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경기 하기도 전에 맹비난… 독일은 한국 두려워했다"

입력
2018.06.28 15:03

박지성(왼쪽) SBS 해설위원, 차범근 전 해설위원. 뉴시스
박지성(왼쪽) SBS 해설위원, 차범근 전 해설위원. 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국민의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지만,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경기 결과에 따라 영웅의 지위에 오르기도 하고 죄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특히 4년 마다 열리는 월드컵 기간에 더 그렇다. 선수들은 엄청난 인격모독과 비난에 직면할 때가 많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은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후배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그는 27일(현지시간) 한국과 독일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킥오프 직전 러시아 카잔 아레나 미디어센터에서 "이제는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비난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월드컵 시즌만 되면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라며 "경기도 하기 전에 선수들은 엄청난 비난에 휩싸인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랬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고 겁을 먹으면 몸이 굳고 경직되는데, 1차전 스웨덴전 때가 딱 그랬다"라며 "우리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욕을 먹고 기죽었던 팀이 어디 있나. 경기에 관한 비판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선수들의 사생활과 가족을 들춰가면서 비난을 퍼부었다"라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3월 이후 평가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냈다. 북아일랜드에 1-2, 폴란드에 2-3으로 패했고 온두라스전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월드컵 출정식이었던 보스니아전에서 1-3 대패를 안았다.

오스트리아 사전캠프에서도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볼리비아와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세네갈과 비공개 경기에서는 0-2로 패했다.

그때마다 네티즌들은 선수들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선수들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비판을 들어야 했다.

선수 가족들은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대표팀 신태용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신 감독과 관련한 기사엔 언제나 악플이 수북이 쌓였다.

몇몇 팬들은 신 감독이 실험만 한다고 해 '과학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붙였고, 또 어떤 팬들은 '트릭 발언'에 마술사라는 말로 신 감독을 조롱하기도 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지금 같은 분위기이면 한국 축구는 바뀔 수 없다"라며 "2002년 한일월드컵 전에도 팬들이 거스 히딩크 감독을 향해 얼마나 욕을 퍼부었나. 달라진 게 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표팀 선수들은 노리개가 아니다. 누구도 가족까지 거론하면서 비난할 권리는 없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차 전 감독은 울컥한 듯 말끝을 살짝 흐리기도 했다.

'독일통'인 차범근 전 감독은 독일 대표팀이 한국전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었데, 정작 우리는 밖에서 우리 선수들을 깎아내기에 바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독일과 만났던 1994년 미국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눈에 살기를 띠고 경기에 임했다"라며 "독일은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한국 대표팀을 상당히 두려워하는데 정작 한국 팬들은 선수들의 용기를 밖에서 무너뜨려 우리의 최대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축구대표팀에 용기와 격려를 주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할 때다. 한국 사회도 바뀌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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