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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일 땐 “대통령 전용기 구매”… 야당 되면 “예산 낭비”

입력
2018.07.05 04:40
수정
2018.07.05 09: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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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때 한 차례 ‘구매’ 합의

보잉사 과도한 비용 요구로 무산

결국 보잉 747-400 5년간 임차

대한항공으로부터 임차해 사용중인 '보잉 747-400' 기종의 대통령 전용기.
대한항공으로부터 임차해 사용중인 '보잉 747-400' 기종의 대통령 전용기.

“국회에만 오면 정쟁의 문제가 된다.”

지난 2월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답변이다. 역대 정부마다 대통령 전용기 도입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야당이 반대하면서 번번이 무산된 전례를 꼬집은 말이다. 심지어 여당 때는 국익을 내세워 찬성하고, 야당이 되면 입장을 바꿔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 전용기 구매가 공론화된 것은 2005년 10월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공군 1호기(현재의 공군 2호기)를 언급하며 “현 전용기는 국내용이라 미국, 유럽 등 멀리 정상외교를 갈 때는 안 된다”고 토로했다. 앞서 대통령이 해외 장거리 순방에 나설 경우 김영삼 정부는 대한항공, 김대중 정부는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했다. 노무현 정부는 두 회사의 전세기를 번갈아 사용하던 차였다.

정부는 이듬해 6월 “전용기 도입이 전세기 임차보다 경제성이 높다”고 분석한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타당성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회에 전용기 구매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전용기를 구입할 예산이 있으면 전기료 5만원을 못내 촛불을 켜고 사는 수많은 빈곤층에 따뜻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전액 삭감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대통령 전용기 도입이 다시 추진됐다. 이번에는 야당인 민주당이 앞서 한나라당과 같은 논리로 반대했다. 다급해진 한나라당이 과거 전용기 구매를 반대한 것에 사과하면서 여야 간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정부는 구매비용으로 5,000억원을 예상했지만 미 보잉사가 터무니없이 8,000억원 이상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되면서 사업이 백지화됐다.

정부는 마지못해 전용기 임차로 방향을 틀었다. 2010년 2월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고 여객기인 보잉 747-400 기종을 5년간 빌렸다. 동시에 청와대는 2011년 KIDA에 다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이번에도 “전용기 구매가 임차보다 돈이 덜 들고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향후 25년간 운용할 경우 구매하면 임차에 비해 4,700억원이 절감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이 “5년 임차하면 1,400억원 드는데 구매하면 운용유지비를 합해 조 단위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반대하면서 재차 무산됐다.

올해 남북, 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을 거치며 각국 정상의 전용기에 관심이 쏠리면서 우리도 국격에 맞춰 대통령 전용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야당의 몽니를 의식해 “중이 제 머리를 깎기 어렵다”며 가급적 몸을 낮춰 여론과 국회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상황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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