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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앞에서도… 의사와 약사 ‘밥그릇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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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보건복지부는 대한약사회를 ‘2018년 민간협력 자살예방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했다. “지역에서 약국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라 자살 고위험군인 빈곤층 노인의 자살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복지부 자살예정정책과 관계자)이다. 이장, 통장, 슈퍼마켓 사장 등 전국에서 55만명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로서 교육 받고 무보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좀더 전문성이 있는 약사들에게도 이 역할을 맡기겠다는 취지다.
약사회는 지난달 사업선정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약학정보원에서 개발해 전국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국관리프로그램(Pharmlt3000)에 자살예방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약국을 방문한 환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우울증약 등을 처방받은 환자들이 방문하면 본인 동의를 받아 자살예방 자가진단 등을 실시하고 자살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면 정신건강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등에 인계하겠다는 것이다. 환자상담에 따른 인센티브(상담료)도 약사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약사회에 올 하반기 1억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하지만 의사들이 들고 일어섰다. 약사들이 자살예방사업을 핑계로 의료행위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말 성명까지 내고 “자살예방은 고도의 정신과적 전문의학지식이 필요한데, 비의료인인 약사에게 문진 등의 진료행위를 허용하고 그에 대한 상담료를 지급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약사회에서 내세우고 있는 자살예방프로그램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의사들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은 “의사로부터 정신질환 치료에 필요한 약물을 처방 받아 약국에 갔을 때 약사가 처방전을 보고 ‘이건 자살위험 있을 때 처방되는 약물이다’라며 ‘자살위험 테스트를 하고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누가 동의하겠느냐”며 “자칫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데 복지부에서 사업심사 때 이 부분을 사전 조정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약사들은 의사들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해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자살률 감소를 위해 약사회가 사업에 동참했을 뿐”이라며 “약사의 본분인 복약상담을 통해 자살위험 환자를 발굴해 지역 의사나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하는 것이 왜 불법의료행위인지 모르겠다”고 발끈했다. 그는 특히 “약국을 방문한 환자의 동의를 얻어 자살이나 정신질환 관련 처방 약물에 대해 심층 복약지도를 하고, 우울증 자가진단을 진행한 결과를 데이터화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미 의사에게 처방 받은 약물을 조제ㆍ투약하는 단계에서 약사가 개입하기 때문에 의협에서 주장하는 의료행위나 개인정보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약사 간 직역싸움으로 사업자체가 시작도 전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정작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부는 양쪽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달부터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일정은 물론이고 약사회에서 밝힌 자살예방프로그램 활용 및 상담료 지급 여부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가 심사할 때는 문제삼지 않다가 의협이 반발하자 슬그머니 방향을 선회하는 것 같다”(약사회) “의료행위라 여길 수 있는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사전에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의협) 등 양쪽 모두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관계자는 “협의를 통해 사업이 원만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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