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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ㆍ자질보단 충성파 골라 키워… 위기 구할 리더가 없다

입력
2018.06.18 04:40
수정
2018.06.18 11:33
3면
#1 이명박ㆍ박근혜 정권때 계파 득세 퇴행적 정치로 궤멸수준 인물난 차세대 주자커녕 당 대표급도 없어 올드보이 이끈 선거 ‘예고된 참패’ #2 보수 리셋 원동력 인물서 찾아야 외부인재 충원 방식 대안 떠올라 내부인물론 원희룡 등 거론 불구 ‘20년간 정치’ 개혁 이미지 퇴색
보수정당 지도부가 14일 6ㆍ13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개를 숙였다. 홍준표(왼쪽)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오른쪽)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날 각각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는 “당분간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오대근 배우한 기자
보수정당 지도부가 14일 6ㆍ13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개를 숙였다. 홍준표(왼쪽)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오른쪽)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날 각각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는 “당분간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오대근 배우한 기자

6ㆍ13 지방선거 및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홍준표(자유한국당), 유승민(바른미래당), 안철수(바른미래당) 등 보수정당 리더들이 일제히 퇴장했다. 그러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난해 대선이 이제야 진짜로 끝났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각 당의 대선주자였던 이들이 제대로 된 패배의 책임을 지거나 원인을 짚어보기도 전에 당의 전면에 복귀할 때부터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6ㆍ13 이후’다. 공황 상태에 빠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내부의 가장 큰 두려움은 각 당의 대표급 주자들이 빠진 자리를 메우겠다고 자천타천 나서는 인사들의 면면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당장 간판으로 내세울 만한 차세대 주자가 드문 현실은 둘째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세대교체가 가능하도록 평소에 청년보수 육성 시스템이 당에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부에서 인원을 충원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보수가 재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보수의 인물난은 2016년 탄핵 이후부터 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탄핵과 함께 무너진 한국당은 지난해 조기대선 때 ‘성완종 리스트’로 위기에 빠졌다 기사회생한 홍준표 전 대표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홍 전 대표뿐 아니라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김문수 전 경기지사, 북핵폐기추진특위 위원장을 맡아 강경보수 기조로 홍 대표와 당을 이끈 김무성 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당에 합류한 이재오 전 의원 등 구당의 전면에 나선 이들은 모두 22년 전 15대 국회 입성 동기다. 소위 ‘올드보이’들이 선거를 이끌고 구당에 나섰을 정도로 내세울 만한 리더가 없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 계파정치를 인물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17일 “당장 박근혜 정권 때만 돌아봐도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추종자만 골라 키웠고, 이명박 정권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능력과 자질보다는 충성심만 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궤멸 수준의 인물난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친박계와 친이계가 자신들이 서로 득세할 때 (능력과 상관 없이) 공천 때 상대방을 쳐내다 보니 지금 이를 대체할 인물이 없는 것”이라며 “과거 민주당에도 계파 싸움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인물과 역할을 할 사람들은 당 안에 주로 머무르면서 후일을 도모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원희룡 남경필 나경원 오세훈 등 50대 정치인을 마지막 희망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특히 무소속으로 출마해 겨우 살아남은 원희룡 제주지사의 존재가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도 정치 입문 이후 20년 가까이 기득권 정치의 테두리 안에서 머물면서 참신하고 개혁적이었던 이미지가 상당 부분 퇴색한 상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역사적 맥락을 따라가면 지금의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크게 실력을 키우거나 노력하지 않고 체제 자체로부터 혜택을 받은 부분이 많다”며 “이전에 쉽게 정치를 했던 부분부터 돌아보고 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태근 전 의원도 “그 분들에게 현재 위기를 극복할 만한 정치철학 같은 게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번 선거가 구세대 정치인의 퇴장을 명령한 것이라고 볼 때, 그 자리를 누구로 채워야 할지에 대해 현재의 보수진영은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 외곽단체로부터 꾸준히 인재를 수혈해온 진보진영과 달리 이른바 보수진영은 폐쇄적인 공천 시스템 속에서 아주 제한적으로만 외부 수혈을 해왔고, 그마저도 ‘계파 줄세우기’로 인해 새 인물도 금세 기성 정치에 흡수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바른미래당이 대선 이후 청년정치학교를 열어 젊은 보수를 육성하는 실험에 나섰으나 아직 결과물을 낼 단계는 아니다. 보수당의 재건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보수의 리셋을 추진할 원동력은 결국 인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선거가 구세대 보수정치에 대한 20~40대 강력한 심판이었던 만큼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1971년 야당이던 신민당에서 7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의원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40대 기수론’ 수준의 파격적인 리더십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승함 교수는 “리더의 연배를 적어도 50대 초반까지는 내려야 한다”면서 “대신 보수의 특성상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과 세바스티안 쿠르츠(32) 오스트리아 총리 등 중도우파가 정권을 장악한 유럽에서도 이미 젊은 리더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작용하는 분위기다. 물론 세대교체가 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준한 교수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도량을 갖추고 있는 리더 발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이의재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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