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뒤끝뉴스] 대통령님도 마음대로 못하는 경찰청장 인사?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외부전문가, 퇴직공무원이 꿰차는
부처 장관ㆍ검찰총장과 달리
경찰청장은 치안정감 6명 중에서만 골라야
인재풀 좁아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고위직 공무원(장ㆍ차관급)은 117명.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인사권을 행사하지만, 대통령 마음에 쏙 들어도, “역량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시민사회가 인정해도, 대통령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대통령 마음대로 인사청문회장에 앉힐 수 없는 자리가 딱 하나 있습니다. 경찰 11만8,000여명을 거느리는 치안총수인 경찰청장(차관급)입니다.
대통령은 장관(기관장) 후보자를 정치인, 교수를 비롯한 외부전문가, 퇴직공무원 등 넓은 인재 풀에서 마음껏 고를 수 있지만 경찰청장만은 유독 현재 경찰에 몸담고 있는,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 6인 중에서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후보군을 추리기도 전에 이미 6인의 제한된 선택지가 주어진 셈입니다. ‘정치인 경찰청장’, ‘퇴직경찰 신분의 경찰청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올 수 없는 구조이지요. 수사기관 특수성을 감안해도, 변호사 자격을 갖춘 15년 이상 관련사무 종사자(검사ㆍ판사ㆍ변호사ㆍ교수)에게 문호를 개방한 검찰총장과도 비교됩니다.
경찰청장의 까다로운(?) 자격 요건은 ‘경찰청장은 치안총감으로 한다’는 경찰법 11조와 ‘경찰공무원은 바로 아래 하위계급에 있는 경찰공무원 중에서 승진 임용한다’는 경찰공무원법 11조에 근거합니다. 경찰 승진은 한 계급씩만 가능하기 때문에 경찰청장인 치안총감 승진 대상자는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현재 치안정감은 경찰청 차장, 서울ㆍ부산ㆍ경기남부ㆍ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 6명입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좋든 싫든 이 6인 중에서 차기 청장을 낙점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4대 권력기관장 가운데 유일하게 이철성 경찰청장(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만 유임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독특한 경찰 인사시스템이 이유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당시 치안정감 6인 중 마음에 드는 인물이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청장 인사를 미뤘다는 겁니다. 대신 문 대통령이 낙점해 둔 인물들을 곧바로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켜 차기 청장 후보로 ‘세팅(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15일 문 대통령이 청장 후보자로 지명한 민갑룡 경찰청 차장과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 부실 수사 의혹에 휩싸이지만 않았다면 후보자로 지명됐을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모두 현정부 출범 이후 치안정감에 올랐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독특한 인사구조가 난감하기는 경찰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장이 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패자부활전이 없는 탓에 조직에서 허무하게 떠나 보낸 간부들이 많다는 겁니다. 실제로 유흥수 주일대사가 치안본부장(경찰청장)이던 1981년, 경찰대 1기 입학식에서 “30년 뒤에 경남 합천에서 경찰총수가 나오겠다”고 점 찍은 당사자로, 합천 출신 수석 입학생이던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찰 재직 내내 선두를 달렸지만 주변의 견제 등으로, 결국 경기경찰청장을 끝으로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같은 경찰대 1기로 부산청장, 경기청장을 거쳐 서울청장까지 역임하며 경찰청장 예비 코스를 밟은 이강덕 포항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 조직을 떠난 이상 그토록 원하던 경찰청장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관운과 천운을 동시에 타고 나야 경찰청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패자부활전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닙니다. 2008년 3월 해양경찰청장(치안총감)에 임명되면서 경찰 조직을 떠났다가 1년 뒤 극적으로 경찰청장이 된 강희락 전 청장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차기 청장으로 낙점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용산참사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연 사퇴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강 전 청장이 승진이 아닌, 같은 계급(치안총감)에서 수평 이동하는 전보 인사라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독특한 사례로, 1969년 경찰총수(당시 내무부 치안국장) 계급이 치안총감이 된 이후, 치안총감을 두 번 지낸 인물은 강 전 청장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같은 인사 해프닝들은 결국 경찰청장 인사 시스템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경찰청장 후보군의 좁은 인재 풀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퇴직경찰이나 외부 전문가도 치안총수가 될 수 있도록 경찰청장을 개방직으로 뽑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은 올 3월 치안정감뿐 아니라 두 계급인 아래인 치안감도 경찰청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찰청장 후보군이 6명에서 31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내부 반응은 어떨까요? 경찰청장직 개방화와 관련해 외부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좁은 인재 풀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정치인 등 외부인사를 영입했을 경우, 정치적 중립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경찰은 수사뿐 아니라 정보수집, 경비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만큼 조직 수장이 이 기능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이와 관련해서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경찰청과 국회는 유감스럽게도 개점 휴업 중입니다. 국회의장과 상임위원회를 배분하는 국회 원구성 협상이 지연돼 민갑룡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언제 열릴 수 있을 지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칙으로는 9일, 늦어도 19일까지는 청문회를 마쳐야 하지만 청문회를 진행하고 관련 논의를 이어가야 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아직 꾸려지지도 않은 겁니다. 국회 원구성 협상은 현재까지도 진전이 없어, 시간만 속절없이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