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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시급도 못 법니다” 40년 구두 장인의 옹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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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만 원짜리 신발 만들어 팔면서 왜 여기 와서 시끄럽게 해?”
2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성수역 2번 출구 앞. 집회에 나온 제화공들을 향해 주변 상인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제화공들은 ‘영업 지장’ 운운하는 야박한 인심보다 ‘비싼 신발 만드니까 먹고 살 만할 것’이라는 억측이 더 야속했다. 최소 10만원 대부터 30만원 이상 가는 수제화를 만들면서도 이들이 받는 공임은 고작 5,500원뿐이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제화공 300여명은 20년째 그대로인 공임을 “이제는 올려 달라” 외쳤다.
#제화공의 일그러진 손 손 손
29일 성수동의 한 제화 공장. 진동하는 본드 냄새 속에서 제화공의 일그러진 손이 눈에 띄었다. “자 찍어 보세요.” 카메라 앞으로 내민 그의 손가락은 하나 같이 비틀리고 구부러진 채로 굳어 있었다. 저부(구두 밑바닥)의 모양을 잡기 위해 꾹꾹 힘주어 누르다 보니 손끝은 뭉뚝해지고 지문도 닳아 없어졌다. 가죽으로 갑피(구두 윗부분)를 만드는 이의 엄지손가락엔 가위 손잡이 모양대로 굳은살이 박였다. 나머지 손가락 역시 가위질의 힘이 전달되는 방향을 따라 휘거나 마디에 변형이 왔다.
성수동 제화공들은 짧게는 30년, 웬만하면 45년이 넘는 수제화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손가락 마디마디 상처와 굴곡이 나이테처럼 늘어나는 동안 손길은 더욱 섬세해졌고, 기술의 정교함도 기계가 흉내 못 낼 경지에 다다랐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자’라는 자부심은 최저시급도 못 받는 현실 앞에서 자괴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주 6일 근무는 당연하고 납품 날짜에 쫓겨 일요일에도 일하는데 알바 시급만큼도 못 번다. 이젠 최고로 나쁜 직업이 돼 버렸다”며 제화공 이모(61)씨가 한숨을 지었다. 이들의 하루 노동 시간은 성수기 기준 16~18시간. 첫차 타고 출근해 막차 타고 퇴근할 때까지 일해도 갑피는 40개, 저부의 경우 20개 만들기가 벅차다. 각각의 공임이 족당 5,500원 정도이고 갑피의 경우 2인 1개조로 만들기 때문에 분야에 관계없이 모두 하루 11만원, 시간당 6,100원꼴로 번다. 올해 최저시급 7,530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그마저도 “일감이 없을 땐 월 50만원 벌이도 잦다”는 푸념이 어디선가 들려 왔다. 이 같은 현실 때문인지 이들은 스스로를 ‘수제화 장인’이 아닌 ‘족쟁이’라 불렀다.
#소사장제 악용하는 제화 회사 ‘갑질’
성수동에서 활동하는 제화공은 어림잡아 1,000여명. 일명 ‘수제화의 메카’라면서도 제화공의 처우는 열악하다. 이현수 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사무국장은 “90년대 중반만 해도 공임을 6,000원씩 받았지만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나라가 어려우니 500원만 깎자’는 식으로 깎인 게 20년간 그대로”라고 했다. 이들은 왜 턱없이 적은 공임을 받으면서도 꾹꾹 참아 왔을까.
제화공들은 그 원인으로 ‘소사장제’를 지목했다. 유명 수제화 브랜드를 비롯해 쇼핑몰, 도매상 등에 납품하는 하청 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은 이들의 신분은 말 그대로 ‘작은 사장님’, 즉 개인사업자다. 때문에 업체가 주는 일감을 지시에 따라 처리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4대 보험이나 퇴직금, 연차 휴가도 없고 소득세 3.3%까지 떠안았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꿈꾸는 제화공들은 소사장제의 굴레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수제화 산업 침체와 이를 악용한 회사의 ‘갑질’도 문제다. 부당한 요구에 맞서거나 공임 인상을 주장하면 아예 일감을 주지 않거나 까다로운 일감으로 수입을 줄게 만드는 식이다. 당장 박차고 나가면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었던 제화공들은 투쟁보다는 더 오래, 더 많은 일을 하는 쪽을 선택했고, 회사는 공임을 올려줄 필요성을 더더욱 느끼지 못하는 악순환이 굳어져 왔다.
30일 현재 노조에 가입한 성수동 제화노동자는 370명, 대부분 최근의 ‘탠디’ 하청업체 파업 사태를 계기로 용기를 냈다. 이들은 공임 3,000원 인상과 소사장제 폐지,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업체 수가 많고 계약 관계가 복잡해 교섭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기만 제화지부장은 “제화노동자들의 절실한 바램을 실현시키기 위해 곧 회사별로 교섭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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