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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보호 5년 더 늘린다고 ‘제2 궁중족발’ 사라질까

입력
2018.06.30 09:00
수정
2018.07.03 12:5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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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임대차법 12차례 개정에도

임대인ㆍ임차인 깊은 갈등 지속

“단순 계약기간 연장 편의적 발상

퇴거시 적절한 보상금 등 대책을”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해 구속된 서촌 궁중족발 사장의 아내 윤경자씨가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제공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해 구속된 서촌 궁중족발 사장의 아내 윤경자씨가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제공

젠트리피케이션 사태의 심각성을 가늠케 하는 최근 서촌 ‘궁중족발’ 사건을 계기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에 대한 관심이 연일 뜨겁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라는 지적들도 쏟아졌다. 궁중족발 사건은 지난 7일 임대료 갈등 끝에 임차인이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한 일이다.

20대 국회에는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24건이나 발의됐지만 1건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때맞춰 국토부는 지난 25일 ‘계약갱신청구기간 10년 연장’ 추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업보호기간을 몇 년 늘리는 방식이 곳곳에서 폭력으로 드러나는 임대ㆍ임차인 갈등을 해소시킬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12차례 개정하며 임차인 보호 강화

2002년 처음 제정된 상가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기간을 5년으로 정한 게 핵심이다. 임차인에게 5년 동안은 쫓겨날 걱정 없이 장사할 권리를 보장한 내용이다. 그러나 법을 우회하기가 너무 쉬웠다.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X100)의 기준을 넘으면 보호받기 어려웠고 건물주가 재건축을 한다고 하면 대항하지 못했다.

이후 12차례에 걸친 법 개정과 10차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환산보증금 기준 상향 ▦권리금 보호 ▦임대료 인상 상한 축소 등 임차인의 권리를 더욱 강화했다. 2013년 개정으로 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갱신청구권을 보장했고 2015년에는 권리금 보호조항을 신설해 임대인이 임차인간 권리금 수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임차권에서 영업권까지 보호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연 12%였던 임대료 인상 상한은 2008년 9%로 축소됐고 올 1월에는 다시 5%로 낮췄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업보호기간(5년)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5년은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거두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갱신청구기간을 늘리는 방안이 주로 논의돼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의 상당수(홍익표, 노회찬, 이언주 의원 등)가 10년 연장안을 담고 있다.

계약거절 정당성 심사 등 근본조치를

그러나 갱신청구기간을 5년 연장하는 방식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상가임대차법 개정작업에 참여했던 한 법조인은 “19년째 영업 중인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임대인과 분쟁했던 사례가 있었다. 갱신청구권을 10년으로 늘리면 영업 11년째인 임차인이, 15년으로 늘리면 16년째인 임차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단순히 연수를 늘리는 방식은 편의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임대인은 5년만 지나면 이유없이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고, 임차인은 보상은커녕 원상복구까지 한 뒤 가게를 비워야 한다. 이에 임대인이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해 장기계약을 유도하고, 퇴거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차인에게 영업이익을 거둘 기회를 보장하거나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절하면 재판을 통해 사유의 정당성을 심사받게 하고, 이때 고액의 퇴거보상금을 지불하면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계약기간이 종료됐다 해도 임대인의 필요에 의해 세입자를 내보내면 퇴거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계약 갱신과 임대료를 둘러싼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도 요구된다.

'골목의 전쟁'의 저자 상권분석가 김동준씨. 홍인기 기자
'골목의 전쟁'의 저자 상권분석가 김동준씨. 홍인기 기자

한편 계약갱신청구권 연장(10년)과 임대료 인상제한(5%)의 동시 적용은 과도한 임차인 보호라는 견해도 있다. 재산권 침해일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경직시키고 경쟁력 없는 업체의 자연 도태를 막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임차인 보호가 강화되는 만큼 권리금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권분석가 김영준씨는 “‘권리금 장사’를 목적으로 치고빠지는 무임승차자들이 상권을 황폐화하는 주범”이라며 “과거 임차인 보호가 취약할 때 영업수익의 우회적 보전수단으로 권리금이 등장했지만, 임차인의 기여분은 임대인에게 보장받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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