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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허물려는 중국… “미국 거부권 사용할 수도”

입력
2018.06.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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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그림 1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대북제재 지속 여부를 두고 중국과 미국 간 신경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북한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이전에는 제재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외교적 대화 진전을 명분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대북제재 완화ㆍ해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중국이 북미 회담을 전후해 북중 밀착을 과시하고 ‘역할론’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한 상황이라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13일 “중국 정부가 대북제재 완화 내지 해제 필요성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 적극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북미 회담 성사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시진핑(習近平) 배후설’로 곤욕을 치른 중국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관영매체나 관변학자들을 동원하던 이전과 달리 중국 외교부가 공식 브리핑에서 대북 제재 해제 필요성을 언급한 건 향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 과정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

실제 중국은 전날 대북제재 ‘조정’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한 뒤 북한이 결의를 이행하거나 준수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무턱대고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게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북미 정상이 ‘세기의 담판’을 통해 공동성명에 합의했고 이를 통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진전시키기로 한 만큼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는 차원에서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자는 명분을 앞세운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본심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려는 데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행에 최고위급 전용기를 내주고 전투기 호위 의전까지 펴면서 중국은 ‘북한 후견자’로서의 입지를 한껏 부각시켰다. 여기에 북한이 체제 안전과 함께 가장 원하는 대북제재 해제 카드를 꺼내 북중 밀착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선 대북 공조 체제를 균열시킨다는 당장의 비난보다 중장기적으로 한반도가 미국의 일방적 영향권 아래 놓이는 걸 막는 게 훨씬 중요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연말까지는 지금의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국 여론도 북미 회담의 성과를 아주 높게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 유엔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시도할 경우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대북제재의 강도를 높여가던 때마다 중국이 이에 반발하던 이전 상황이 공수가 바뀐 채 재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오는 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결과가 주목된다. 그의 주된 방중 목적은 북미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전반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지만 대북제재 문제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다른 외교소식통은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하진 않겠지만 미중 간 입장 확인과 의견 교환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무역ㆍ남중국해ㆍ대만 문제 등에 이어 대북제재 여부를 두고도 갈등이 심화할 경우 전반적인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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