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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3대 순차 이륙… 김정은 동선 감추기 ‘007 작전’

입력
2018.06.10 18:59
3면

中서 대여 항공기 8시30분 출발

1시간 후 전용기 참매 1호 이륙

새벽엔 차량 등 선적 비행기 떠나

金 탑승 비행기 도착전까지 몰라

안전 고려 中 고위급 전용기 대여

‘中 등에 업고 협상’ 美에 메시지도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CA-61편 항공기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착륙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CA-61편 항공기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착륙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세기의 담판’에 나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은 출발부터 도착까지 전 과정이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북한은 중국에서 빌린 고위급 전용기와 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1호’를 1시간 간격으로 띄우는 등 김 위원장의 동선 노출을 철저히 차단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해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올 때에야 어떤 경로를 선택했는지가 확인됐을 정도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6ㆍ12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예정된 10일 오전 3대의 항공기를 순차적으로 띄웠다. 새벽 이른 시간에 북한 고려항공 소속 일류신(IL)-76 수송기가 평양 순안공항을 이륙했고, 오전 8시30분(이하 현지시간)께 중국 고위급 전용기인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보잉747-4J6’ 항공기(CA-61편)가 평양을 출발한 데 이어 1시간 가량 후에 참매1호도 순안공항에서 출발했다. 김 위원장의 전용방탄차 등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IL-76은 비행속도를 감안해 미리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건 1시간 간격으로 비행에 나선 CA-61편과 참매1호의 움직임이었다.

김 위원장이 북미 회담이라는 ‘빅 이벤트’를 위해 중국 이외에는 사실상 처음으로 북한 영토를 벗어나는 것이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세계 언론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 중엔 그가 언제 어느 비행기를 탈 지, 항공기 급유ㆍ점검을 위해 중국에 잠시라도 들를 것인지 등도 포함됐다.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시해온 북한으로서는 그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동선 노출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연막작전으로 구체화했다.

실제 김 위원장이 탑승한 비행기와 관련한 전 세계 언론의 보도는 한 차례 크게 출렁였다. 당초에는 김 위원장의 CA-61편 탑승이 유력해 보였다.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향하던 이 비행기가 베이징 인근에서 갑자기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가 5분여 뒤 편명을 CA-122에서 CA-61로 바꿔 싱가포르로 방향을 튼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전 10시30분께 항공기 경로 추적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다24에 참매1호의 기종인 IL-62M 항공기가 베이징 남서쪽에서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음이 확인된 뒤 상황이 급변했다. 해당 항공기는 특히 출발 및 도착시간이 명기돼 있지 않아 비밀스러운 운항임을 암시했고, 이 때부터 김 위원장의 탑승 항공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앞서 북한은 이날 새벽 중국의 협조를 받아 CA-121편을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이동시킨 뒤 오전 8시30분에 CA-122편명으로 베이징을 향해 출발시켰다. 도중에 편명을 CA-61로 바꿔 싱가포르로 향한 바로 그 비행기다. 또 전날에는 CA-61편과 동일 기종인 CA-60편을 평양에서 싱가포르까지 날려보냈고, 여기엔 북한 측 선발대가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리무중이었던 김 위원장의 탑승 비행기가 CA-61편이란 사실은 싱가포르 외무부가 오후 2시36분(한국시간 오후 3시36분) 김 위원장의 창이공항 도착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면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중국 영공을 지나는 동안 인민해방군 전투기편대의 호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고, CA-61편보다 1시간30분 가량 늦게 도착한 참매1호에는 회담 지원인력과 C4I(지휘통신) 가동 기술진, 경호인력 등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이 참매1호 대신 CA-61편을 이용한 건 안전 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매1호는 제원상 비행거리(1만㎞)가 싱가포르(4,700㎞)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지만 노후기종이라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반면 CA-61편 보잉747-4J6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중국 최고위층이 이용하는 전용기로 유명하다. 이 점에서 보면 김 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중국을 등에 업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동선 노출을 피하기 위한 연막작전 끝에 7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현지 경찰이 공항 VIP구역을 봉쇄한 가운데 오후 3시3분께 검은색 고급 리무진 차량을 타고 20대가 넘는 차량 행렬과 함께 숙소인 세인트리지스호텔로 향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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