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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난 서울대 16학번…” 여학생에 무차별 문자 ‘쪽지남’ 골머리

입력
2018.06.15 04:40
18면
전화 걸어 거부하면 막말 일삼아 학번 등 개인정보도 정확히 파악 경찰 “경범죄에 불과…” 소극 대응
'연쇄쪽지남'이 지난달부터 이번달까지 서울대 여학생들을 상대로 보낸 문자. 피해자 휴대폰 캡처
'연쇄쪽지남'이 지난달부터 이번달까지 서울대 여학생들을 상대로 보낸 문자. 피해자 휴대폰 캡처

‘미연?’

서울대 재학생 이미연(가명ㆍ21)씨는 2일 모르는 번호로 뜬금없는 문자를 받았다. 이씨가 ‘누구냐’고 묻자, 상대방은 ‘서울대 다니지 않느냐. 난 16학번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전화를 걸어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심심해서 전화했다”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시도했다. 이씨가 전화를 끊자 “왜 무시하느냐”라며 따지고, 며칠 뒤 ‘저기’ 하며 다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서울대생을 사칭해 여학생을 골라 무작위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정체불명의 남성으로 인한 피해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40명. 소속 학과를 가리지 않고 여학생 이름을 문자로 보내 접근한 뒤, 통화를 거부하면 “왜 날 막 대하느냐” “학과에서 인기 많으냐,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냐” 등 막말을 일삼는 식이다. 특히 피해 학생들은 14학번 학생에게는 본인을 14학번으로 소개하고, 16학번 학생에게는 16학번이라고 하는 등 이 남성이 자신들의 개인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 남성을 과거에도 비슷한 행태로 4월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까지 했던 ‘연쇄쪽지남’으로 지목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서울 대구 등 전국에서 여성에게 ‘마음에 든다’는 내용의 쪽지와 연락처를 남기며 접근했고, 이 중 일부는 스토킹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남성의 연락처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새벽에 문자 받았다. 소름 돋는다’ ‘본인이 연세대 18학번이라고 소개했다’ 등 피해호소 글 수백 개가 올라와 있다.

언어적 성희롱이나 협박성 발언을 하지는 않더라도 낯선 남성이 본인 개인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피해자들은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김모(23)씨는 “많은 학생이 자신의 신상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지 못해 적극 대응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이 미적지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김씨가 11일 피해 사례를 모아 서울 관악경찰서를 찾았지만, “장난전화는 경범죄라 벌금이 10만원에 불과한데 학생들이 괜한 에너지만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불안감을 유발한 혐의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을 적용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해당 남성은 현재까지 행태로 보아 불안감을 조성했다고까지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며 “범인은 10만원만 내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느라 고생할 것 같아 그렇게 조언했다”고 해명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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