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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청년 취업ㆍ주거난? 우린 더 힘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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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부족해. 어려운 일을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하잖아. 그게 잘못된 의식이야. 노동판에 들어가서 노동을 해야지. 외국 노무자들이 많이 들어오잖아, 그런 사람은 많이 쓰면서. 마음가짐을 좀 고쳐야 된다. 중소기업에도 좀 가고.”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신대철(80) 할아버지는 현재 청년들이 노인들보다 살기 힘들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요즘 것들’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은 이념적 차이에서 오는 분노보다 노인들의 저변에 더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복지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시대에 개인의 노력에 기대어 경제를 일으켜온 노인 세대들은 현재 청년들의 어려움에 공감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청년주택 건립 반대, 복지 확대용 조세에 대한 저항 등 현상의 기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들이 주축이 된 ‘태극기 집회’는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확대시켜, 보수 토양의 건전성 확대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노인들의 ‘분노’가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역류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노인들 다수 “청년들 어려움 공감 못 해”서울 종로구 탑골공원과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난달 말 인터뷰에 응한 70, 80대 노인들 중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안타까워 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김일광(75) 할아버지는 “취업 안 된다는 거 40%밖에 인정 안 한다”라며 “지금 젊은 애들 인력시장 나가면 하루 벌 일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편안하게 몇 마디로 돈 벌려니까 배고프다고 하는 거야. 노인네들 봐, 지금 우리 나이에 물건 파는 할머니들 얼마나 많아”라고 했다.
김진양(75) 할아버지 또한 “자기가 뛰면 다 돼. 50, 60년대 같으면 그런 소리가 어디서 나와? 취업이 안 되면 다른 거라도 해야지. 옛날 우리 선조들은 애들을 10명씩 왜 낳았겠어? 태어나면 먹고 사니까. 움직이면 뭐든 돼. 가만있어서 안 되는 거지. 고급으로 먹고살려고 하니까 안 된다하는 거야. 우리 때 하고는 천지 차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이제(80) 할머니는 “(지금 청년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는 힘든 거 같아. 취업이 안 돼. 장사도 안 돼. 되는 게 없잖아. 우리 아들도 가게를 얻으려니 권리금이 비싸서 지금 쉬고 있거든”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성씨는 “옛날보다 더 심해. 빈부차도 너무 크고. 옛날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근데 지금은 너무 심하니까, 애들이 진짜 저희가 노력하고 부모 유산 안 물려받고는 성공할 수가 없어. 근데 개척해야지.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야지. 산 입에 거미줄 칠까. 나도 젊었을 때 사글세부터 시작했거든.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왔잖아. 살 수 있어”라고 말했다.
대다수 노인이 청년들의 현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급격한 압축성장 시기를 겪어서 성장 환경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면도 있지만 현재 우리 노인층의 실정이 청년층보다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운 측면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상대적 노인 빈곤율은 45.7%(중위소득 50% 미만의 소득 비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평균(12.5%)의 3배가 넘는다.
노년층, 부동산 시장 기득권…복지ㆍ증세에 저항감 더 커지난 4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 주민 수십 명이 강동구청 앞에서 천호역 근처에 990세대 규모로 들어설 예정인 청년임대주택 반대 집회를 가졌다.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반대 위원회’의 이미란 위원장은 “노인이 대부분인 우리 주민들의 재산권을 방해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청년임대주택 반대 명분으로 노인의 권리를 내세운 것이다. 실제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었다. 이 위원장은 “여기 있는 어른들 대부분은 전ㆍ월세 수익으로 생활하는데 노후대책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주택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로 천호역 일대에서 원룸 사업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H아파트 주민들 또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우리 아파트 옆에 청년임대주택이란 미명하에 70% 이상이 1인 거주 5평(16.5㎡)짜리 빈민 아파트를 신축하는 절차를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다”라며 “아파트 가격 폭락, 빈민 지역화로 인한 이미지 손상 등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주택 보유자는 대부분 중ㆍ장년 이상이나 노년층이라는 점에서 청년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가 정책 추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 본보가 H아파트의 100세대를 임의로 골라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60세 이상 소유주가 48가구, 50세 이상으로 확대하면 67가구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2013년)에 따르면,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대(58.9%)와 50대 이상(42.0%)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차이가 컸다. ‘복지확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답한 20대는 14.2%였지만, 50대 이상은 6.3%에 불과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 띄우기’로 볼 수 있는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우선을 둬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50대 이상에서 9.8%로 가장 높았다.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원하는 20대는 1.7%에 불과했다. 임대료 소득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이 부동산 시장의 강력한 기득권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거 빈곤층’인 청년세대와 대립하는 현상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연금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이 미비해 노후 보장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복지 시스템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태극기 집회, 건전 보수층 목 졸라합리적인 정책 대결은 실상 진보와 보수가 선의의 토론을 통해 도출하는 과정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는 특히 보수층에서 정치혐오가 극심한 상황이다. 국내 보수지형이 노인들이 주축이 된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극우적 현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제1야당조차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유지되면서 건전한 보수를 지향하는 청ㆍ장년층은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노인의 분노를 엔진으로 한 극우 집회들이 정작 건전한 보수주의가 설 자리를 좁히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인 박모(31)씨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민주당 계열을 뽑은 적 없고 보수 정당 보수 후보만 선택했다”라며 “좌파는 마음에 안 들고 태극기 집회 같은 극우 이미지가 덧씌워진 보수는 형편없어서 그냥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젊은 보수,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치 아이콘이 나와야 이걸 극복할 것 같은데 마음 붙일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극우보수와 달리 북한의 개방과 남북화해 분위기에 대해 “대다수 국민도 이걸 좋아하는 걸 체감하며, 나도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조정원(54)씨는 “보수가 강세인 부산에서 평생을 살면서 보수를 뽑아야 나라가 사는 줄 알았는데 최근 변화와 문재인 대통령 하는 걸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며 “태극기 집회를 TV로 보곤 하는데 다른 나라 국기까지 들고나오고 보수 이미지가 아주 이상해져서 어디 밖에 나가 보수주의자라고 말도 못 한다”고 말했다. 성이제 할머니는 태극기 집회에 대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젊은 세대가 넘치는 혈기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다면 이해하겠는데,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태극기 집회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새로운 보수세력에 대한 노인층의 지지는 미미하다. 지난해 19대 대선 출구조사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20대에서 13.2%의 득표율을 기록해 심상정 정의당 후보(12.7%)를 앞섰으나, 고령층으로 갈수록 유 후보의 득표율은 뚝 떨어졌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지방선거가 태극기 집회를 평가하는 변곡점이 됐다”라며 “태극기 집회가 광장에서 극단의 목소리를 많이 냈고, 김문수 등 제도권 정치인들도 많이 참여했지만 선거 결과를 봤을 때 태극기 집회가 보수를 인구학적으로 대변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수가 몰락했다지만 이번 선거에서 여전히 보수 후보에 표를 던지는 10~15% 이상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문제는 태극기 집회인데, 극우ㆍ반공 보수가 매스컴 등에서 보수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하고 이미지를 대변하면서 일반적인 ‘샤이(shy) 보수’ 유권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노출하기 꺼려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목소리 확대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기존 보수정당과는 다른 혁신 보수를 보여줄 세력이 나오고 세가 커져야 태극기 집회 세력이 줄어들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신이 보수라는 입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침묵할 수 있다”라며 “꼭 태극기 집회가 보수 지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한계를 그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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