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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서 레일바이크 탈까, 의암호서 카누 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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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쳐 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며 힘들게 올라 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 준비 없이도 훌쩍 떠날 수 있는 곳,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도심의 찌든 기운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곳이 춘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춘선 열차가 있었다. 지금의 경춘선은 전철과 ITX열차로 훨씬 쉽고 빨라졌다. 북한강과 나란히 달리던 기차가 자주 터널을 통과하고, 역도 강에서 멀어져 여행하는 맛이 다소 줄었다지만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에게 경춘선은 여전히 낭만여행 루트다. 청평과 춘천 사이, ‘청ㆍ춘’ 코스에서 즐길 만한 곳을 소개한다.
청평역에서 30분 쁘띠프랑스 vs 아침고요수목원
경춘선 전철이 개통하면서 청평역은 가평 여행의 시작과 끝이 됐다. 2개 노선을 운행하는 가평시티투어버스(1일권 6,000원)가 30분~1시간 간격으로 가평군의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고, 시내버스도 수시로 다닌다. 청평역에서 쁘띠프랑스와 아침고요수목원까지는 각각 30분 정도 걸린다.
청평호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쁘띠프랑스는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곳이다. 언덕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살려 좁은 계단으로 연결한 동선은 유럽의 오래된 마을을 연상케 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주제로 한 인형과 벽화가 색감을 더해 건물과 골목 어느 곳이나 예쁜 사진을 찍는 포인트다. 동화처럼 꾸민 프랑스식 건물 내부는 대부분 공연과 전시, 체험공간이다. 마을 가운데 야외극장에서는 프랑스풍의 꼭두각시인 마리오네트 공연이 수시로 펼쳐지고, 오르골하우스에는 하루 5회 오르골 연주회가 열린다. 이 밖에 유럽풍의 벼룩시장과 인형박물관, 현지 주택을 해체해 들여와 다시 세운 프랑스 주택과 거실, 프랑스 회화 작품으로 채운 전시실도 자랑거리다. 마을 오른편 ‘봉쥬즈 산책로’에서는 짧은 구간 숲 속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쁘띠프랑스의 장점 중 하나는 입장료(대인 1만원) 외에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식사를 제외하면 모든 공연과 전시가 무료다. 8월이면 개장 10년을 맞는 쁘띠프랑스는 바로 옆에 ‘이탈리아 마을’ 공사를 시작했다. 내년이면 또 하나의 작은 유럽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청평역에서 경춘선 선로를 기준으로 북측 축령산 자락의 ‘아침고요수목원’은 연인과 친구, 가족 여행객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곳이다. 아침고요수목원은 숲이 울창한 수목원이라기보다 산책하기 좋은 정원에 가깝다. 원래부터 자리를 지켰던 나무는 잣나무와 낙엽송뿐이다. 대신 정원마다 5,000종 200여만본의 식물을 특색 있게 가꾼다. 따라서 계절마다 항상 다른 꽃이 피고, 주제별 정원은 언제나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출렁다리 건너 아침광장에는 안동의 수몰지구에서 옮겨 온 향나무 ‘천년향’이 식물원의 상징처럼 너른 잔디밭을 지키고 있다. 알록달록 야생화와 여름 꽃이 핀 ‘하경정원(Sunken Garden)’을 통과하면 영국식 ‘J의 오두막’을 지나고, 조금 더 발길을 옮기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서화연 연못이다. 한국정원의 한옥 툇마루에서 한숨 쉬어 가도 좋고, 그늘진 낙엽송 산책길을 걸어도 그만이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는 그 흔한 ‘금지’ 푯말을 보기 어렵다. 관람객의 에티켓을 믿는다. 오두막이든 한옥이든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쉬어도 상관없다. 하늘길, 달빛정원, 암석원, 수경온실까지 천천히 둘러보면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1996년 개장해 2005년 법인화한 아침고요수목원은 국내 사립수목원 1세대라 할 수 있다. 설립자인 한상경 삼육대 교수는 준비 단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만들어 보자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소수를 위한 궁궐 정원과 반가(班家)의 개인 정원은 역사가 오래됐지만, 일반인을 위한 정원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도 전봇대 등 시각적 방해 요소가 없는 곳을 물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축령산 남측자락이었다. 1970년대에 화전민이 나간 이후 염소들이 노닐던 곳이었고, 계곡을 끼고 있어 입지 조건은 최고였다. 문제는 교통이었다. 개장 당시에는 도로가 없어 버스 종점에서 2km나 걸어 들어와야 했다. 하루 600명 정도만 와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지난해에는 110만명이 넘게 다녀갈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는 청평역에서 노선 버스와 가평시티투어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별도로 1,200대의 주차시설도 갖추고 있다. 수목원 입장료는 성인 9,500원이다.
수목원 안에 카페 2곳, 식당과 빵집이 각각 1곳 있지만 관람객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대신 수목원에 이르는 도로변에 카페와 식당, 펜션이 밀집해 있다. 자칫 ‘고요’라는 이미지가 흐려질까 우려할 정도다.
김유정역~강촌역 레일바이크 vs 의암호 물레길 카누
대학생 엠티(M.T)의 상징 북한강변 강촌역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지금의 경춘선 강촌역은 강변에서 1.5km 정도 남측 산자락으로 들어가 있다. 대신 옛 선로는 ‘강촌레일바이크’로 이용하고 있다. 강촌레일바이크는 하루 9차례 김유정역을 출발해 강촌역까지 운행한다. 김유정역에 내리면 바로 ‘레일파크’로 이동해 탈 수 있고, 강촌역에서는 강촌마을 주차장으로 이동해 김유정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김유정역에서 강촌역까지 레일바이크는 전체적으로 약간 내리막이어서 큰 힘 들이지 않아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약 40분이 소요되고 가격은 2인승 3만원, 4인승 4만원이다. 김유정역을 출발하면 양편으로 한적한 농촌마을을 지난다. ‘철컹철컹’ 온몸으로 전해지는 선로 이음새 진동에 맞춰 먼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들판을 지나 두어 차례 터널을 통과하면 오른편 아래로 북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편은 깎아지른 바위산이고 숲이다. 도로든 선로든 경춘선 구간에서 이만큼 분위기 있게 북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은 흔치 않다. ‘천상의 은하수터널’을 통과할 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펼쳐진다. 신나는 댄스 음악에 맞춰 화려한 조명이 춤을 춘다. 짧은 순간 레일바이크에 몸을 싣고 클럽 순례를 다녀온 느낌이다.
북한강이 코앞에 내려다 보이는 중간 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에는 레일바이크 대신 3량의 객차를 연결한 열차로 갈아타고 강촌역으로 이동한다. 그중에서도 지붕과 창이 없는 맨 앞 객차가 단연 인기 있다. 미끄러지듯 천천히 이동하는 속도에 맞춰 강바람에 기분 좋게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박자를 맞춘 샹송과 팝송이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물레길 카누는 춘천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의암호의 여름 대표 즐길거리다. 긴 타원형 모양의 의암호 가장자리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물레길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빗대 지은 이름이다. 의암호에는 상중도ㆍ중도ㆍ붕어섬 등 3개의 섬이 있는데, 물레길은 카누를 타고 물 위를 산책하듯 천천히 의암호의 섬들을 돌아보는 일종의 생태 투어다. 붕어섬에서 가까운 송암스포츠타운의 춘천물레길(033-242-8463), 중도 동편 시내 쪽에 위치한 중도물레길(033-243-7177), 그리고 호수 건너편 의암호물레길(033-242-2006) 등 3곳에서 운영한다. 3곳 모두 강촌역이나 남춘천역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해서 다소 번거롭다.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남춘천역이 편리하다.
코스는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중도샛길’은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다. 중도샛길은 중도를 2개 섬으로 분리한 좁은 뱃길이다.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호수 속 호수처럼 경치가 빼어나다. 물레길 카누를 타기 좋은 시간은 수면이 잔잔한 아침과 저녁 시간이다. 안개가 끼는 아침이면 더욱 운치 있고, 저녁이면 수면에 비친 노을이 아름답다. 저녁 시간 중도샛길 투어는 특별한 프러포즈를 원하는 커플들에게 특히 인기 있다고 한다. 이용 요금은 업체와 코스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의암호물레길의 경우 2인 기준 2만~3만원 선이다. 5분 정도 영상으로 안전교육을 받은 후, 간단하게 노 젓는 요령만 익히면 누구나 쉽게 카누를 탈 수 있다. 천천히 노를 저어 미끄러지듯 중도 근처에 닿으면 이따금씩 고목에 앉아 쉬던 해오라기와 가마우지가 머리 위로 날아 오르고, 물속에 뿌리를 내린 수초와 수면에 떠 있는 듯한 숲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 위의 산책이라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강물에 몸을 맡긴 듯 푸근함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다.
봄비의 선물 삼악산 등선폭포
유난히 잦은 비로 폭포가 제철을 만났다. 강촌역에서 강 건너편으로 우뚝 솟은 삼악산(654m) 초입의 등선폭포도 올해 유난히 물소리가 요란하다. 등선폭포 산책의 최대 장점은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삼악산의 핵심 절경을 두루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매표소(입장료 성인 기준 1,600원)를 지나 계곡 양편에 걸쳐 있는 식당 건물을 통과하면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한다. 시작부터 가파르고 날 선 바위 협곡이다. 중국 무협영화의 배경처럼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단단한 규암 퇴적층이 켜켜이 쌓여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 하늘만 비좁게 트여 초입부터 물소리가 요란한데, 아니나다를까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정면에 하얀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 10m의 제1폭포를 시작으로 바로 위에 바위 속에서 떨지는 듯한 제2폭포가 신비한 자태를 뽐낸다. 이렇게 약 600m를 오르는 동안 승학폭포, 백련폭포, 비룡폭포, 옥녀담, 주렴폭포 등 7개의 폭포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연달아 나타난다. 폭포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서늘한 그늘과 시원한 물소리에 더위가 싹 달아난다.
삼악산은 상원사, 흥국사, 봉덕사 등 유서 깊은 사찰을 품었고, 꼭대기 부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 남아 있는 명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의암호와 북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게으른 여행자에겐 등선폭포 7개 물줄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왕복 20여분 짧은 산행으로 명산의 엑기스를 모두 취하는 셈이니 ‘가성비 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강촌역에서 등선폭포 입구까지는 약 4km, 걷기에 부담스러우면 의암호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가평ㆍ춘천=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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