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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세안] 낮엔 물도 못 마시는 ‘성스러운 달’... 골프장은 비무슬림 유치하려 반값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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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력 9월... 내달 15일까지
일부선 ‘순교’ 테러 일어나기도
# 출ㆍ퇴근 빨라지면서 교통정체
식당은 문 닫거나 가림막 치기도
# 라마단 끝나면 이슬람 최대 명절
각 유통업체들은 할인 전쟁 나서
세계 최대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등 절반 가까운 동남아 인구는 현재 금식 중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식사는 물론이고 물 한잔, 담배 한 모금 들이킬 수 없는 라마단 기간이다. 하루 다섯 차례씩 이뤄지는 기도는 변함 없지만, 본능과 욕망을 억누르는 의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이웃을 돌보는 시기다. 천사 가브리엘이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이슬람 경전 코란을 가르친 때로, 코란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성스러운 달
라마단은 이슬람력 9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까닭에 매년 10일 정도씩 빨라진다. 지역에 따라 앞뒤로 하루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라마단을 지내는 동남아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지난 17일 금식에 들어갔으며, 6월15일까지 고행해야 한다. 베트남 내 최대 무슬림 밀집지인 ‘8군’의 이맘(이슬람 성직자) 하지 무사(60)는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라며 “환자나 임신부, 어린이 등은 금식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라마단=금식’ 으로 알고 있지만, 이 기간에도 해가 진 뒤에는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는다. 특히 가족, 친구들끼리 만찬(이프타르)을 가지는 사교(事敎) 행사가 널리 이뤄진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대도시의 호텔 연회장은 밤이면 많은 무슬림들로 붐빈다. 베트남의 이슬람 신자 압둘라 살람(38)씨는 “금식 때문에 흔히들 이 기간 체중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평상시 수준을 유지하고 체중이 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성월로 인식되는 탓에 일각에서 순교로 일컬어지는 테러도 많이 일어난다. 지난 13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일어난 자폭 테러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계 기업에 근무중인 샤피랄 페트리 소피안(37)씨는 “성월에 순교하면 축복받는다는 것은 일부 선동가들의 이야기”라며 “그런 행동은 교리와도, 절대다수 무슬림들의 생각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라마단이 바꾸는 풍경
무슬림들의 성월, 라마단은 많은 풍경을 바꾼다. 인구 60%가 무슬림인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이 기간 도로 정체가 평소보다 빨리 시작된다. 출근이 1시간 빨라지면서 퇴근도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평소 오후 6, 7시가 가장 붐비지만 이 기간 러시아워는 오후 5, 6시 무렵이다. 이동식 모스크가 등장했을 정도로 ‘교통지옥’이란 오명을 갖고 있는 자카르타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뿐만 아니다. 많은 식당들이 낮에 문을 열지 않는다. 호텔이나 공항 등 외국인들이 몰리는 곳에 위치한 찻집, 식당들은 영업을 하더라도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을 쳐놓는 경우가 많다. 금식 중인 무슬림들을 배려한 조치다. 동화기업 말레이시아법인의 유돈(46) 부장은 “라마단 기간 중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업무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며 “불가피하게 이 기간 출장을 온다면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 공장과 사무실에서도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 기간 거짓말, 중상모략 등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데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말 수를 줄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오후 3시 정도 되면 근로자들이 힘이 없어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며 “다만 2주 정도 지나면 금식에 적응, 효율이 다시 오른다”고 전했다. 무슬림이 아닌 이방인 관리자 입장에서는 커피 한잔에 담배를 피워도 직원들 띄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골프장은 비(非) 무슬림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벌인다. 이 기간에는 골프도 금지되기 때문이다.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이 기간 그린피는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쿠알라룸푸르에 근무하는 한 주재원은 “근교의 트로피카나 골프클럽의 경우 400링깃(약 10만8,000원)에서 200링깃으로 떨어진다”며 “외국인들 사이서는 평소 비싼 비용 때문에 가기 힘든 고급 골프장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슬람판 ‘블랙프라이데이’
라마단이 끝나면 이슬람 최대 명절, 르바란, 이둘 삐뜨리 혹은 하리라야가 이어진다. 각국 별로 지정하는 공휴일은 2~4일로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개인 연차를 붙여 최소 1주일 이상씩 연휴에 들어간다.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특히 각 기업들은 라마단 혹은 명절에 앞서 직원들에게 1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보너스로 지급하며, 이 돈의 상당부분은 고향 방문을 앞두고 소비로 이어진다. 고영경 말레이시아 UNITAR 대학교 교수는 “ ‘이슬람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라마단 기간은 이슬람권 최대 대목”이라며 “연간 매출의 50% 이상을 이 기간에 올리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실제 말레이시아의 경우 라마단 이후 명절에 맞춰 각 유통업체들은 할인 전쟁을 벌인다. 할인행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내로라 하는 명품브랜드들도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할인행사에 들어간다. 말레이시아 11번가 임현동(45) 영업본부장은 “먹을 수는 없는 라마단 기간에 많은 무슬림들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외국인들은 라마단 기간, 특히 라마단 후반부에 이슬람권으로 여행을 온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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