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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리영희, 냉철한 이성으로 반공주의 맞서 ‘탈냉전 대전환’ 치열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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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사상의 은사’
중국 재인식, 베트남전쟁 등 분석
냉전체제 갇혀있던 시민의식 깨워
군사정권 시절 운동권 필독서로
-이성의 힘 믿은 사회민주주의자
냉전 반공주의 실체 비판적 해부
외세의존적 사상, 외교 비판하고
언론 자유와 인권 중요성 일깨워
-시대를 예견한 지식인
주체적 외교, 평화 민주주의 강조
노무현정부 동북아시대론 이어져
中 부상 ‘G2시대’ 헤쳐나갈 등불
지난해 나는 현대 서구사회에서 세상을 뒤흔든 저술과 사상에 대한 책을 펴낸 적이 있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한국사회를 뒤흔든 저작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책은 ‘전환시대의 논리’이지 않았을까. 펜이 낡은 우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날카로운 이성의 무기라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만큼 이성의 힘을 가장 잘 발휘한 저작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1974년에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긴급조치 세대’와 1980년대 ‘86세대’에게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학생운동 세대를 이른바 ‘전논(‘전환시대의 논리’의 줄임말) 세대’라 불렀던 것에서 볼 수 있듯, ‘전환시대의 논리’는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리영희는 냉전반공 세대에게 ‘의식화의 원흉’이라 비판받았지만, 진보적 청년세대에겐 ‘사상의 은사’로 존경받았다. ‘사상의 은사’라는 표현은 지식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리영희는 진정 용기 있는 지식인이었다. 1970년대 당시 성역이었던 냉전과 반공주의에 도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지식인 리영희는 냉전분단체제에 맞서는 진보적 지식사회의 최전선에 언제나 서있었다.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한 지식인이 사회변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리영희보다 더 강렬하게 보여준 사상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냉전 반공주의에 맞서서
리영희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한국해양대에서 공부했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한양대에서 가르쳤다. 리영희가 펴낸 책들은 2006년 한길사에서 ‘리영희 저작집’ 전12권으로 출간됐다.
사상가 리영희를 우리 사회에 등장시킨 것은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아시아, 중국, 한국’이 부제인 이 저작은 전후 공고화된 냉전체제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리영희는 ‘머리말’에서 말한다.
“지동설을 증명한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의 출판을 위탁 맡은 신학자 오리안더는 교회 권력과 신학 도그머와 그에 사로잡혀 있는 민중의 박해 때문에 그 책을 ‘사실’로서가 아니라 ‘가설’이라는 궤변을 서문에 삽입하여 출판했다. (…) 격에 안 맞는 코페르니쿠스와의 비교를 자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정치적 신학’의 도그머가 지배하는 날까지는 가설인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는 것이다.”
가설이라는 겸양의 표현을 쓰지만 이 책은 냉전 반공주의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용기와 의지를 담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변화하는 동아시아를 다룬다. 중국의 재인식을 중심으로 닉슨 독트린과 미국의 대외정책,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화,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역사와 현실에 이르는 분석을 통해 냉전체제에 갇혀 있던 지식인과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웠다. ‘전환의 시대’에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대외의존적 사유에서 주체적 현실인식에로의 전환을 요청하는 게 이 책에 담긴 목표였다.
한반도 문제는 동아시아 지정학(地政學)과 지경학(地經學)의 중심을 이룬다. 한반도는 해양세력(미국ㆍ일본)과 대륙세력(중국ㆍ러시아)의 교차점에 놓여 있고,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 대해 리영희는 두 가지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냉전적 보수주의에서 벗어난 균형적 현실주의의 시선이 하나라면, 외세적 시각을 넘어선 민족적 시각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다른 하나다.
리영희 사상의 현재적 의미
리영희는 합리적 이성의 관점에서 우상 파괴자의 역할을 떠맡았다. 그에게 우상이란 냉전 반공주의였다. 리영희의 기여는 미국의 패권적 정책,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중국의 새로운 부상을 주목함으로써 냉전 반공주의의 실체를 해부했다는 데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 이후 리영희는 ‘우상과 이성’ 등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리영희 사상을 관통해온 것은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평화주의다. 그는 외세의존적 사상과 외교에 맞서 주체적인 방향과 전략을 요구했고, 군사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인권의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리영희의 정치 이념은 사회민주주의다.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에 실린 한 인터뷰에서 이념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노선이 ‘중도좌’라고 답한 바 있다. (1991년 6월 25일자 한국일보 인터뷰).
“중도좌를 다른 말로 하면 사회민주주의인데, 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니는 필연적 결과로서의 인간 소외와 무제한적 이윤추구 경쟁으로 인한 부패ㆍ타락ㆍ범죄 등을 치유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사상ㆍ철학적 부분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리영희는 1970~80년대 진보적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다. ‘이론적 실천’을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했던 리영희의 삶과 사상에 대해선 앞서 지적했듯 보수와 진보에 따라 그 평가가 사뭇 달랐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리영희는 진보세력의 상징적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2005년에는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나눈 자전적 대담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적 시점에서 돌아볼 때, 비록 세세한 가설들은 틀렸을지 몰라도, 주체적 대외정책을 모색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리영희의 주장은 선구적인 통찰이었다. 한 사상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세세한 나무의 관점이 아니라 전체적인 숲의 관점이 온당하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북아 시대론’도 냉전분단체제론을 넘어서려 했던 리영희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담론이자 정책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리영희가 겪었던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기소 또는 기소 유예, 세 번의 징역’은 우리 현대사에서 진보세력의 역사를 그대로 상징한다. 그의 삶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에 맞선 반대 시위에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렇듯 평화주의자였다. 역사의 관찰자인 동시에 주인공이었던 그는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전환과 미래
어느 나라든 지식인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의 하나는 시대의 미래를 선구적으로 읽어내는 일이다. 시대에 대한 전망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는 예견된 경로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의 진로는 기성 체제로부터 주어지는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 그리고 이 안에서 집합적 행위자들이 추구하는 전략적 선택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어우러져 결정된다.
리영희는 우리 사회에서 시대의 미래를 날카롭게 전망한 드문 지식인이었다. 그는 1970년대에 민주화 시대와 탈냉전 시대를 소망하고 또 예견했다. 국면사적 시각에서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사회학자 조희연이 말한 바 있는 ‘반공규율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고, 세계 사회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냉전 시대에서 탈냉전 시대로 변화했다.
21세기가 열린 이후 가장 주목할 세계사적 흐름의 하나는 중국의 도전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가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세계사회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서 ‘G2 시대’로 재편돼 왔다는 게 하나라면, 우리에게 기회와 성장의 땅이었던 중국이 경쟁과 추격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중국의 성장 추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서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G2 시대가 공고화될 것은 분명한 경향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에서 우리가 어떤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는 매우 중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한미관계 및 한중관계는 남북관계와 더불어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정치·경제적 대외관계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하지만 이제 중국으로 대표되는 대륙세력과의 관계 또한 강화해야 한다.
리영희는 새가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한 바 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라는 두 날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균형 잡힌 대외정책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는 G2 시대에 우리에게 부여된 매우 중대한 국가적 과제다. 시대의 전환 속에서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고 또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박경리의 ‘토지’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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