 오는 교사가 적은 지역 등을 기준으로 삼아 임실에 귀촌하게 됐다”며 “각종 체험학습, 방과 후 학습, 돌봄 교실 등을 고민해 구성하고 친척, 지인 등 인맥을 동원해 2009년 12월 9명의 첫 농촌유학생이 학교에 모였다”고 했다.
과밀학급 우려는커녕 교사 1명당 한 자릿수 학생에 활쏘기, 도자기체험, 록밴드, 댄스 및 연극동아리, 제과제빵 등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며 2014년 대리초의 전교생은 95명까지 급증했다. 자녀의 농촌 유학을 계기로 이 마을에 귀촌한 경우도 10가구나 된다.
“지금은 더 많이 연로해지셔서 못하지만 초기엔 마을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새끼 꼬기, 텃밭 가꾸기를 가르쳐주셨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동물농장, 텃밭을 활용해 자연과 어울리니까 좋아했죠. 일단은 도시와 부모의 곁을 떠났다는 것만으로 고민했던 문제들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제 막 농촌 유학 생활 2개월 차에 접어든 민현(11ㆍ가명)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업차 필리핀 등 해외를 많이 오갔다는 민현이의 엄마 박수영(43ㆍ가명)씨는 “해외 생활을 하도록 한 게 미안해서 중국어 유치원부터 악기, 운동까지 안 시킨 것 없이 지원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휴대폰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농촌 유학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만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 살아볼까, 대안학교를 보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농촌 유학 2박 3일 체험을 했는데 아이가 ‘엄마 나 여기 더 있고 싶어’하더라고요. 형들하고 실컷 뛰고 수박이(센터 강아지)와 노는 게 재미있다고. 휴대폰말고는 다 싫다고 밥도 안 먹던 애가 그러니까 일단은 1주일만, 그다음엔 2주일만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보낸 거죠.”
첫 2주는 오히려 박씨가 분리불안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이었다고 한다. “엄마 보고 싶어서 우는 건 아닌지, 떨어뜨려 놔 상처받는 건 아닐까, 밥도 못 먹어 해골처럼 비쩍 마르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남편과 아이 소식이 올라오는 카톡, 밴드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이가 훌쩍 자라 집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몇 년 만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아이를 본 부부는 본격적인 농촌 유학 시작을 결심했다. “남편이 처음에 반대했어요. 4학년이면 아직 어린데 부모와 헤어져 살면 아이를 망칠 것 같다고. 그런데 같이 놀 아이가 없어서 학원에 다니고 엄마와 눈만 마주치면 휴대폰 때문에 싸우는 도시 생활보다 행복해하니까, 아이가 원한다면 조금만 더 있게 해보자 생각한 거죠.”
양 교사는 “민현이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선생님 뭘 해야죠? 심심해요. 이거 해도 돼요?’만 반복했는데, 뭐든 스스로 찾아서 하고 선생님들의 목공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등 적극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기특해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흙과 자연’이 한몫 했다는 게 교사들의 생각이다. 김호경(52) 대리초 교장은 “인성교육 연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대목은 ‘아이가 흙과 자연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운동장에 벼를 심고 탈곡을 직접하고 상추, 오이를 길러 뿌듯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보통 아이들과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오늘도 점심 급식에 아이들이 직접 기른 상추와 오이를 올렸어요. 흙을 만져본 아이는 먹는 모습부터 달라요. 볼이 빵빵해지도록 쌈을 몰아넣는 모습이 얼마나 예뻐요.”
자연, 흙, 동물과의 교감 속에서 얻는 기쁨이 스마트폰이라는 ‘낙원’도 잠시 잊게 한다는 것이다. 양 센터장은 “사실 스마트폰 중독은 아직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단체 생활과 자연에서 얻는 기쁨 속에 잠시 잊도록 해 줄 뿐”이라고 했다.
“대단한 건 없어요. 그냥 땀 뻘뻘 흘리고 놀아요. 아침 일찍 강아지 산책시키고, 마을에서 자전거 타며 놀고, 낮엔 수업 듣고, 텃밭 가꾸고 농장 동물 먹이도 주고. 저녁엔 운동장에서 형들하고 실컷 뛰어놀고. 도시 생활에선 이 간단해 보이는 놀이 과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죠.”
학부모들이 성적에 대해 불안해하진 않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 없이 답했다. “저는 ‘공부는 포기하세요’라고 말해요(웃음). 실컷 놀아보고 땀 흘리고 만족한 아이는 오히려 충분한 에너지를 얻어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옆에서 듣던 임 사무장이 “다른 아이들과의 단체 생활 속에서 민주적 태도, 배려심, 정서적 안정 등을 얻는 게 가장 큰 수확이지만 진짜로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역 중학교 전교 1, 2등을 다투는 친구가 우리 센터 출신 학생”이라고 부연했다.
“상황이 좋아진 친구가 있다고 해서 농촌 유학이 문제적 아이들만 모이는 곳이라 생각하면 안돼요. 인재학당 등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상의 질 좋은 교육도 원하면 참여할 수 있고, 농어촌특별전형 적용 대상이 되니까 여기서 공부까지 잘 해보겠다고 한다면 장점도 있어요.”
6개월에서 1년을 보내며 얻은 에너지로 도시로 돌아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중ㆍ고교 진학까지도 농어촌에서 하는 학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랑거리가 계속 쏟아졌지만 농촌 유학을 추진해 온 교사와 센터 관계자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아이와 부모가 굳이 떨어져 지내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농촌 살리기 차원에서 예산 지원 등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 농림부 및 지자체와 달리 교육 당국의 관심과 참여가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견해는 다르겠지만 교육적이지 않다는 시선에 반대해요. 부모와 매일 붙어 있어서, 또는 모든 것을 도시와 돈의 시스템 안에서만 해결하려다 문제가 된 경우라면 특히 더하죠. 인생에 한 번쯤은 숨통을 트여줘야죠. 농촌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자연과 어울리게 하는 게 오히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큰 경쟁력을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양성호 교사)
울주ㆍ임실=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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