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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퀴어작가다… 협소한 시선들이 나를 협소하게 하진 못 할 것”

입력
2018.07.0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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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밍아웃 소설가 김봉곤 작가 

 첫 소설 ‘여름, 스피드’ 출간 

 남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 담아 

 예약 판매용 책까지 완판 돌풍 

 

김봉곤 작가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소설가 데뷔 2년 만에 소설집을 낸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인데, 올 들어 단편 4편을 썼다고 한다. 그는 "매번 다 비워낸 것 같은데, 어느새 쓰고 싶은 게 또 생기고, 또 써진다"고 했다. 김주성 기자
김봉곤 작가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소설가 데뷔 2년 만에 소설집을 낸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인데, 올 들어 단편 4편을 썼다고 한다. 그는 "매번 다 비워낸 것 같은데, 어느새 쓰고 싶은 게 또 생기고, 또 써진다"고 했다. 김주성 기자

“사랑 밖에 난 몰라”로는 부족하다. “사랑 아니면 다 꺼져” 정도는 돼야 한다. “꺼져” 말고 “꺼져요”라고 끝내 공손하게 말할 것 같다. 김봉곤(33) 작가, 그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요약하자면 그렇다.

실린 소설 6편이 전부 사랑 이야기다. 남자가 남자를 징글징글하게 사랑하는 이야기, 사랑에 몸을 떠는 ‘나’의 입으로 들려 주는 이야기다. “달팽이 같은 글을 쓴다. 달팽이에게 당근을 주면 주황색 똥을 싸는 걸 아는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 작가의 말이다. 김 작가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다. 그를 설명하는 수많은 말이 있겠으나, 성 정체성은 게이다. ‘커밍 아웃한 첫 게이 소설가’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이 낯선 작가와 소설에 독자들은 마음을 열었다. 예약 판매용으로 찍은 책이 완판됐고, 출간 열흘 만에 3쇄를 넘겼다.

표제작의 ‘나’는 6년 전 애인 영우에게 잔인하게 차였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그 총량의 구십 퍼센트를 나는 영우에게 써버렸다.”(‘나’의 말) 장난처럼 다시 찾아 온 영우는 여전히 나쁜 남자다. 그래도 그를 사랑한다. 미래 대신 영우를 택하는 결말은 쿨하기보단 딱하다. “사랑의 가능성이 없지만, 없는 그 가능성을 택한 거다.” 김 작가의 해설이다.

“나의 세계에, 사전에,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소설 속 문장은 김 작가의 고백이다. 왜 그토록 사랑일까. “가끔 나도 질린다. 그러나 나는 내가 쓰는 글이다. 늘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요즘 연애를 못하고 있어서 더 열심히 사랑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애인 있음’의 표식인 반지가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건… “옛 애인이 나와 헤어지고 만난 애인이랑 맞춘 커플링이다. 그가 새 애인과도 헤어지고 커플링을 팔겠다고 하기에 달라고 했다. 연심이 남아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끼고 다닌다.” 수록작 ‘컬리지 포크’의 ‘나’는 애인과 헤어지고 2년을 더 같이 사는데, 반지를 준 애인이 바로 그 애인이다.

김봉곤 작가. 김주성 기자
김봉곤 작가. 김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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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 쓰는 마음으로 쓰기도” 

 작가의 기억ㆍ경험 쏟아내듯 

 게이 용어 등 거침없이 표현 

김 작가 소설 속 남자들은 종종 몸을 웅크리지만, 게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이성 간의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정의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존재한다. (…) 사랑이 언제나 재발명 되어야 하듯, 사랑에 대한 정의도 재발명,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 그리하여 언젠가는 퀴어가 퀴어가 아니게끔.”(‘Auto’ 중) 그렇게 순하게 다짐하는 정도다.

비극의 서사라는 전형을 따르는 걸 김 작가가 ‘거부’했다기보다는, 그에게 사랑이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잘 못한다. 내가 왜 거짓말이나 하며 살아야 하나, 그런 자신감 때문이다. 대학 때 게이라는 걸 깨닫고 곧바로 널리 커밍 아웃했다. 예술대학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는지, 모두 이해해 줬다. 정체성으로 사회에 맞서 투쟁한 기억이 별로 없다.” 단, 집에선 모른다고 한다. “환갑 넘으신 엄마가 퀴어가 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쓰는지도 모른다. 말하고 당당해지고 싶기도 한데, 엄마와 잘 지내는 게 먼저다. 엄마에게 내 정체성은 동성애자이기도 하지만 아들이기도 하니까.”

김봉곤 작가가 고른 표지 그림. 헨리 스콧 튜크(Henry Scott Tuke)의 'Beach Study'이다.
김봉곤 작가가 고른 표지 그림. 헨리 스콧 튜크(Henry Scott Tuke)의 'Beach Study'이다.

경남 진해에서 나고 자란 김 작가의 꿈은 오직 선생님이었다. 2004년 대학 입시에서 교대, 사범대 인기가 치솟는 바람에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그만 뒀다. 군 생활을 적나라하게 그린 윤종빈 감독의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고 감명받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들어갔다. 1학년 1학기 때 정이현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듣고 소설로 다시 한번 방향을 틀었다. 글 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건 2016년이다. 그 해 여름 문학동네 편집자가 됐다. 평일엔 책 만들고 주말엔 소설을 쓴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시, 잘 알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더 잘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탐구하는 마음, 보고서를 쓰는 마음으로 쓸 때도 있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잔 사람이 낫지, 안 그래요? 아무랑 자나요?”, “아무렴 너는 나와 자게 될 테고 잘하면 막 사랑하는 줄 알다가 정말로 막 사랑에 빠지겠지?” 김 작가가 빚은 인물들은 본능에 충실하다. 이른바 ‘게이 용어’와 성애 묘사가 툭툭 나오는 솔직한 글쓰기를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퀴어 작가’로 출발하는 게 부담은 아닐까. “어떻게 불려도 괜찮다. 내 글을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다. 사람들이 나를 협소하게 보는 게 나를 협소하게 만들지는 못할 거다. 나는 소설 쓰고 책 만드는 김봉곤이다. 퀴어 작가의 계보를 잇고 싶다. 누구라도 퀴어 소설을 읽다 보면 내 이름을 만났으면 한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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