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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간 부족했다” CVID 못 담아… 북한 버티기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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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핵 담판’ 이 되리라는 기대가 너무 높았던 걸까. 12일 북미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북한 비핵화 해법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문구가 포함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 해법에 대해 양국이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회담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CVID”이라면서 북한을 재차 압박했지만, 끝내 북한은 짧게는 비핵화 협상 20여년, 길게는 70년 간 계속됐던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에 대한 불신을 거둬들이지 못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8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하면서 ‘지도자 대 지도자 사이의 담판’이라는 전례 없는 비핵화 해법을 시도했지만, 3개월 남짓한 협상만으로는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기에 물리적으로 무리였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에 CVID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간이 부족했다”고 답했다.
CVID란 북한의 핵탄두(과거핵), 핵물질(미래핵), 핵실험장(현재핵)을 폐기해 북한의 핵 능력을 완전히 거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은 물론 숨겨져 있는 시설까지 폐기하고 관련 인력도 사후에 국제사회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과 관련해 지난달 8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요구사항을 “북한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선언은 ▦핵무기 시험ㆍ제도ㆍ생산ㆍ접수ㆍ보유ㆍ저장ㆍ배비(配備)ㆍ사용 금지(1조) ▦핵 에너지의 평화적 목적 이용(2조)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 금지(3조) 등을 담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특히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금지를 강조했는데, 이는 핵 물질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개발 봉쇄를 겨냥한 것이다. 당시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금지하겠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핵 물질 재처리 금지는 국제 보편적인 비핵화 요구보다도 강력한 것이라 북한으로서는 이를 주권 침해로 여겨왔다.
설령 완전한 비핵화(C), 검증가능한 비핵화(V)는 수용한다 해도 핵물질 재처리 금지는 미래의 평화적 핵 이용까지 봉쇄하는 것이어서 북한으로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8일 이란 핵 협정(포괄적 공동행동 계획ㆍJCPOA)을 탈퇴하면서 그 근거로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제한을 10~15년 뒤 해제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북한으로서는 더더욱 핵물질 재처리 금지는 받을 수 없었던 조건인 셈이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워싱턴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북한에게는 CVID라는 용어자체에 이념적 거부감이 있다”며 “북한은 CVID를 대북공격의 상징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CVID는 북한 붕괴를 공공연히 언급하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네오콘들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은 만난 것 자체로 어마어마한 이벤트”라면서도 “미국이 제시하는 CVID에 북한이 맞춰가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회담취소를 발표했을 때 북한으로부터 공동성명 내용 정도만 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걸로 보인다”며 “하지만 되돌리기는 너무 어려워 성과관리 정도로 목표를 수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버티기가 먹힌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판을 깰 수 없는 미국을 상대로 북한은 ‘불가역적’이라는 원칙을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버틴 것”이라면서 “향후 협상에서도 북한은 이 부분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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