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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외국 음식 먹어봤니?] 손에서 손으로, 장인의 음식 나폴리피자

입력
2018.06.02 09:00
14면
2017년 12월 나폴리 피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으로 만든 피자. 이우영 셰프 제공
2017년 12월 나폴리 피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으로 만든 피자. 이우영 셰프 제공

4월의 라일락 꽃내음 가득한 남산 아래 하얀 옷을 입은 피자이올로(pizzaioloㆍ피자 만드는 기술자)들이 숙성된 반죽통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피자이올로들의 축제의 장이 한국에도 펼쳐졌다. 바로 나폴리피자 이올로들의 축제 제2회 카푸토컵이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나폴리의 전통이 이어진 피자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2017년 12월 7일 제주도에서 피자이올로들의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피자 제조법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나폴리 피자를 만드는 기술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하도록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순간이니 나폴리피자장인협회(APN) 본부에서부터 세계 곳곳에 있는 나폴리 피자 장인들은 이 순간을 위해 제주에 모든 촉각을 세웠다. 그들의 기대와 노력에 부응하듯 나폴리 피자 기술은 무형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고, 이에 다시 한번 나폴리 피자의 기술과 역사에 관심이 쏟아졌다. 이런 대단한 맛의 기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토마토 소스는 시계방향으로

4월 열린 제2회 카푸토컵 코리아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된 피자를 심사하고 있다. 잇쎈틱 제공
4월 열린 제2회 카푸토컵 코리아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출품된 피자를 심사하고 있다. 잇쎈틱 제공

화려하고 국제화된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로마와는 달리 캄파니아 지역 베수비오 산맥의 그늘 아래 펼쳐진 고대 도시 나폴리는 길들여지지 않는 길고양이처럼 조금은 덜 세련돼 보일 수도 있다. 풍부한 음식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유독 나폴리에서 가장한 유명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단연코 백이면 백 모두가 "Pizza~!(피자!)"라고 외친다.

'피자'라는 단어의 어원은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클래식한 나폴리 피자인 ‘마리나라(marinar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피자 가게로 알려져 있는 안티카 피제리아 포르트알바(Antica Pizzeria Port'Alba)에서 1830년에 시작됐다. 이탈리아어로 ‘마리나라’는 ‘선원(marinaio)’ 이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드넓은 항해 후에 뭍으로 돌아온 가난한 선원들은 값 싸고 배 부른 음식이 필요했고 토마토 소스, 마늘 및 올리브유가 뿌려진 피자 한 장은 그들의 배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시작은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피자 가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메뉴이다.

치즈와 다양한 토핑이 올라간 현대의 피자 모습은 나폴리에서 19세기 후반 경 시작됐다. 현대의 피자는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 토핑도 무한한 다양함을 자랑하지만 전통 나폴리의 피자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1889년 이탈리아의 왕비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를 방문했고, 피자장인은 3가지의 다른 피자를 만들어 올렸다. 그 중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바질이 올라간 피자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는 마치 빨강, 흰색, 초록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이런 형태의 피자를 “피자 마르게리타(Pizza Margherita)”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나폴리의 대표 피자가 되었다.

‘핏제리아 다로베’의 마리나라 피자. 최초의 클래식한 나폴리 피자다. 잇쎈틱 제공
‘핏제리아 다로베’의 마리나라 피자. 최초의 클래식한 나폴리 피자다. 잇쎈틱 제공
‘핏제리아 다로베’의 화덕. 나폴리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잇쎈틱 제공
‘핏제리아 다로베’의 화덕. 나폴리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잇쎈틱 제공

프랑스에서 포도주와 치즈와 같은 전통음식을 보전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두어 관리하듯이, 나폴리 피자도 밀가루의 종류부터 화덕의 온도까지 매우 세세하고 엄격한 기준을 준수하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재료(밀가루, 토마토 등), 만드는 법, 화덕의 종류까지 모두 전통방식이 제대로 유지되도록 장인에서 장인의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나폴리 피자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피자의 크러스트(도우)다. 사실 이탈리아 내에서도 지역별로 크러스트의 특징은 다양하다. 로마식 피자는 얇은 크러스트로 크래커처럼 바삭하다. 시칠리아식 피자는 스핀치오네(sfincione)라고 하며 식빵처럼 두툼하고 사각형의 모양이다. 나폴리 피자의 크러스트 반죽은 특정 밀가루 종류(타입“00” 또는 타입“0”)만 사용하며, 나폴리 자연 효모 그리고 물과 소금만 사용할 수 있다. 반죽이 완성된 후에 피자의 모양을 만들 때는 밀대와 같은 어떤 도구도 쓸 수 없으며 반드시 손으로만 빚어 3㎜ 두께로 만든다. 피자를 구울 때는 나무장작을 떼는 화덕에 온도는 485도로, 60~90초 안에 구워내야 한다. 이렇게 완성된 나폴리 피자는 화덕의 열기가 느껴지는 거뭇거뭇한 흔적이 남지만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하며 구수한 화덕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크러스트 위에 올라가는 재료도 중요하다. 그 중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는 나폴리가 속해있는 캄파니아 지역에서 피자의 핵심으로 꼽히는 재료 중 하나다. 물소로 만든 부팔라 모차렐라는 많은 레스토랑에서 피자에 사용하는 '피자 치즈'와 매우 다르다. 작은 공 모양으로, 칼을 사용하는 대신 피자 위에 찢어서 조각으로 토핑한다. '모차렐라(Mozzarella)’라는 단어 자체에 이탈리아어 모짜레(mozzare), 즉 '손으로 자르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재료의 전통성뿐만 아니라 소스를 올릴 때도 선조들의 방식은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전통적인 피자 전문점 중 일부는 베수비오 산의 경사면에서 자라는 산 마르자노(San Marzano) 토마토만 사용하여 전통 방식에 따라 토마토 소스와 올리브유를 시계 방향으로만 붓는다.

전통적으로 나폴리 피자는 일정한 열이 나오는 가스 오븐에서 구워지면 '나폴리 피자'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없다. 나무 장작으로만 불을 피운 화덕에서 구워야 하고, 그 화덕도 베수비오 화산(캄파니아 지역에 있는 휴화산)의 돌로 만들어진 화덕이어야 한다. 나폴리에는 피자를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화덕 또한 마스터로부터 기술을 내려 받아 만든다.

나폴리에 피자가 생기고 200년이 흘렀지만 그들은 전통방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98년 7월에는 나폴리 지역 피자 장인들이 모여 나폴리피자장인협회를 설립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자이기 보다는 교류를 통해 문화를 만들어 전통적인 방법을 잘 이어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제2회 카푸토컵 코리아 대회에서 한 피자이올로가 폴리 피자를 만들고 있다. 잇쎈틱 제공
지난 4월 열린 제2회 카푸토컵 코리아 대회에서 한 피자이올로가 폴리 피자를 만들고 있다. 잇쎈틱 제공

또한 안티모카푸토 밀가루(Antimo Caputo Flour) 회사의 후원으로 각 나라에서 모인 장인들과 함께 그 나라 최고의 나폴리 피자이올로를 뽑는 카푸토 컵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작년에 이어 올해 4월 24~25일 이틀간 두 번째 행사가 열렸다. 전국에서 약 70여 개의 피자이올로 팀이 출전하여 ‘S.T.G’와 ‘Classica’ 두 가지 부문에서 경합했다. S.T.G.(Specialita Tradizionale Garantita)는 전통적인 방법에 맞게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를 만들어야 하고, Classica는 기본은 지키되 토핑에서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전통을 보존하는 한편 그것을 각 나라의 환경에 맞게 응용하도록 하여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이날 이탈리아, 호주, 일본, 대만 등에서 활동하는 장인들은 직접 심사에 나와 한국에 있는 피자이올로들을 응원하고 서로의 역량을 나누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선배 장인이 직접 피자를 구워 참가자들과 나눠먹는 격의 없는 축제가 벌어졌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체온이 깃든 음식

2009년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증 타이틀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Vera Pizza Napoletana)’를 한국 최초로 받은 ‘더키친살바토레쿠오모’의 카프리초사(Capricciosa)피자. 잇쎈틱 제공
2009년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증 타이틀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Vera Pizza Napoletana)’를 한국 최초로 받은 ‘더키친살바토레쿠오모’의 카프리초사(Capricciosa)피자. 잇쎈틱 제공

카푸토 컵 대회가 보여주듯이 APN의 문화는 마스터의 정신과 기술이 동시에 이어지는데 더 큰 의의를 둔다. 일본에 7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에 10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살바토레 쿠오모(Salvatore Cuomo) 셰프는 아시아에서 나폴리 피자계의 대부다. 2009년에는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증 타이틀 ‘베라 피자 나폴레타나(Vera Pizza Napoletana)’를 한국 최초로 받으면서 국내 1호 정통 나폴리 피자 전문점이 되었다. “15세에 처음 나폴리에서 일본에 왔을 때 이탈리안 식당은 거의 없었다. 당시 아시아에서 미국 스타일의 피자는 다소 인기가 있었지만, 나폴리 피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피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나는 고향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를 아시아 전역에 전파하고 싶었다.” 그가 아시아에 나폴리 피자를 소개하게 된 이유다.

쿠오모 셰프의 정신과 기술은 일본과 한국에서 피자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전달이 되어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핏제리아 다로베’의 강우석 셰프도 그 중 하나다. 강 셰프는 이번 카푸토 컵에서 한국 APN의 부회장으로서 스승인 쿠오모 셰프와 함께 심사를 보며 후배들의 성장을 응원했다. 한국에서 카푸토 컵 대회를 치른 뒤 강 셰프는 “한국의 피자 문화가 거의 현지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나폴리피자를 똑같이 재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현지에 가깝게 재현해 낸다. 대다수의 한국인 분들은 미국식 피자를 먼저 접하였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나무 장작 향과 가공치즈가 아닌 신선한 모차렐라로 만든 나폴리 피자가 새로운 식문화로 전파될 거라 예상한다. 개인적으로는 피자를 사랑하는 한국에 계신 분들이 전통을 이해하고 맛의 기준이 높아지길 희망한다.”

신촌 스파카나폴리의 빨강, 흰색, 초록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 마르게리타. 잇쎈틱 제공
신촌 스파카나폴리의 빨강, 흰색, 초록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 마르게리타. 잇쎈틱 제공
서울 서대문구 신촌 스파카나폴리에 있는 스투파. 과거 나폴리에서 피자 배달 시 피자를 따끈하게 유지하는 데 쓰였다. 잇쎈틱 제공
서울 서대문구 신촌 스파카나폴리에 있는 스투파. 과거 나폴리에서 피자 배달 시 피자를 따끈하게 유지하는 데 쓰였다. 잇쎈틱 제공

한국에서 또 다른 나폴리 피자의 개척자가 있다. 서울 합정과 신촌에 위치한 나폴리피자 전문점 ‘스파카 나폴리’를 2011년부터 운영하는 이우영 대표가 201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카푸토 컵 나폴리피자 세계챔피언십 클래식 부문에서 심판 전원 만점으로 우승했다. 이 대표가 나폴리 피자의 고향에서 나폴리 현지인 피자이올로와 경쟁해서 우승한 사실은 더 놀랍다.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배웠지만 한국에서 돌아와 홀로 이 문화를 알리고 맛을 고수하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아 보며 지금은 한국 APN의 회장으로서 많은 피자이올로들을 돕고 있다. 지금도 그는 나폴리에서 6월1일에 열릴 17회 트로피 카푸토 컵 대회에 참가한 동료와 후배 피자이올로를 돕기 위해 이탈리아에 있다.

쿠오모 셰프는 나폴리 피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나폴리 피자의 가장 특별한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폴리 전통 화덕에서부터 반죽, 재료, 피자 자체, 피자를 입에 넣는 순간까지 모두 손으로 처리된다."

나폴리 피자는 어느 음식보다 손끝의 체온이 시작부터 끝까지 느껴지는 음식이다. 이런 따뜻한 체온은 서로 응원하고 끌어주는 그들의 관계에서도 느껴진다. 전통이란 위에서 아래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전통음식이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전통을 알고 가치를 나눌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서 동시대에 수평적으로 퍼져나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음식도 세계인에 의해 나폴리 피자와 같은 카푸토 컵 대회가 만들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타드 샘플ㆍ박은선 잇쎈틱 공동대표 (@toddsample_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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