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통해 일감 구하는 긱 경제… “일자리의 미래” vs “저질고용 양산”

앱 통해 일감 구하는 긱 경제… “일자리의 미래” vs “저질고용 양산”

입력
2018.06.26 04:40
수정
2018.06.26 08: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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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ㆍ대리운전 넘어 서비스시장 확대

"4차 산업혁명 시대 근로형태” 전망

"소득 쥐꼬리 디지털 비정규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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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당 보수 받는 긱 노동자 느는데

앱 사업자와 이윤 분배 불평등해도

노조 결성 못 하고 사회보험 못 들어

노사정 보호 방안 마련 등 시급

대리운전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자친구 회사로 꽃다발 좀 배달해주세요. 꽃값 포함 4만원 보내드리면 될까요?”

“네, 계좌로 이체해 주시면 됩니다.”

심부름꾼 양준형(28ㆍ가명)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고객과 직접 ‘고용’ 계약을 맺는다. 물론 배달이 끝나면 곧 바로 ‘해고’된다. 고용이 유지되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짧을 땐 5분에 불과하다. 중2 때부터 해장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배달 전문가’ 양씨는 지난해 말부터 아예 세종에서 터를 잡고 이런 심부름 대행을 하고 있다. 맛집 음식 포장해서 배달하기, 마트ㆍ편의점에서 대신 쇼핑해 전해주기, 세탁물 찾아다 주기 등이 주요 업무다. 고객의 주문은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카카오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받는다. ‘임금’은 거리와 소요시간, 난이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건당 최소 7,000원 이상이다. 불법을 제외한 모든 잔심부름이 가능하다.

이러한 심부름 대행과 별개로 배달대행 앱을 통한 일도 겸하고 있는 양씨의 한 달 수입은 300만원 안팎이다. 오전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해 하루 10만원 가량 번다. 근로 시간이 길어 보이지만 사실 고객 호출이 없을 때는 ‘자유시간’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양씨는 의외로 이런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직장 상사 스트레스도 없고 출퇴근을 할 필요도 없이 오직 고객 요청만 제대로 수행하면 된다”며 “열심히 뛴 만큼 버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인영(60ㆍ가명)씨도 가사ㆍ청소 도우미를 중개하는 앱을 통해 일감을 수주한다. 전에는 가정에서 직접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정기적으로 월급을 주는 방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앱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이들이 더 많다. 처음엔 일감이 안 들어오는 날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는 예약이 밀린 상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렇게 4시간 정도 일하면 5만~6만원, 8시간 근무하면 9만~10만원을 벌 수 있다. 박씨는 “지금은 1인 가구와 젊은 층에서도 가사 도우미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쪽이나 일하는 쪽 모두 일손ㆍ일감 구하기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경제가 성장하며 양씨와 박씨 같은 ‘긱(gig) 노동자’가 늘고 있다. ‘긱’이란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임시로 섭외돼 일하던 연주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카카오톡이나 우버, 에어비앤비 등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단기로 전문적인 서비스를 중개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독립적인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배달,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에서 증가하기 시작한 긱 노동자는 점차 서비스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과 연결된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앱과 웹사이트 등 디지털 중개 플랫폼을 통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손쉽게 연결되는 환경이 조성되며 바야흐로 ‘긱 경제‘(gig economy)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긱 노동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디지털 중개 플랫폼은 ▦대리운전ㆍ배달ㆍ콜택시 등 운송 서비스 ▦가사도우미, 간병 및 호스피스 ▦청소, 경비 용역 ▦홈페이지 제작, 앱ㆍ웹 개발 등 정보기술(IT) 관련 업무 ▦디자인, 글쓰기, 통ㆍ번역, 회계, 마케팅 등 전문 업무 ▦출장 미용ㆍ웨딩 등을 망라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긱 노동자는 비상시적이고 비정기적인 1회성 일감을 구하며, 건당 일정한 보수를 받는 속성을 갖는다. 일거리 수주는 통상 인터넷 상에서 ‘선착순’으로 이뤄진다.

긱 노동에 대한 유의미한 국내 통계는 아직 없다. 그러나 플랫폼을 이용해 일감을 찾는 긱 노동자는 이미 비정규직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종 비정규직’ 또는 ‘디지털 프리랜서’란 말까지 생겨나고 있다. 향후 미래 노동에서 주된 근로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해외 연구에 따르면 이미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선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이용해 유급 일자리를 구한 적이 있는 이들의 비율이 11~23%를 기록하고 있다. 고용정보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도 2020년 사회적 이슈로 ‘플랫폼 노동 증가에 따른 특수고용종사자의 확산’을 꼽을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업의 ‘고용 털어내기’ 요구가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은 수당과 각종 사회보험료, 퇴직금, 교육 훈련 등을 제공해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 대신 업무, 시간, 프로젝트별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근로자들도 스마트폰 보급과 앱에 기반한 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힘입어 어렵게 취직을 하지 않고도 손쉽게 일감을 찾을 수 있다.

긱 노동자는 엄밀하게 볼 때 근로자일까 아니면 자영업자일까. 해장국집에 고용됐을 때의 양씨는 근로자다. 그러나 이제 앱 중개를 통해 고객에게 직접 심부름과 배달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양씨는 자영업자에 더 가깝다. 일하는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소속됐던 사업장과 임금을 주던 고용주, 양씨의 지위 등은 모두 바뀌었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지위보다 긱 노동자 확산이 노동시장 전체의 고용불안을 해치고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를 대거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긱 노동자들은 이미 일감을 알선ㆍ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높은 수수료를 통해 소득을 가로채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긱 노동자들은 개별 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만큼 노사협의나 쟁의 행위도 할 수 없다. 산재ㆍ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10년 간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온 김성복(51)씨는 앱을 통해 대리기사를 중개해주는 업체가 늘어나며 소득은 줄고 경쟁만 더 치열해졌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대리 수요는 고정돼 있는데 기사들이 선착순으로 일감을 가져가는 구조라 여러 앱에 가입할 수 밖에 없다“며 “수수료만 배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달에 300만원 수익을 올려도, 3,4개 업체에 내는 수수료와 통신비, 보험료 등을 빼면 겨우 200만원도 손에 못 쥘 때가 많다”고 말했다.

용달 기사인 최석규(50)씨도 “예전에는 기사들이 한 군데 모여있다 ‘콜’이 오면 순서대로 나가는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물동량 정보가 게시되면 선점하는 기사가 일감을 수주하는 구조”라며 “플랫폼 사업자가 정보를 모두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기사들은 과거보다 더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도 사업자에게 예속돼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씨는 “소위 근로자라면 4대 보험도 들고, 노조도 결성해 노동자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제도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긱 노동자가 확산될 경우 질이 안 좋은 일자리인 비정규직 노동자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디지털 중개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긱 노동자는 신종 비정규직”이라며 “노동 강도도 높고 위험이 따르는 일이 많은데 노동자끼리 결속이 어렵고 파편화돼 있어 하루빨리 노사정이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해 근로자에서 자영업자로 지위가 바뀐 경우에는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게 맞다”며 “이들 모두를 자영업자로 분류할 경우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커지고, 플랫폼 사업자와 노동자 간 이윤 분배도 더 불평등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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