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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떨어뜨려 앞니 4개 갈아낸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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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이모(34)씨는 4년 전 누워서 문자를 확인하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앞니 4개를 갈아내야 했다. 앞니가 쌀알만큼 깨졌을 뿐인데, 치과 원장의 권유로 ‘급속교정’이라는 치료를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씨는 “앞니로 치킨도 뜯지 못하게 됐고, 치아가 검게 변하면 임플란트 시술까지 받아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진료기록부를 위ㆍ변조한 치과와 증거사진을 허위로 제출한 변호사를 용서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씨가 강릉 속초의 S치과를 찾은 건 2014년 12월 24일. 치과에서 근무하던 월급 의사 A씨는 깨진 치아에 임시 보철물을 끼워주면서 “일주일 후 상태를 봐서 새 보철물을 하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진료실에서 만난 S치과 원장은 앞니를 가지런하게 교정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치료비도 14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이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치료법,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 없이 원장은 이씨의 앞니 4개의 둘레를 갈아내 작은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이씨는 “통상 하는 교정이고, 과도하게 튀어나온 부분만 갈아내는 줄 알았는데 진료대에서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면서 “너무 놀라 뭐라 항의도 못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치료는 치아를 깎아내 레고 블록의 요철처럼 만든 다음, 치아 형태의 보철물을 끼워 넣는 것으로 치아가 못 쓰게 됐을 때 하는 방법이지, 치아 교정은 아니었다.
이날 저녁 마취가 풀리면서 이씨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렸다. 다음날 S치과에 갔더니 원장은 그제서야 시술 방법을 설명했고, 신경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처음부터 신경과 치아를 다 살려서 쓰고 싶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신경을 4개나 제거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원장은 “일주일 경과를 지켜보면 안 아플 수도 있으니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만 했다. 통증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고 일주일 후 월급 의사 A씨가 이씨의 신경제거 시술을 했다.
이씨는 S치과 원장의 말을 더는 믿을 수 없어 다른 치과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앞니 4개에 남아 있는 신경까지 괴사했고 염증이 심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치과 원장은 “멀쩡한 치아를 갈아내가면서 심미적 이유로 보철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치료법”이라고 했다. 이씨는 치료비로 3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했다.
이씨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했다. 위원회는 S치과 원장에게 “성급하게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치아 삭제를 시행했고, 설명 미흡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씨가 치료 선택에 좀더 신중할 필요도 있었던 점 등을 고려, S치과 원장의 책임 범위를 60%로 제한했다. 전체 치료비와 향후 보철 치료비를 합친 915만원의 60%인 약 55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강제력이 없었다.
이씨는 자신이 입은 손해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1심은 S치과가 대응하지 않아 이씨가 승소했으나 지난해 12월 2심은 S치과 원장의 책임을 20%만 인정했다. 현재 환자의 상태가 나쁘지 않고, 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므로 위로금으로 200만원 정도를 지급하라는 게 판결의 내용이었다.
이씨는 분통이 터졌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돈이 없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소송을 맡긴 것이 후회됐다. 그는 기억을 되짚어보고, 판결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발견했다. 첫 번째는 2015년 1월 자신의 진료기록부를 복사해줄 때 병원 직원들이 기록을 새로 작성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몄다는 게 생각났다. 그는 “직원들이 내 기록부를 사무실로 갖고 가서 연필로 썼던 것을 지우고 새로 작성해서 복사해줬다. 사본을 보면 다 지우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민사소송 때 증거로 제출한 사진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S치과의 변론을 맡은 L법률사무소가 치료 후 사진이라면서 가지런한 치아 사진을 법원에 제출했는데, 누가 봐도 내 사진이 아니다”라며 “법률사무소 사무장도 직원의 실수라고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런 자료들을 모아 S치과 원장을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진료기록부 조작), L법률사무소를 소송 사기 혐의로 올해 4월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도 이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진료기록부 조작은 의료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비교적 중한 범죄이지만 담당 조사관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18일 확인한 결과 그의 고소장에는 ‘전부 혐의 없음’ 의견이 달려 검찰로 이송됐다. 이씨는 “내가 법을 좀 안다는 경찰인데도 이렇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법을 모르는 시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잘못된 치료와 소송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나 많은데 S치과 원장은 아무일 없다는 듯 지내는 걸 보니 정의라는 게 있는지,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호소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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