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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좀 있다고 이런 것도 못 먹어? 배부른 소리 한다! 참 유별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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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자식이 이런 것도 못 먹어? 그래서 비실비실한 거 아닌가.”
결혼을 앞둔 직장인 이승준(35)씨는 얼마 전 고대했던 예비 장인과의 첫 대면에서 내내 꾸지람에 시달렸다. 고등어나 꽁치 같은 일반 생선뿐 아니라 갑각류, 어패류, 연체류 등을 조금만 먹어도 온 몸이 벌겋게 부어 오르고 두드러기가 나는 ‘해산물 알레르기’를 가진 이씨가 고향이 전남 목포인 여자친구의 집을 찾았다가 장인어른이 권하는 산낙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먹다 보면 괜찮다’고 강권하는 통에 이씨는 눈을 딱 감고 낙지를 꿀떡 삼켰지만,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서울 집에 돌아와 새벽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숨 쉬기조차 힘들어 결국 응급실에 실려갔다. 요즘 그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픈 것도 문제지만, 예비 장인이 이 문제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더 걱정이에요.”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것인데‘유별나다’ ‘편식한다’ ‘예민하다’. 특정 물질에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이다. 사실 알레르기(Allergy)라는 단어 자체가 ‘과민 반응’이란 뜻에서 왔다. 알레르기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외부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해롭지 않은 물질을 유해요소(항원)로 잘못 인식하면서 피부가 부풀어오르고 발열이나 기침, 설사, 구토, 가려움 등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는 항원을 몸에서 내쫓기 위한 정상적인 면역과정이지만, 심한 경우엔 기도가 붓고 호흡곤란이 오거나, 급격한 증상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아나필락시스’까지 겪을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의 주거형태 발전과 위생 상태의 발달 등으로 알레르기 질환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1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알레르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무려 1,496만명에 달한다. 국민 3,4명 중 1명 꼴이다.
그러나 흔한 질병이다보니 오히려 이를 가벼운 ‘경증 질환’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거지에게는 알레르기가 없다’는 말처럼 알레르기가 문명에 의한 병이다보니 “배부른 소리”라며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식품부터 특이 알레르기까지… 원인은 천차만별식품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은 “먹으면 낫는다”라는 잘못된 미신으로 인한 밥상머리 교육에 시달리곤 한다. 몸에 좋다고 여겨지는 우유와 생선, 계란 등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질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 ‘우유 알레르기’ 환자인 유지안(27)씨는 “초등학교 때 우유 급식이 나오면 늘 짝꿍한테 미뤄두거나 가방에 몰래 넣어가곤 했다”며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당장 우유 한 팩을 다 마시라고 강요당했다가 반 아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토했던 기억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2013년에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초등학생 A군이 학교 급식에서 우유가 든 카레를 먹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학교 급식에서 알레르기 유발 식품 공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급식법 개정안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법 개정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의 인식 변화다. 식품 알레르기는 현재로선 뚜렷한 예방책이 없어 진단을 받으면 해당 음식뿐만 아니라 비슷한 성분의 음식도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해당 식품을 직접 섭취하지 않고 알레르기 유발 음식과 함께 조리한 음식을 먹는 ‘간접 섭취’만으로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미지(41)씨는 “생과일 주스를 판매하는 카페에서 딸기 주스를 주문했는데, 직전에 토마토를 갈았던 믹서기를 사용한 탓에 입 주변에 두드러기가 난 적이 있다”며 “음료나 음식을 주문할 때 마다 냄비나 조리도구를 깨끗이 씻어달라고 부탁하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아쉬워했다.옆 사람이 흘린 커피가 몸에 튄 바람에 카페인 알레르기가 있는 17개월 된 아이가 응급실로 실려간 사례도 있다. 아이 엄마 신윤정(31)씨는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다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기분”이라고 했다.
식품 알레르기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제는 익숙한 꽃가루 알레르기부터 화장품이나 약물, 햇빛, 땀, 귀금속 등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은 도처에 널려있다. ‘선크림 알레르기’를 가진 탓에 매년 찾아오는 여름이 두렵다는 사람들도 있다. 임용희(30)씨는 살갗이 유난히 햇살에 약해 바깥을 5분만 돌아다녀도 피부가 벌겋게 올라오지만, 자외선 차단을 해줄 선크림을 바르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선크림을 바르기만 하면 모기에 물린 것처럼 온 얼굴에 빨갛게 오돌도돌한 발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임씨는 “선크림은 성분이 수십 가지도 넘는데다가 그 중 어떤 성분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게다가 시중에 나온 제품들이 대부분 성분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어 일단 발라보고 이 제품은 괜찮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어린이집 입소 거부에, 직장 내 차별까지알레르기 환자들에 대한 부족한 배려는 사회적 차별로도 이어진다. 어린이들의 경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유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거부하는 사례도 흔하다.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아이를 가진 윤새롬(34)씨는 주변 어린이집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 보육을 시작했다. 윤씨는 “우리 동네뿐 아니라 차로 통원이 가능한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10곳이 넘는 곳에 문의했으나 병원도 아닌데 아이의 식사를 일일이 신경 써 줄 수 없다고 모두 입소를 거부했다”며 “결국 아이의 건강은 엄마가 집에서 알아서 오롯이 책임지라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일산의 이모(32)씨는 아이의 점심과 간식을 집에서 준비해서 들려 보내는 조건으로 겨우 유치원 입학을 허락 받았다. 이씨는 “평소엔 그나마 괜찮지만 유치원에서 소풍이나 견학이라도 가는 날엔 걱정이 태산”이라며 “그런 날엔 유치원 측에서 넌지시 ‘등원 말고 집에서 쉬게 하라’고 해오는데, 시무룩해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알레르기로 인한 차별은 이어진다. 알레르기 때문에 화장을 할 수 없는 여성 직장인 윤모(32)씨는 이를 이유로 부당한 전보 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회사 로비에서 안내를 맡았는데, 어느 날 고위 임원이 보고 ‘화장도 안 한 사람을 회사의 얼굴로 세워둬도 되겠냐’고 한 후로 내부에서 하는 일을 맡게 됐다”고 했다. 그는 “화장품 알레르기 때문에 화장을 못한다고 수 백 번 말했지만 ‘좀 꾸미고 다녀라’ ‘회사에 나오는데 예의가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호소했다. 남들은 다 가는 외국여행도 이들에겐 어렵다. 복숭아나 자두 같은 과일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대학생 이슬아(22)씨는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도 해봤는데, 외국엔 어떤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한 쇼크가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사회로부터 강요된 체념알레르기의 유일한 치료이자 예방법은 식품을 포함한 유발 요인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것이지만, 환자 본인 역시 ‘괜찮겠지’라고 가볍게 여겼다가 화를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안모(33)씨는 경기 화성의 한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주문하며 “알레르기가 있으니 새우를 넣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안씨의 짜장면에는 새우가 들어가있었고, 손톱 크기 정도의 새우 살이 씹혔으나 안 씨는 이를 뱉어내고 계속 식사를 했다. 그는 이후 목이 붓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목소리에 문제가 생겨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졌다. 통역사인 안씨에게는 치명적이라 그는 해당 중식당을 상대로 1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식당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안씨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고 음식에 새우가 들어있다는 점을 발견하고도 계속 음식을 먹었다"며 그의 잘못도 있다고 봐 배상액을 6,790만원만 인정했다.
다만 이런 체념이 사회로부터 강요됐다는 항변도 있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조리 식품에 계란과 우유, 토마토, 호두처럼 알레르기를 잘 유발하는 식품 18종이 들어가면 반드시 표시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표시 의무가 있는 곳은 버거킹과 도미노피자, 파리바게뜨 등을 포함해 30개 업체 1만5,000여개 매장뿐이다. 빵과 디저트 류 등을 판매하는 커피전문점이나 소규모 음식점들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음식점에서 일일이 식품 성분을 확인하려다간 무시당하거나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강현종(30)씨는 “메밀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메밀을 삶았던 냄비를 사용한 음식만으로도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나 음식점에 가면 먼저 메밀이 들어간 메뉴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며 “자세히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걸 왜 물어보냐’고 귀찮은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많아 음식점에 갈 때 마다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메밀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 중에서도 급성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장 식품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강씨는 “워낙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니 나중에 탈이 날 걸 감수하고도 그냥 먹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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