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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로 영어 밖 세상 눈 떴다”... 美 ‘아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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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날개 ‘아미’에게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주한미군이나 나라를 지키는 병사를 향한 응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빌보드 1위로 K팝의 역사를 쓴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보낸 축전에서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를 꼭 집어 이들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격변의 한반도 정세로 조용할 날 없는 청와대에서 아이돌 팬덤 언급이라니. ‘아미가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처럼, 아미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호명되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방탄소년단이 사회적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청년을 방어했다면, ‘청춘의 대변인(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 즉 방탄소년단을 지킨 건 이들의 군대를 자처한 아미(A.R.M.Y)였다.
슈퍼스타들의 격전지인 세계 최대 음악 시장에서 영어로 노래하는 가수 대신 방탄소년단을 택한 ‘미국 아미’는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어떻게 한국말로 노래하는 K팝 그룹을 지구촌 음악 중심부로 소환했을까.
“비욘세면 충분했는데…” 교육학자의 고백
2017년 11월.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교육학자 라프란즈 데이비스는 집에서 우연히 TV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보고 방탄소년단을 처음 알았다. K팝을 접한 적도 없는 그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곤 자로 잰 듯 딱 맞춘 절도와 현대무용의 부드러움이 녹아 든 춤을 추며 라이브로 노래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했다. 미국 가수들에게선 볼 수 없던 꽉 찬 무대였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방탄소년단 열기를 확인한 그는 노래 ‘DNA’를 찾아 들었다. 한국어로 된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경쾌한 멜로디로 행복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데이비스는 가사까지 파고들었다. 춤과 멜로디뿐 아니라 일곱 청년의 이야기까지 알고 싶었다. 지난해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데이비스는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노래로 ‘봄날’과 신곡 ‘134340’을 꼽았다. ‘봄날’은 “누군가의 헤아릴 수 없는 상심”이, ‘134340’은 “명왕성(Pluto)에 숨겨진 은유”가 좋다고 했다 ‘봄날’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13340’은 명왕성으로 불리다 2006년 태양계 아홉 행성 중 왜소행성으로 강등돼 낯선 숫자로만 불리게 된 명왕성을 소재로 존재의 허무를 노래해 한국 아미들 사이에서도 각별하게 여겨지는 곡들이다. 데이비스는 한국 팬처럼 곡의 맥락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좋아하던 미국 가수들 CD조차 사지 않았던 그는 결국 방탄소년단의 2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와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CD를 샀다. 이 경험을 통해 데이비스는 “영어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영어로 된 미국 문화만 즐겼다. 가수 비욘세의 노래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이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의, 다른 언어로 된 콘텐츠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방탄소년단을 계기로 내 좁은 시각으로 세계를 즐기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자신을 되돌아 봤다. ‘K팝 밴드가 어떻게 날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란 글로 화제가 된 데이비스가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아미 입문기다.
텔레마케터와 통역사 자처한 미국 아미
데이비스 같은 아미의 등장은 미국 팬덤 풍경까지 바꿨다. 미국 아미는 방탄소년단의 ‘라디오 홍보단’까지 꾸렸다. 방탄소년단의 라디오 진출을 위해 2016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GetBTSontheRadio’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하더니 이듬해엔 미국 50개 주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을 보낸 뒤 방탄소년단 노래 선곡을 신청하는 ‘@BTSx50States’ 운동까지 벌였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의 지표인 빌보드의 ‘핫100’은 라디오 방송 횟수와 음원 사이트에서의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재생) 건수를 합산해 순위가 매겨진다.
라디오 방송 횟수가 총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40% 선으로 알려졌다. ‘말춤’으로 미국을 들썩인 싸이는 라디오 점수가 낮아 2012년 ‘핫100’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록밴드 마룬5의 ‘원 모어 나이트’보다 음원 판매 수치는 높았으나 라디오 방송 횟수 점수가 마룬5의 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아미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각 지역 라디오를 알아내, 직접 전화를 걸어 선곡 요청을 했다. 라디오 DJ들이 방탄소년단을 잘 알지 못했을 때 전화 응대 매뉴얼까지 만들어 SNS에 뿌렸다. 돌아오지 않는 응답과 무시에도 SNS와 전화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신청하고 또 신청했다. 북미 최대 라디오 방송인 아이하트 편성국 상무인 팀 허브스터는 “영어로 방송하는 라디오에 한국 음악이 흘러나온 건 순전히 아미 덕”이라고 했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틀기 어려워 망설였는데 선곡 요청이 쏟아져 노래를 틀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 아미의 ‘라디오 총공(총공격)’을 발판 삼아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DNA’로 ‘핫100’에 처음 진입(67위)한 뒤 ‘마이크 드롭’으로 28위를, 신곡 ‘페이크 러브’로 10위를 기록하며 점차 순위를 올렸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선곡해 준 라디오 DJ에 감사 편지와 꽃다발까지 보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아이돌 팬덤 현상인 ‘조공(옛날 소국이 대국에 공물을 바쳤듯 선물로 팬이 스타 홍보에 나서는 일)’을 해외 아미가 똑같이 따라 한 것이다.
아미는 텔레마케터나 때론 통역사(@BTS_Trans)가 돼 세계와 방탄소년단을 잇는 다리가 됐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미국 대중 음악 시장에 스며든 비결이었다.
유니세프에서 진행 중인 영양실조 아동 식량 후원 프로젝트에 동참한 아미는 1990년대 음악 사전 심의 반대 운동을 이끌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덤과 닮았다. 1990년대 ‘클럽 H.O.T(HOT 팬클럽)’와 2000년대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클럽)와 비교해 해외 팬의 결속력이 강한 게 특징이다. 책 ‘BTS 예술혁명’을 낸 이지영 세종대 교수는 “방탄소년단은 다른 아이돌과 달리 SNS에서 수평적인 소통을 보여줬다”며 “이 수평적 판타지가 팬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낳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방탄소년단의 신작 복귀와 맞물려 SNS는 다시 아미 세상이 됐다.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18일 새 앨범을 내고 20일 빌보드뮤직어워즈에서 첫 신곡 무대를 선보인 주(25일까지)에 1억 4,3000만 건의 방탄소년단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다. 전달 같은 기간 4,500만 건보다 3배 많은 수치였다. 본보가 트위터코리아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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