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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찾아 한국 왔는데”… 가짜 시비ㆍ인종차별에 멍드는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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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난민 인정률 2.4% 엄격
자국서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
스스로 구하고 제출하라는데
“체포영장 등 기록받기 위해
대사관 찾는 건 자살행위”
난민 신청자에 6개월 임시 비자
심사연장 등으로 계속 머무를 땐
취업 가능한 ‘인도적 체류’ 부여
취업 불가능한 ‘불인정 난민’은
3개월마다 비자 연장하며 버텨
난민 인정보다 더 힘든 구직
소개소 통한 일용직이 대부분
소개비 과다ㆍ월급 가로채이기도
알바 구함 식당ㆍ카페 찾아가면
“우린 흑인 안 뽑는다” 박대 일쑤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면요? 며칠 안에 들켜서 죽을 거에요. 거기서는 경찰 한 사람이 체포부터 심판, 처벌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요.”23년째 독재가 계속되는 고향의 상황을 설명하던 사보카(24)씨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장래가 촉망 받는 축구선수였다. 2010년엔 17세 이하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프리카 대회에도참가했다. 하지만 축구장에 관객만큼 많은 수의 경찰을 배치해 시민을 감시하는 나라에서 그는 행복할 수 없었다. 유명 선수인 그가 집권당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에 반대하며 야당 단체인 진봇(Ginbot)7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2016년 10월, 반정부시위와 진압이 반복되며 4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위 참여로 경찰의 표적이 된 사보카씨는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다.한국으로 피난 온 지 1년 6개월. 여전히 그는 ‘불인정 난민’ 이다. 한국 구단과 계약도 시도했지만 난민 신청중이라 취업허가를 받지 못해 좌절됐다. 사보카씨는 “한국에 와서 평화는 얻었지만 가족과 축구를 잃게 되어 마음이 텅 빈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보카씨를 만난 지난 1일은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지 딱 6년째 되는 날이다. 한국은 1994년부터 난민을 받아들였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주도에예멘 난민 561명이 들어온 최근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다. 게다가 여론은 이들에게 비우호적인 쪽으로 점점 더 기우는 양상. 추방 걱정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작은 자리 하나만을 바래 온 한국 사회 속 난민들의 입지는 점점 더 비좁아지는 모습이다.
‘진짜 난민’ 입증하기 위해 목숨걸어야 하는 설움
“가짜 난민은 나가라.”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난민반대집회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다. ‘진짜냐, 가짜냐’라는 질문은한국에 들어온 난민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정부의 난민심사과정은 신청자가 난민법이 규정한 “인종, 종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외국인”인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즉,신청자가 난민제도를 이용해 한국에 장기체류하며 취업하려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2015년 난민 인정을 받은 에티오피아 난민 다니(48ㆍ가명)씨는 이 같은 심사과정이 불가피하다는걸 인정한다. 그가 볼 때도 일부 난민신청자 중엔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자국 대사관을 쉽게 드나드는 등 국가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철저한 심사를 이유로 난민신청자 본인에게 자국에서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 구하고 제출하게 하는 현행 방식은 정말 보호가 필요한 난민들조차 위축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다니씨는 “난민심사관은 내가 반정부단체 행동을 하다가 탄압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가 발부한 체포영장 등 기록을 제출하라는데 이걸 받기 위해 자국 대사관을 찾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어렵게 증거자료를 구하더라도 이 문서가 진짜인지 입증하려면 경찰ㆍ검찰 등 정부쪽 기관에 확인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박해 위험을 높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난민이 처한 위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다소 엄격하다는 설명이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무용수인 엔젤(38)씨는 2002년 한국 회사의 초대로 공연을 하려고 왔다가 사기를 당하고 체불임금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발이 묶이게 됐다. 고향에 내전이 발발해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난민 신청 과정에서 번번히 ‘위험이 충분하지 않다’며 불인정 통보만을 받았다. 반면 같은 시기 유럽 국가들로 피신한 동료들은 대부분 난민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엔젤씨는 “지금도 간간이 테러로 친구가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부는 내가 계속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난민인정자가 되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만2,733명이 난민인정신청을 했지만 지위를 인정받은 건 전체 신청자 중 2.4%(792명)에 불과하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난민제도의 남용을 걱정하는 시선은 이해되지만 그럼에도 2017년 유엔난민협약 가입국 전체의 난민인정률 평균 36.4%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만 일하겠다고 해도 ‘손님이 불쾌해한다’며 차별
한국사회 속 난민들에게 구직은 난민인정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문제다. 최대 3~4년, 재신청 시 그보다 더 걸리는 난민인정과정에서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데 일을 구하는 것은 물론 일하는 과정에서의 차별 역시 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난민법상 난민인정신청자들에겐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임시 비자가 주어진다. 하지만 난민심사가 연장되거나 소송까지 이어져 계속 체류해야 하는 경우 정부는 사정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한다. 임시 체류 및 취업을 허가하는 비자인데, 이를 받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지금껏 전체 난민신청자 중 1,474명(4.5%)이 인도적 체류자가 됐다. 이마저도 받지 못한난민신청자는 취업불가 상태에서 3개월에 한번씩 임시 비자를 연장하며 버텨야 한다. 난민협약덕분에 그저 강제 추방당하지만 않을 뿐이다.
취업 허가 비자가 있다해도 난민에게 구직은 매우 높은 산이다.이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데다 한국어도 할 줄 모른다. 피난 과정에서 자국의 경력증명서나 학위증을 챙겨오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기존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결국 많은 난민은 인력소개소에서 일용직 일자리를 소개받는데이 과정에서 난민에게만 소개비를 많이 받거나 월급을 가로채는 경우도 생긴다. 파키스탄 난민 모한(40)씨는 “2014년 입국해서 직업소개소 소개로 어렵게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매일 15시간 넘게 일해도 하루 일당이 2만원 밖에 안됐다”며 “알고보니 직업소개소 사장이 중간에 2만원을 가로채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한씨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워 한동안 계속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구직과정에서 인종차별도 자주 겪는다. 콩고 출신 난민 신디(39ㆍ가명)씨는 “피부색을 바꾸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한국에 온 뒤 서울 이태원 인근에 머무르며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써 붙인 모든 식당과 카페를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우리는 흑인은 안 뽑는다’였다. 신디씨가 ‘서빙은 하지 않고 주방에서만 일하겠다’고 하자 더 고약한 답이 그의 폐부를 찔렀다. 식당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님들이 음식이 더럽다며 불쾌해 한다”고 했다. 가까스로 바느질 등 부업을 구해 생계를 잇고 있지만 그는 “늘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한다.
난민이 한국사회에서 공존하려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지만 실제 이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출입국ㆍ외국인 지원센터에서 난민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문화, 법질서교육 등을 제공하지만 센터의 연간 최대 수용인원은 164명에 불과하다. 법무부가 귀화신청자 등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사회통합교육이나 지자체의 한국어교실이 대체제이지만 정보와 시간이 부족한 난민들에겐 먼 얘기다. 4년 전 종교탄압을 피해 예멘을 탈출한 아브라힘(48)씨는 “절대 공짜를 바라는 게 아니다”며 “한국 정부가 난민의 구직 및 적응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민의 아이에게만이라도 온정을
가족과 함께 피난 온 난민, 특히 부모들에게는 또 한가지 고민이 있다. 자신의 불안한 지위 때문에 자녀들도 무국적자가 되고 교육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다니씨는 딸(3)의 출생신고를 3년째 하지 못하고 있다.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가자 ‘혼인증명서부터 떼어오라’고 한 것이다. 다니씨는 “빈손으로 한국으로 온 상태에서 누가 그런 서류를 챙겨오겠나”라며 “나와 아내는 함께 난민인정을 받았지만 이 기록이 다른시스템에서는 통용되지 않아이 서류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난민인정을 받지 못한 엔젤씨 또한자신과 남편이 한국에서 태어난 큰아들(12)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들은 운동신경이 뛰어나 중학교 축구팀에서 벌써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인데, 무국적상태라 초등학교는 다닐 수 있어도 중학교 진학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엔젤씨는 “우리 부부의 난민신청을 인정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코트디부아르에 한번도 가본적 없이 오직 한국 땅에서 자란 이 아이들만큼은 제발 보살펴주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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