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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물가 싸고 가상화폐 규제 적어 블록체인 스타트업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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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가상화폐 결제 가게 있고
이더리움 기술도 개발된 베를린
독일 정부, 제도권 큰 틀에서 관리
가상화폐 공개에도 큰 규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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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 속성의 혁신 기업들
슬록잇ㆍ사토시페이 등 거점 둬
일부는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
정부도 산업 육성에 머리 맞대
독일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가량 떨어진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그레페슈트라세 77번길. 카페가 죽 늘어진 조용한 거리 한편에 알파벳 B 모양의 조명이 켜진 가게가 있다. 이름은 ‘룸77’. 햄버거 피자 맥주 등을 파는 가게 외양은 주변 여느 음식점과 다를 바 없지만 전 세계 가상화폐 커뮤니티는 이 곳을 ‘비트코인의 성지’라고 부른다. 2011년 5월 세계 최초로 오프라인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방문한 룸77에선 카드 결제를 할 수 없었다. 가능한 수단은 현금과 비트코인뿐이다. 12유로의 치즈버거 세트를 휴대폰에 설치된 비트코인 지갑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결제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10초. 수수료(0.9유로)를 포함해 2.34mBTC(1mBTC=0.001BTC)가 들었다. 점원은 30초 뒤 결제 완료 메시지를 확인하고 음식을 내줬다. 직원 라사는 “보통 하루 3명 정도, 미팅이 열릴 땐 10여 명 정도가 비트코인으로 결제한다”며 “사장인 요르그 플라처씨가 중앙은행을 불신하기 때문에 카드는 절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가게 곳곳에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거나 ‘유럽중앙은행을 끝내라(End the ECB)’ 등 반정부 성향의 포스터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2013년 미국 정보당국의 무차별 감시를 폭로하고 해외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사진과 ‘나는 정직한 돈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금 은 그리고 비트코인)’는 팻말도 눈에 띄었다.
비트코인의 수도에서 블록체인의 수도로
세계 첫 오프라인 가상화폐 결제 가게인 룸77이 베를린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의 ‘열린 자세’부터가 그렇다. 독일 정부는 가상화폐 시장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금지 대신 제도권 편입을 통한 관리를 택했다. 실제 독일은 가상화폐 거래소 규제를 가장 먼저 만든 국가로, 거래소 사업자는 사업 계획과 평가자료 등을 연방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 허가를 받은 최초의 거래소 역시 독일에서 나왔다. 2013년 7월 연방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금융중개기관 허가를 받은 독일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bitcoin.de’가 그 주인공으로, 이 거래소는 최근 중소 은행인 피도르 은행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독일은 가상화폐 공개(ICO)에도 관대한 편이다. 최근까지 독일 신생혁신기업(스타트업)들은 ICO를 통해 20억 유로(2조6,000억원)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들 회사 가운데 55%가 베를린에 있다. 비트코인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가상화폐 이더리움의 기술이 개발된 곳도 베를린이다. 베를린의 명문 경영대학원 ‘유럽경영기술대(ESMT)’는 2016년부터 비트코인으로 등록금을 받고 있다. 영국 유력 매체 가디언이 베를린을 ‘유럽의 비트코인 수도’라고 명명하는 이유다.
가상화폐 관련 업체뿐 아니라 탈중앙화 속성을 지닌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도 속속 베를린에 둥지를 틀고 있다.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컨트랙트)으로 차량, 빈집 등 개인의 유휴자산을 공유ㆍ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유경제 기반 서비스 ‘슬록잇’,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소액결제 플랫폼 회사 ‘사토시페이’, 자바 스크립트 기반의 블록체인 응용 프로그램 플랫폼 ‘리스크(LISK)’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스타트업들이 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있다. “베를린에선 20분마다 스타트업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타트업의 천국’으로 꼽힌 베를린이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마인하르트 벤 사토시페이 최고경영자(CEO)는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등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우리가 추진하는 일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도시는 베를린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정부ㆍ정당 관계자도 머리 맞대고 소통
‘비트코인의 수도’를 넘어 ‘블록체인의 수도’로 거듭나고 있는 베를린에선 세계적 기업과의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 아이오타(IOTA)는 올해 초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보쉬,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 등과 손잡았다. 폴크스바겐은 자사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자동차와 주변의 사물이 쌍방향 네트워크로 연결돼 운전의 안전과 편의성을 높인 차)에 IOTA의 기술을 접목하기로 한 상태다. 요한 융비르스 폴크스바겐 디지털담당 최고책임자(CDO)가 아이오타 재단 감독위원회 자문(어드바이저)을 맡고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친환경 전력공급망 회사 엘라드엔엘도 아이오타의 기술을 이용해 전기자동차의 충전량과 사용량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전기차 연료 충전소를 선보였다. 안드레아 오소브스키 IOTA 핵심개발 공동팀장은 “2025년까지 1,000억개의 기계가 IoT를 통해 연결될 것”이라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IOTA의 블록체인 기술이 실생활에 응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회사가 발행하는 가상화폐 ‘아이오타 코인’은 시가총액 298억6,000만달러(약 33조원)로 전세계 가상화폐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32개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독일블록체인연방협회’를 결성했는데, 출범 1년 남짓한 현재 참여 회사가 90개로 늘었다. 이들의 주된 목표는 소통을 통해 정부에 기업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부가 블록체인과 관련된 법이나 규제를 만들 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독일 정부도 적극 호응하면서 최근 협회엔 스타트업뿐 아니라 정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속한 여당인 기독민주당(CDU), 자유민주당(FDP)ㆍ사회민주당(SPD) 등 야당에서도 한 명씩 참여했다. 이해관계자, 정부, 정당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으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베를린 프린제신슈트라세에 위치한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협업공간 베타하우스에서 만난 요하킴 로캄프 협회 이사는 “정부에 블록체인만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매주 2, 3회 만난다”며 “이들은 굉장히 열려있고 (스타트업을) 보조해주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디지털 신분증(ID) ▦대학 학위 인증 시스템 ▦공공기관에서 통용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 구축 등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행정시스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드는 각종 파일럿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또 개별 국가 차원의 법 제정을 넘어 유럽연합(EU)에서 통용 가능한 규제와 플랫폼 구축에도 고심하고 있다. 실제 EU차원에서 가상화폐공개(ICO)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 협회 측의 설명이다. 로캄프 이사는 “힘을 집중하는 대신 공유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처럼, 독일뿐 아니라 원하는 나라는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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