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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지난달 37만원 벌었는데… 경기 회복? 어느 나라 얘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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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연속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정부)
“지난달 37만원 밖에 못 벌었다. 사상 최악이다.”(이대 앞 구둣방 주인)
현재 우리나라 경기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현장의 목소리는 이렇게 다르다. 정부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이 살아나고, 소비와 투자도 부침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경기 지표를 근거로 내세운다. 올해 성장률도 3% 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인들과 중소기업 사장들의 체감 경기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들은 이미 경기가 침체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도ㆍ소매업, 숙박ㆍ음식업은 물론 제조업 관계자의 경기 인식은 ‘좌절’에 가까웠다. 지난 5월 기준 전체 취업자(2,706만4,000명) 가운데 이들 업종 종사자는 39%(1,047만4,000명)에 이른다.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치솟기만 하는 임대료, 급감하고 있는 소비 등은 이들을 폐업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 대학생과 중국인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날은 오가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실제로 1번 출구로 나와 150여m를 걷는 동안 비어있는 1층 상가가 6개나 눈에 띄었다. 한 때 인형뽑기방, 휴대폰 판매점, 카페, 미용실 등으로 성황을 이루던 자리엔 ‘임대문의’ 안내문만 덜렁 내걸려 있었다. 초역세권이지만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등 새로운 점포가 입주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한 상인은 “인건비, 임대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가 주변은 주요 고객이 학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대학생이 취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쇼핑할 여력이 없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변변치 않아 구매력도 급감하고 있다. 이대 입구에서 문구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는 최상철(37)씨는 “매출이 작년부터 매월 5~10%씩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며 “최근 문을 닫는 가게가 많은 이유는 당장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앞으로 장기적으로도 매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바 자르고 가족 동원해 연명정부는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부 지원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곧바로 인력을 감축할 수 밖에 없는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부터 이대 인근에서 꽃가게를 운영했다는 황모(60ㆍ여)씨는 “불과 2년 전만해도 인건비로는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는데 요새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웬만한 직원들에겐 시간당 1만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할 수 없이 올해 초부터는 딸과 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문을 열어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냥 오기로 장사를 하는 것“이라며 “근처 편의점이나 식당들을 봐도 아르바이트는 줄이고 대신 가족들을 총동원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김모(70)씨는 지난달 37만원을 벌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 25년간 해온 일을 이젠 접을까 고민 중이다. 김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매출이 오르든지 아니면 월세가 싸져야 버틸 수 있는데 자영업자들에게 유리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성토했다. 문재인 정부가 노인기초연금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증액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기초연금 좀 더 받는다고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가 좋아질 수 있겠느냐”며 “손주 용돈 쥐어주면 없어지는 돈인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자는 체감 못해대표적인 도소매업과 음식점이 밀집한 서울 명동과 남대문 일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명동 지하상가 안경점엔 주인 또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명동 화장품 가게도 중심 거리 점포들은 사람들이 붐볐지만 골목 안쪽에 위치한 가게들은 직원들만 입구 앞에서 서성였다.
명동의 한 분식집에서 근무하는 박모(52)씨는 “우리 가게도 원래 직원이 7명이었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근 1명을 줄였다”며 “이렇게 직원 1,2명씩 줄인 가게들은 손님이 조금 늘어도 직원을 재고용하지 않은 채 인원을 줄인 상태에서 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올랐지만 월급 외 따로 지급하던 식대를 포함시키는 꼼수를 쓰는 업주들이 생기면서 정작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없다고 밝혔다. 박씨는 “받던 식대가 사라지니 밥 못 사먹고 도시락 싸와서 먹는 직원들이 부지기수”라며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정책을 세우면 그대로 집행되는 줄 아는데,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버리지 못해 운영할 뿐, 회복 기대도 안해명동의 화장품 가게 직원 김모(24)씨는 “예전에는 중국인 관광객 중엔 화장품을 100만원어치씩 사가는 손님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최대 객단가(손님 1명당 매출)가 20만~3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9)씨도 “남대문시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것처럼 보이듯이 자세히 보면 물건을 사지 않은 채 빈손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소비력이 있는 중국인 발길은 뚝 끊겨 전반적으로 매출이 더 오를 것 같진 않다”고 전망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소매을 하는 박모(52)씨는 “오프라인 도소매업은 이미 인터넷쇼핑과 홈쇼핑에 밀려 한계에 달한 상황”이라며 “몇 년 전까진 직원을 2명이나 뒀지만 지금은 다 정리해 ‘나홀로 사장‘이 됐다”고 말했다.
제조업의 메카, 산단도 멈춰선다더 큰 문제는 성장률을 이끄는 제조업도 휘청거리고 있다는 데 있다. 제조업평균가동률은 하락세가 완연하다. 2015년 74.4%였던 가동률은 이듬해 72.9%로 하락했고 작년에도 72.6%로 떨어졌다. 올 1분기에는 71.0%에 그친 상황이다. 제조업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고 한국 경제의 엔진이 멈추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1일 찾은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송정동)와 화전일반산업단지(화전동)의 교차로 부근 벽보에는 ‘공장 급매’ ‘공장 매매ㆍ임대’ 등이 적힌 노란색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녹산ㆍ화전 산단은 조선 기자재, 자동차 부품, 기계업체 등이 입주해있는 부산 지역 최대 제조업 기지다. 화전 산단 내 기계업체 A사 대표는 “산단 내 조선 기자재 업체들은 물량가뭄 등 경기불황 여파로 개점휴업 상태”라며 “비용절감을 위해 공장부지를 팔고 임차료가 싼 부산항 신항(무상임대 50년)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들 산단 일대를 둘러보니 주차장이 텅 비어있거나 아예 입구가 닫힌 공장이 적지 않았다. 20년간 녹산 산단에서 선박용 밸브를 제조해온 B사의 작업장도 문이 잠겨 있었다. 산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B사도 산단 내 1만3,223㎡ 부지(본사+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라며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C사가 올초 1만6,528㎡ 부지를 파는 등 정말 많은 업체들이 산단을 등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장 매물이 많이 나오는데 잘 안 나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3.3㎡당 400만~450만원이던 공장부지 가격은 최근 350만원선까지 하락했지만 문을 두드리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부산시기계공업협동조합이 최근 산단 내 기계부품 관련 회원사 400여곳을 대상으로 공장가동 현황을 조사한 결과, 가동률이 60%에 불과했다. 1년 전만해도 80%를 넘나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공장의 일거리가 그 만큼 줄었다는 이야기다. 김종관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작년만 해도 회원사 중엔 밤 9시30분까지 야간 잔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부턴 일감이 바닥 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오전 9~오후 6시’로 근로시간이 강제 단축됐다”며 “회원사 중 조선 기자재나 자동차 부품 업체가 거의 없는데도 수치가 이렇게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전에는 ‘지금 힘들지만, 곧 살아나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올해는 회원사 10곳 중 9곳이 ‘너무 어려워 앞이 안 보인다‘며 ‘마지막 희망’마저 포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부산=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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