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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기술 교육? 차라리 추리소설을 쓰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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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교육감과 대담에서
“의무화된 코딩 교육, 방식엔 한계
문법 가르치는 대신 사고력 키워야
여러 식재료 놓고 요리 맛 생각하듯
논리적 해결 방법을 배우는 게 핵심”
“한국 교실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먼저 심어줘야 한다고 봐요. 질문을 할 때 남의 시선을 두려워한다든가, 틀리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장점이 분명한 데도 항상 자신의 단점만을 생각해 두려워한다는데 있죠.”
6ㆍ13 교육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교실의 변화 행보에 어떻게 가속을 붙이느냐’다. 어떤 분야보다 변화 필요성이 크지만 역설적이게도 속도는 가장 더딘 한국 교육의 경직성을 지난 4년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해답을 찾기 위해 26일 조 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로봇공학자이자 미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인 데니스 홍(47)과 마주 앉았다. 홍 교수는 2009년 과학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에서 젊은 천재 과학자 10인에 선정되고, 미국에서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인 찰리 등 다양한 로봇을 창작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 교육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한 듯 거침없이 조언을 쏟아냈다.
데니스 홍=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들은 ‘인간 계산기’로 통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 문제는 기가 막히게 잘, 빨리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문제 혹은 답이 여러 개인 개방형 문제를 내면 딱 막혀버린다.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도 토론 참여의 적극성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질문을 안 한다는 점이 한계다. 질문을 할지 모르는 건지, 질문을 하기 두려워하는 건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조 교육감(이하 조)=“앞으로 4년 간 ‘질문 있는 교실’ 정책을 도입하려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1등의 장점을 더 빨리, 많이 배우는 게 습관이 됐다. 이 과정에서 질문이나 의심을 갖지 않는 데 길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데니스 홍=“적극 동감한다. 대신 한국 교실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먼저 심어줘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영어 성적을 100점 맞으면서도 수학이 0점이면 그 단점에만 파고들어 주눅이 든다. 잘 하는 부분을 격려해 주고 자존감을 높여줘야 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해 ‘제2, 제3의 데니스 홍’을 배출하기 위해 올해부터 코딩을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했다. 조 교육감도 이에 발맞춰 ‘서울형 메이커 교육(제품 기획ㆍ제작ㆍ완성을 모두 학생 스스로 판단해 이끄는 것)’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거점센터 구축 등을 약속했다.
홍 교수는 “코딩교육 의무화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방식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고 했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코딩 문법만 가르치려 하는데 코딩 교육의 핵심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정의하고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정부 고위 인사가 코딩교육에 대해 묻길래 문법 교육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추리소설을 직접 쓰게 하고 요리 교실을 많이 만들라고 했어요. 당황하더군요. 추리소설을 쓴다는 건 단계적ㆍ논리적으로 단서를 마련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이고, 요리는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서 어떤 맛이 날지 차근히 생각해보는 과정이에요.” 그는 “지금처럼 교사가 컴퓨터에 입력할 언어들을 던져주고, 아이들이 그걸 받아 넣어 결과를 내면 끝나는 식의 소프트웨어 교육은 한계가 있다”고 단언했다.
대담 주제는 ‘융합 교육’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선 오래 전부터 융합 교육이란 용어가 교육 현장을 달궈왔다. 올해부터 도입된 2015 개정 교육과정도 이에 맞춰 문ㆍ이과 구분을 없앴고 학생 참여형ㆍ토론형 수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인공지능(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어떻게 교육을 혁신시켜서 미래를 만들어낼지 고민이 많다. 학생들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나.“
데니스 홍=“그간 제작한 로봇 중에 다리가 3개 달린 ‘스트라이더’ 로봇이 있다. 이건 어렸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딸의 머리를 땋아주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찰리’라는 로봇을 만들 때는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사슴 무릎을 상상했다. 이렇게 관계 없는 것들을 연결 짓는 능력을 길러주는 중요한 요소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내가 소장으로 있는 로멜라 로봇연구소에는 밤낮 할 것 없이 학생들이 북적거리는데, 그게 약속이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으면 열정이 생기고 이후 탐구력, 창의성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학부모들도 이제는 자녀들이 무조건적으로 공부를 잘 해야 한다기 보다는 ‘꿈을 이루는, 행복한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학생들이 가치 있는, 담대한 꿈을 꾸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가.”
데니스 홍=“한국에선 꿈이 곧 직업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꿈은 직업과 같을 필요가 없다. 또 꿈이 여러 개 있어도 된다. 부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제 꿈은 로봇공학자였지만 유일하진 않았다. 지금도 요리사, 마술사 등 많은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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