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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내밀며 "범인 맞지?" 수사 기본 안지킨 진술은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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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서울 송파구 한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A(23)씨와 B(25)씨는 ‘자신들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옆 테이블에 있던 C(35)씨와 가벼운 말다툼을 벌였다. 이후 새벽 5시쯤 술을 마시고 나온 두 사람은 술집 앞 주차장 인근에서 폭행을 당한다. 두 사람 진술을 보면 누군가가 A씨 몸을 넘어뜨려 주먹으로 얼굴을 수 차례 때렸고, 이를 말리던 B씨 역시 주먹으로 여러 차례 얼굴을 맞았다. A씨는 치료기간을 알 수 없는 안면부 찰과상을, B씨는 전치3주 부상을 당했다.
사건 발생 1~2개월 후 경찰은 B씨에게 C씨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범인이 맞는지 물어봤고, B씨는 사진 속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A씨는 당시 기절을 해서 범인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B씨를 통해 자신을 때린 사람이 C씨라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피해자들의 진술 ▦상해진단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근거로 C씨를 상해 혐의로 기소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은 1년간 10여 차례 공판이 지속되고 두 번이나 선고가 연기되는 진통 끝에 최근 1심에서 피고인 C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핵심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수사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판결을 한 서울동부지법 형사8단독 유지현 판사는 “범인을 지목하는 진술의 경우 범인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 진술이나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한 후 용의자를 포함해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킨 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하게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07도5201)를 제시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B씨에게 사진 한 장만을 보여주며 범인이 맞는지를 확인했다”라며 “이는 범인식별 절차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인 만큼 신빙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했다.
B씨 진술 자체의 신뢰도도 낮다고 봤다. 유 판사는 “B씨가 사건 당일 C씨를 처음 본 데다 주변이 어둡고 취한 상태에서 범인 얼굴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술집에서 벌어진 시비로 인해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C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주관적인 감정이나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 현장 CCTV 영상에 대해서도 “범인의 인상착의가 전혀 식별되지 않는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C씨 변호를 맡은 법률구조공단 박영신 변호사는 “의뢰인(C씨) 입장에선 피해자가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이유만으로 1년 넘게 재판을 받게 된 것”이라며 “기본을 무시한 수사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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