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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엄마 손에 꼭 쥔 종잇조각… 완벽한 자살사건을 뒤집다

입력
2018.06.12 04:40
수정
2018.06.24 14:5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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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입이나 저항 흔적 없지만…

세살ㆍ10개월 아이들과 엄마 사망

집 안에서 빨랫줄로 자살 정황

“아이들 죽인 방식이 너무 잔인”

엄마 손에는 1.5㎝ 종잇조각

집안 뒤져도 같은 재질 못 찾아

그에게 새해는 찾아오지 않았다. 2003년 12월 29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거여동 한 아파트 7층에서 주부 박모(당시 31)씨와 세 살배기 아들, 10개월 된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시신을 처음 목격한 건 퇴근 후 집에 도착한 남편. 10㎡ 남짓 작은 방 안에는 옷가지와 수건이 아이들 시신 사이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거실 쪽으로 난 방문 위에 걸린 주황색 빨랫줄에 박씨가 목이 걸려 숨진 채 축 쳐져 있었다.

“자살인 것 같긴 한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송파경찰서 강력2반 형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혀를 찼다. 아파트 안은 겉보기에 영락없는 자살 사건 현장이었다. 현관문이 잠겨 있었는데 열쇠는 집 안에서 발견됐다. 외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침입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 수상한 친구가 유력 용의자로

CCTV 찍힌 엄마 여고동창 조사

소매에 손 감추는 모습 수상쩍어

추궁하자 경찰 시험하듯 자백

자취방서 찾아낸 범인 일기장

치밀한 성격 탓 범행 계획 빼곡

#‘난 비참한데… 너무 행복해 보여’

결혼도 못하고 가난한 생활 전전

번듯한 가정 꾸린 친구에 질투심

1년 가까이 계획… 남편과는 불륜

“숨바꼭질 하자” 눈 가리고 살해

범인 반성 안 해… 무기징역 확정

무엇보다 숨진 박씨 몸이 외견상 자살이라 말하고 있었다. 타살이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저항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죽을 의지가 없는 사람이 타인에 의해 목이 조여질 경우 몸을 버둥거리는 등 반항을 하기 마련이고, 그랬다면 목에 나 있는 자국은 둘 이상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박씨 목에는 ‘진한 한 줄’의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새벽까지 2차에 걸쳐 감식이 이뤄졌지만, 타살보다는 자살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지만 뭔가 찜찜했다. 자살로 사건을 결론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몇 군데 있었다. “엄마가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을 했다고 칩시다. 근데 애들을 죽인 방식이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현장의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강력2반 소속 조세희 경위(현 경기북부청 남양주경찰서 경비작전계장)도 의심을 품은 그들 중 하나였다. 아들은 보자기에 목이 감긴 채였고, 딸은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어져 있었다. “아무리 자식을 자기 손으로 보내는 비정한 엄마라도 그렇지, 적어도 자기 자식이라면 최대한 편하게 가도록 마음 쓰는 게 정상 아닌가 싶었죠.” 조 경위는 당시를 그렇게 떠올렸다.

그뿐 아니었다. 박씨는 오른손에 길이 1.5㎝ 정도 찢어진 종이를 꼭 쥐고 있었다. 도배를 할 때 접착력을 높이려고 콘크리트 벽에 초벌로 붙이는 종잇조각이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었다면 (이걸로) 뭔가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수사팀은 같은 재질의 종이를 찾기 위해 집안을 이 잡듯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자살이 아닐 수도 있겠다.’ 수 많은 자살 현장과 살인 현장을 누볐던 형사들 촉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팀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뒤지는 것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현장 감식반이 내놓은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5시. 수사팀은 그 시간 전후로 숨진 여성의 집을 드나든 사람을 찾는데 이목을 집중했다.

이른 오후, 엘리베이터에서 7층에 내리는 3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포착됐다. “어, 이 사람 아까 남편이랑 같이 있던 사람 아니야?” CCTV 속 여성은 박씨의 고교동창 이모(당시 31)씨였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 출동했을 때 박씨 남편과 함께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사건 현장에서 워낙 격렬하게 슬퍼했던 데다 현장에 온 피해 여성의 친정 식구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가족만큼이나 가까워서 정말 친한 친구라고만 생각했어요.” 조 경위도, 다른 수사팀 형사들도 크게 의심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피해자 남편 역시 ‘현장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아내와 친한 이씨를 불렀다’고 태연하게 진술한 터였다.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시종일관 왼손을 소매 안으로 집어 넣으면서 숨겼다. 한겨울이었지만, 실내가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니었다. “왜 그래요, 손에 뭐 있어요?” 경찰이 손을 꺼내게 했더니 이씨 왼손에는 빨랫줄 같은 억센 줄이 남겼을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바닥 역시 빨갛게 부어있었다.

경찰은 ‘왜 그날 낮에 박씨 집을 갔는지’ ‘손의 자국은 왜 생겼는지’ 집중 추궁했다. 정황상 박씨 목을 조른 이는 바로 이씨였다. “집의 화장실을 고치다 생긴 자국”이라며 변명하던 이씨가 계속된 추궁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가 죽였어요.” 자백이었다.

그런데 다음 말에 수사팀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절대로 증거를 찾을 수는 없을 거에요.” 도발이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피고인이 자백을 하더라도 그것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라면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하면 나를 처벌할 수 없을 테니 어디 한 번 증거를 가져와보라’는 얘기였다. 경찰은 자백을 받자마자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물론 48시간 안에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하면 이씨를 풀어줘야만 했다.

그러나 이씨 자신감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이씨 자취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일기장이 발견됐다. 거기에는 2003년 한 해 동안 이씨가 한 일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범행일 전 며칠간 행적이 기록된 페이지에는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범행 수법, 도구를 그린 그림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 계획이 써져 있었다. 2003년이 가기 전에 피해 여성을 죽이겠다는 다짐도 적혀 있었다.

일기장 안에는 범행일 이전 무려 4차례나 피해자 집을 찾았다는 얘기도 남겨져 있었다. 기회를 엿봤지만 예상 밖 상황이 발생하면서 실행 시기를 미뤘다는 말과 함께. 경찰은 범행 계획서와 범행 도구를 만들다 만 재료 등 증거를 확보해 살인 혐의를 적용,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그리고 경찰의 사건 기록에는 잔인했던 이씨의 살인 행각이 고스란히 적시됐다.

박씨는 그날 아들 딸과 함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현관문을 열어주며 아들에게 “이모가 왔다”고 외쳤다. 아들은 총총 걸음으로 뛰어와 큰 소리로 ‘이모’라 외치며 이씨에게 안기기까지 했다. 중학교 및 고등학교 동창 사이던 이씨와 박씨는 2년 전 동창 찾기 서비스를 통해 연락이 닿으면서 다시 친해졌다. 이씨는 박씨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친자매처럼 지냈고, 아이들은 이씨를 ‘이모’라 부르며 곧잘 따랐다.

‘엄마에게 깜짝 쇼를 보여주자’는 이씨 제안에 큰 아이가 작은방에 들어가 숨었다. 안방에 있던 박씨에게는 준비가 끝날 때까지 딸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라고 말하고 문을 닫았다. 혹여 범행 도중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소리를 높이고, 수건과 비닐봉지를 챙겨 작은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아이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은 후 보자기로 목을 감아 졸라 살해했다.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아이들이랑 놀자. 일단 눈부터 가리고.” 안방으로 돌아온 이씨가 제안을 했다. “작은방에 아들이 있는데, 그 애도 준비를 다 했다고 하네.” 한 손에 옹알이를 하는 딸을 안은 채 피해 여성은 이씨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머리에 치마를 써 눈을 가렸고, 작은방 문을 거실 쪽에서 등진 채 섰다. “준비 다 된 거지?”

이씨가 작은방 안에서 빨랫줄로 만든 올가미를 문 바깥 쪽으로 넘겨 박씨 목에 걸었다. 잠깐의 멈춤,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이씨가 양손으로 감아 쥐고 있는 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문짝을 사이에 두고 박씨 몸이 허공 위로 붕 떠올랐다.

모정이었을까, 박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하지 못했다. 품에 안고 있던 딸이 바닥에 떨어질까 봐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격렬하게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왼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만 오른손을 위로 뻗어 목을 옭아매는 무언가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피해 여성 몸에 저항의 흔적이 없었던 이유”라고 조 경위가 말했다. 버둥거리는 그 손에 잡힌 조그만 종잇조각. 그건 이씨가 범행 도구로 준비해 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 이씨는 죽은 여성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는 것으로 끔찍했던 살인 행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셋을 차례로 죽인 이씨는 범행 도구와 열쇠가 담긴 피해 여성 핸드백을 챙겨 현관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복도에 나 있는 방범창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방 안으로 열쇠가 든 핸드백을 집어 넣었다. 외부 침입 흔적도, 저항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이후 이씨는 ‘내 인생은 비참한데, 동창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고 살인 동기를 털어놨다. 조 경위는 “조사 과정에서 이씨는 시종 일관 ‘세상은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자신은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채 가난한 자취방을 전전하고 있는데, 평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박씨가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씨는 “겉으로는 잘 해주면서 은연 중에 나를 무시하는 것이 느껴졌다”고도 말했다. 또 하나, 이씨는 피해 여성 남편과 내연 관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둘 관계가 들통나면서 그간 쌓였던 질투와 열등감,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됐고, 결국 살인을 결심하게 됐다는 게 경찰이 내린 결론이다.

사건 다음해인 2004년 7월, 검찰은 1심에서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극형을 고려함이 마땅하지만 교화와 개선의 가능성이 미약하나마 남아 있는 점을 참작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는 이후 진정서와 반성문을 제출하며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지만, 2005년 3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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