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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EPL 이끄는 선수” 명장도 극찬한 손세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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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신태용호는 허약한 수비조직력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원과 공격진에는 역대 한국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는 유럽 빅 리그에서 통하기 힘들 거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깬 ‘캡틴’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6ㆍ토트넘)이 대표적이다.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과 이승우(20ㆍ베로나)는 ‘미완의 대기’지만 도전적인 돌파와 빠른 드리블 등 결이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재성(26ㆍ전북)은 지금 당장 유럽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 은사와 가족, 지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 5인방의 성장기와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를 연재한다. 너,>
지난 시즌 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 장면을 찾아 다시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억’ 소리 나는 몸값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비수들이 손흥민의 페인트에 갈팡질팡하고, 실점을 한 뒤 고개를 숙인다. 한국 축구가 이런 공격수를 보유한 채 월드컵에 나간 적이 있었나.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도 출전해 알제리와 2차전에서 1골을 넣었지만 4년 전과 지금의 위상은 천지차이다.
2016년 10월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손흥민에 대해 “단순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를 이끄는 선수”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축구연구소가 5일(한국시간) 발표한 선수 이적 가치에서 손흥민은 9,020만 유로(약 1,131억 원)로 전체 39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축구 선수 출신 아버지 지도로
어린 시절부터 기본기 다져
중학교 시절 은사 “그냥 달릴 때보다
공 가지고 뛸 때가 더 빨랐다”
하루 1000개씩 슈팅 연습하며
골키퍼 벌벌 떠는 손흥민 존 완성
“아직도 브라질 눈물 기억한다
국민이 절 보고 웃는 게 소원”
강원 춘천 부안초와 후평중을 다니던 손흥민은 중 3때 아버지의 권유로 강원 지역 축구 명문 원주 육민관중으로 전학했다. 당시 손흥민을 처음 본 나승화 현 육민관고 감독은 “중고 지도자 20년째인데 손흥민 같은 선수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볼 컨트롤이 완벽에 가까웠고 양 발을 잘 썼다. 무엇보다 놀란 건 스피드였다. 나 감독은 “그냥 달릴 때보다 공을 가지고 뛸 때가 더 빨랐다”고 신기해했다.
손흥민이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건 축구 선수 출신 아버지 손웅정씨 덕이다. 손씨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 후 춘천에서 유소년 선수를 가르쳤다. 손흥민도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공을 찼다. 아들이 소질을 보이자 손씨는 끊임없이 기본기만 반복 훈련 시켰다. 근육,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체력, 슈팅 훈련은 철저히 배제했고 정규 경기도 내보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손씨는 주변의 조롱도 많이 받았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손흥민이 정식 경기를 뛴 건 육민관중으로 전학한 뒤부터다.
축구에 대한 손흥민의 열정은 남달랐다. 나 감독이 휴식이나 외출을 주면 또래 중학생들은 PC방으로 달려가기 바빴는데 손흥민은 운동장에 홀로 나와 공을 찼다. 나 감독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황금 계보 중 한 명인 황선홍 전 서울 감독과 초중고, 프로까지 한솥밥을 먹은 ‘죽마고우’다. 황 감독과 손흥민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을 이따금 받는다는 나 감독은 “선홍이도 모든 걸 다 갖춘 공격수지만 솔직히 흥민이는 레벨이 다른 선수”라고 껄껄 웃었다.
나 감독은 2007년, 당시 故 이광종 감독 아래서 17세 이하 대표팀 수석코치를 하고 있던 후배 송경섭 현 강원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 감독은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에 나갈 1992년생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었다. 나 감독의 첫 마디는 “너 눈이 삔 거 아니냐?”였다. 손흥민 같은 선수를 왜 뽑지 않느냐는 힐난이었다. 얼마 뒤 손흥민 경기를 직접 보러 원주로 내려온 송 감독도 무릎을 탁 쳤다. 손흥민은 U-16 대표팀에 발탁됐고 2008년 9월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 일원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 팀으로 유학을 떠나 유럽 빅 리거로서의 출발을 알렸다.
손흥민이 세계적인 공격수로 인정받는 가장 큰 비결은 언제 어디서나 쏘아댈 수 있는 묵직한 슈팅이다. 이 역시 피 나는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이전 독일에서 뛸 때 시즌을 마치고 여름에 한국에 오면 아버지와 춘천 공지천에 나가 하루 1,000개씩 슈팅을 때렸다. 슈팅을 하기 직전 눈에 축구공의 실밥이 보일 정도로 집중하고 찼다. 페널티박스 좌, 우 모서리에서 절묘하게 양 발로 감아 차 상대 골키퍼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손흥민 존’은 이 때 완성됐다.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과 2016년 리우올림픽 등 최근 큰 국제 대회에서만 두 번 눈물을 쏟았다 .나 감독은 “승부욕이 강해서 중학교 때도 게임에서 지고 나면 분에 못 이겨 종종 울곤 했다”고 기억했다. 손흥민과 함께 리우올림픽을 치렀던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러시아에서는 제발 흥민이가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흥민은 인터뷰 때마다 “아직도 브라질의 눈물을 기억한다”고 입술을 깨문다. 이어 “전 누구를 만나도 웃으려고 노력한다. 유일하게 우는 이유는 지는 게 싫어서다. 그래서 대표팀에서 눈물을 보였다. 러시아에서 국민들이 절 보고 웃을 수 있는 결과를 낸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절실한 각오를 드러냈다.
레오강(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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