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살기 위해 23만원짜리 약 1,200만원 내고 먹어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A씨의 아들은 올해 1월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직장에 다니던 건실한 아들이었다. 1세대, 2세대 표적항암제를 다 써 봤지만 효과는커녕 암 세포가 골반까지 번졌다. 그러다 지난달 3세대 표적항암제인 ‘아이클루시그’를 복용하고 나서는 암세포가 줄어들었다. 이 약은 4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약값의 5%인 22만9,113원(한달 치)만 내면 된다고 들었으나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수입 자체가 안 되고 있어서다. A씨는 매달 1,200만원을 내고 독일에서 약을 수입하고 있다. 그는 “듣는 약이 있다는 게 너무나 고맙지만 약값을 언제까지 댈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마지막 희망인 ‘아이클루시그’가 공급되지 않아 환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은 기존 치료법으로 호전되지 않아 마지막까지 온 위중한 상태다. 이들은 단 하루도 약 복용을 미룰 수 없어 약값(6,090유로), 운송료(530유로), 포장료(80유로), 국내 부가세 및 관세(1,145유로) 등 환율에 따라 1,000만~1,200만원을 매달 내고 약을 수입해 먹고 있다.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5% 정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매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 400~500명 발생하고 있으므로 해마다 20~25명이 이 약을 써야 살 수 있다고 의료계는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도 이 약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의약품 공급 문제로 고통을 받게 될 환자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아이클루시그는 왜 국내에 공급되지 않고 있을까. 한국백혈병환우회에 따르면 이 약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한국오츠카제약은 “생산자인 다케다제약이 생산 중 문제가 생겨 공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아이클루시그는 캐나다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유럽에 공급할 물량은 차질 없이 생산했으나 이후 아시아에 공급할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츠카는 유럽에 공급한 물량을 국내로 들여오려고 검토했으나 수거, 통관, 검수, 재포장 등으로 최소 3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혈병환우회 관계자는 “어디서 문제가 생겼든 건강보험 급여로 전환된 지 두 달이 넘도록 약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급여 전환으로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됐다고 좋아하던 환자 보호자들을 희망 고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혈병환우회는 5일 성명을 내고 제약사와 정부에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우선 오츠카에 대해 약제비 환자지원프로그램처럼 환자들이 독일에서 아이클루시그를 직접 구입하는데 들어간 약제비를 지원하거나 환자 대신 구입해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에는 이 환자들을 재난적 의료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아이클루시그처럼 건보 급여 고시가 완료됐는데도 의약품을 출시하지 않은 경우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더라도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제약사가 부담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약사가 미공급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