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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을 왜 데리고 나와서…” 가족에게 쏟아지는 핀잔과 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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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⑺ ‘죄인’ 같은 발달장애인 가족
#차별과 편견의 학창시절
단 한 번 실수에도 강제 전학
‘피해에 책임’ 각서까지 요구
특수학교는 자리 없어 엄두 못내
김남연(52)씨는 최근 주말 아침 자폐성 발달장애 1급인 아들 윤호(20)씨와 서울 삼성동의 한 대형 커피전문점에 갔다 30분만에 쫓겨나야 했다. 김씨는 음료 주문 전 “아이가 소리를 낼 수 있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했고, 종업원도 “고객이 별로 없으니 괜찮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고 나타난 매장 매니저는 경색된 얼굴로 “영업에 방해된다”며 “당장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아이가 혼자 소리만 낼 뿐 다른 고객에게 다가가지조차 않은 데다 주문 전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점에 대해 설명했다. 매니저는 “고객들이 얘기를 못하는 것일 뿐 이 분을 싫어하고 힘들어 한다”며 “매장관리 자격이 없는 종업원이 잘 모르고 허락한 것”이라고 쏘아 붙였다. 김씨는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기 힘들어 매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공중 목욕탕에서도 아이가 용변을 보고 물장난을 치는 통에 쫓겨나면서 안 간지 오래됐다”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적응은 했지만 대부분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공공장소에 가는 걸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장애인 254만명은 평생을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야 한다. 이들 가운데는 신체적 어려움이 있지만 의사표현이 가능한 이들도 있고, 성인이 되면 독립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10명 중 1명이 조금 못 되는 발달장애인 22만명(8.9%)은 상황이 다르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하는 발달장애인은 평생 돌봄을 필요로 한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비율은 33.9%였지만 지적 장애인은 78.9%, 자폐성 장애인은 87.3%에 달했다. 다른 장애인들과 달리 정작 발달장애인 본인은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건 발달장애인의 가족들이다.
다른 학생 공부에 피해 된다며… 각서 쓰고 전학하고
서울 중랑구에 사는 김정숙(52)씨는 2016년 자폐성 발달장애 1급인 아들 민우(21)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시켜야 했다. 일반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배정받아 과목에 따라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교차하며 수업을 듣던 중 체육시간에 일반학급의 다른 친구를 때린 것이다. 일반학급 교사 혼자 학생들을 관리하기에는 버거웠을 상황임을 감안해도 한 번의 실수에 대한 결과는 냉혹했다. 곧바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민우는 강제전학을 해야 했다. 김씨는 “민우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주면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특히 전학을 요구 받으면서 교사로부터 들어야 했던 말,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에요”라는 말은 김씨에게 큰 상처가 됐다.
사실 김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학생들이 민우에게 가한 폭력에 대해서는 꿋꿋이 참아왔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발로 민우의 머리 밟기도 하고 과자를 변기 물에 적셔서 민우에게 먹으라고 하는 등의 괴롭힘이 있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저 일반 아이들과 함께 다닐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큰 소리 한번 내질 못했다. 김씨는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었지만 자리가 부족했다”며 “다른 일반학생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릴 기회가 있길 바랬지만 돌아온 건 강제전학뿐이었다”고 말했다.
김남연씨도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윤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교사가 ‘기물파손 등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책임을 지라’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씨는 교사와 다른 학부모들의 요구로 각서를 썼지만 학교 측에 이 문제를 따졌고 결국 이 일을 계기로 교사의 입장을 두둔한 다른 부모들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김씨는 “교사와 부모들이 한 편이 되어 문제를 삼으니 전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특수학교에 자리가 없어 결국 1년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의 특성을 고려해 수업을 하는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고, 사회에 나와 일반인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만큼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학령기 장애인은 9만여명인데 특수학교 정원은 2만5,000명이다. 나머지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가야 한다. 하지만 일반학교에선 학업에 방해된다고 우리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환영 받지 못한다.
특수학교를 더 짓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수십 명의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사건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집에 갇히게 되는 나날들
공공장소서 울거나 소리 질러
주변 사람들과 ‘민폐’ 언쟁 일쑤
매장선 “영업에 방해… 나가달라”
“왜 데리고 나와” 핀잔에 슬금슬금 피하는 사람들
올해로 고1이 된 자폐성 발달장애 1급 아들을 둔 이진주(42)씨는 외출이 두렵다. ‘떼를 쓰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점을 알고 있는 아들이 공공장소에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언어가 아닌 온 몸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럴 때면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어쩔 수 없이 제압해야 할 때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를 학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개입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왜 이런 애를 데리고 와서 민폐를 끼치느냐”는 사람들과 언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아들이 왜 그러냐”면서 안쓰러워 하며 말을 거는 이들도 곤욕스럽긴 마찬가지다. 이씨는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물어보면 모른 척할 수도 없어 머리가 갈라지는 것 같다”며 “그러다 보니 애랑 집에 있게 되고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정숙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아들 민우가 갑자기 주위를 돌아다니거나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치는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김씨는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러는 거겠지’라고 이해는 한다”면서도 “특별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럴 때면 서운한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나라에서 해 주는 게 많다?
복지관, 보호센터, 활동보조…
중증이상 장애 쓸모 없는 혜택
엄마 경제활동 못해 생계 막막
장애인이라 혜택 많이 받는다고? 쓸 수 없는 혜택들 뿐
“정부에서 해주는 것 많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랑구민회관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여섯 명의 엄마들은 “혜택은 많지만 실제 활용할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달장애 고3 아들을 둔 유인숙(52)씨는 “택시만 타도 ‘나라에서 해주는 게 얼마나 많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교육비, 급식비를 지원받는 것은 맞지만 엄마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말했다.
윤경자(52)씨는 발달장애 1급인 올해 스물 다섯 살 된 아들을 위해 마련했던 중랑구 내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쫓겨났다. 대기자가 많아 1년 전부터 명단에 올리고 겨우 들어갔지만 복지관 관계자는 “아이가 화가 나면 억제하기 힘들다”며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씨는 “이곳에서 밀리면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며 사정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결국 근처 노원구를 샅샅이 뒤져 아들을 받아줄 주간보호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크게 떨어진다. 윤씨는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제도가 있지만 중증 이상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크게 부족하다”며 “그럼에도 발달장애인 엄마들이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활동보조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장애 1~3급에 지급되는 금액이 같기 때문에 활동보조인들도 이왕이면 등급이 낮은 장애인들을 맡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비율은 1급(26.9%), 2급(35.9%), 3급 (37.2%) 등 다른 장애인에 비해 1, 2등급 비중이 월등히 높다. 올해 고3이 된 발달장애 아들을 둔 이순식(40)씨는 “아이의 힘은 점점 세지고 말은 알아 듣기 어려운데 어떤 활동보조인이 선뜻 나서겠냐”며 “남자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만 구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원하는 시간에 이용하기도 어렵고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김정숙씨는 “아이가 졸업하면서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118시간으로 줄어들었다”며 “다른 직장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이순식씨는 “발달장애인 엄마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내가 죽은 다음 남겨진 자녀”라며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혜택을 준다면 왜 발달장애인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고민하겠냐”고 토로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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