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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신념 무시당했다” 분노가 일상이 된 노인

입력
2018.06.08 04:40
수정
2018.06.18 16: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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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집회 100번 넘게 참여 70代

“우린 25시간 피땀 흘려 일했는데…

종북 좌파들이 한국 공산화 몰고가

우파 잘못했지만 껴안고 고쳐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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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사과도 없는 남북회담 반대

남북화해는 공산화… 전쟁이 낫다

北 위협한 결과인 북미회담은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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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집회한다는 모함 불쾌

희생정신 갖고 힘들게 집회 참석

자녀들과 멀어질까 집회 얘기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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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하려 하니 인터뷰 중단

전문가들 “동의 안 해도 이해는 필요

노인세대의 역사적 맥락 살피기를”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노인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 분노와 무시로 벽을 이루고 있는 이들 세대 간 갈등은 과연 녹아내릴 수 있을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류효진기자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노인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 분노와 무시로 벽을 이루고 있는 이들 세대 간 갈등은 과연 녹아내릴 수 있을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류효진기자

4ㆍ19혁명, 5ㆍ18민주화운동, 6월항쟁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한국 현대사를 이룬 중대 사건들의 시발점은 예외 없이 시민의 분노였다. 변화를 향한 갈망으로부터 잉태됐던 이들 분노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민주화의 수준은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광장의 촛불이 꺼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분노를 마주했다. 주말과 국경일이면 젊은이들이 자리를 떠난 거리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노인들이 모여 자신들이 신봉해온 이념을 지탱하기 위해 성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거나, 남북화해를 옹호하고 정부 정책에 찬성하는 익명의 타자를 향해 가차 없이 쏟아진다. 촛불을 들었던 젊은 세대, 그리고 이들을 향해 화를 터트리는 이른바 ‘태극기 노인들’의 다툼. 남북이 화해하고, 정전 65년만에 북미가 한국전쟁 종전을 이야기하는 2018년 여름 한국은 ‘성난 노인들’과 ‘귀 막은 젊은이’들의 싸움으로 상징되는 심각한 세대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일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을 조율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지점으로 이른바 ‘앵그리 실버(Angry Silver)’라 불리는 노인 세대를 주목했다. 올해 신년기획 ‘성난 사회, 화 좀 내지 맙시다’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노 현상의 원인과 해법을 집어본 데 이은 연속 기획이다.

노인들이 광장이나 공공장소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터트리는 분노의 이면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100여 차례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70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고등교육을 받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영위했던 한 명의 은퇴자가 무슨 이유로 젊은 세대와 우리 사회를 향해 분노를 품게 됐는지 들었다. 그리고 이념과 정책, 사회를 보는 시선의 격차가 어떻게 소통을 끊어내는지도 살폈다.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세력이 있다”

차분히 말을 꺼낸 백발의 박정기(70ㆍ가명)씨는 국내 모 명문대를 졸업한 후 30여 년 동안 중소 제조업체를 이끌며 기업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모교 교우회 ‘트루스(Truthㆍ진실)포럼’ 멤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구국 동지회를 꾸렸는데 좌파 쪽에서 이미 민주ㆍ구국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어, 헷갈릴 것 같아 트루스를 사용하게 됐다”고 했다. 박씨의 입술에서는 ‘좌파’라는 말이 자주, 일상적으로 나왔다. 해당 대학 교우회 트루스 포럼에는 100여명이 활동한다.

거침없이 공산주의 이야기부터 했다. “공산주의를 공부해보면 거짓, 선동, 국민 세뇌 작전을 펼치는데 그게 공산주의 이론이다”며 “그 동안 좌파는 주사파 공부를 엄청나게 하고, 결국에는 나라가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피땀 흘려 25시간 살아가는 삶을 살아왔다”며 “학교 후배들도 마찬가지이고 5, 6학년(50대, 60대)에 주사파들이 많은데, 7학년(70대)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우리나라를 공산화, 사회주의로 몰고 가는 것(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예측하자면 공산주의는 매스컴 그리고 교육을 장악해 국민 정신을 바꿔버린다”고 했다. 거짓말ㆍ선동으로 국민을 손에 쥐고, 반대파를 죽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은 이미 거의 다 장악 당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배우한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배우한 기자

“볼셰비키 혁명 사망자 수를 모르나”

그의 ‘이론’을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공산당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스탈린 집권 시절까지 합쳐 6,000만명을 죽였고, 마오쩌둥(毛澤東)은 5,000만명, 히틀러는 독재자이긴 했지만(공산주의와는 다르지만) 유대인까지 2,000만명, 캄보디아 200만명, 월남 1,200만명을 죽였다.” 따라가기 벅차 숫자를 확인하자, 박씨는 “다양한 독서를 하면 다 알게 된다. 젊은 세대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한다”고 핀잔을 줬다. 박씨와 함께 나온 태극기 집회 주최측의 이모(53)씨 또한 모두 알고 있는 숫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기자님이 공부해야 하는데…”라고 못마땅해했다.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뒤엎고 국민을 학살했던 반공주의자 피노체트나 인도네시아의 반공학살이 떠올라 ‘독재가 문제이지 공산주의만 학살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려다 포기했다. 소련, 중국 공산당 시절 사망자 수도 검증을 하며 반박을 할까 했으나 공산주의, 반공주의라는 주제에 매몰될 수 있고 ‘공산주의자’로 몰릴까 걱정됐다. 정치 이념을 사이에 둔 소통은 벽에 부딪혔다.

좌파와 공산주의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반대파’를 모두 죽일까 봐 박씨는 절박한 것일까. 이를 막기 위해 100차례나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나. 그건 아니라고 했다. 박씨는 “볼셰비키 혁명을 보면, 우선 주변 사람들부터 죽인다”며 “김정은이 내려오면(남침하면) 누구부터 죽일 것 같아. 가장 먼저 이용해 먹은 주사파부터 죽인다”고 했다. 자신들이 무지한 좌파세력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태극기 집회에 나가 싸우고 있다는 뜻을 비쳤다.

박씨는 “왜 북에 돈을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중국에 가서는 좌파 기자들이 두들겨 맞나. 더 분노가 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한 것도 언급하며, “적에게 항복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되도록 박씨의 말을 듣기만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견을 제시하며 소통을 시도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던 사례 등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한 것 아니냐고 되묻자 “전쟁에서 그런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좌파와 공산주의는 다르다고 의견을 내자 “공산주의는 100번 거짓말을 하면 사실인 줄 안다”며 “우리 세대는 공산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지금 세대는 경험하지 못해 속아 넘어가는 취약점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치면 유럽은 좌파가 대다수이지만 공산주의는 아니라고 거듭 지적하자, “유럽의 좌파와 우리나라의 좌파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완전히 종북 사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주사파로 규정지었다. 문 대통령과 임 실장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조금 뜸을 들인 후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보면 그렇다. 탈원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공산주의와 탈원전이 연결되는 대목에서 대화는 끊어졌다.

우파 잘못해도, 정권은 우파가 잡아야

박씨는 “오늘날 이 사태가 왜 발생했나 보니, 우파 쪽에서도 진실 개념을 벗어난 행동을 했고 이 나라가 이 모양이 된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우파의 잘못을 인정했으나, 그로 인해 국가가 좌파에게 넘어간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우파도 진실 면에서 잘못한 게 있었다”는 회한이다. 이 말을 하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공산화는 안 되니까 그 팀(우파)을 껴안고 고치면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적이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사과도 받지 않고 회담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어도 반대했을지 묻자, “그분은 사과를 안 받으면 회담 안 했을 것, 그러니 전제가 잘못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미 정상회담도 반대하는 걸까.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전쟁도 불사한 위협을 해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며 용인했다. 국민 80%가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국민들이 분석해야 하는데 안 한다”고 했다. 남북화해와 평화가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전쟁이 안 나는 대신 공산화가 돼 버린다, 차라리 전쟁이 낫다”고까지 말했다.

정부가 재벌을 국유화시킬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는 쌀밥에 미역국 먹는 게 꿈이었다”며 박정희 정부에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고,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노동자들 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그건 일부이며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고 했다. 또한 “지금 노동자들의 약점을 부추겨서 재벌을 국유화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며 “이북같이 국가가 먹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진 일가의 갑질 논란에 대해서도 밀수 혐의 등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는 데 불만을 나타냈다. “물컵을 던진 것만 문제 삼으면 되지, 왜 노동자들이 일어나서 법을 악용하느냐”는 게 그의 불만이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반박을 시작하자 만남은 끝났다

우파가 잘못했지만, 그래도 우파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그러면 어디까지 잘못을 용인해야 하는지” 기준을 물었다. 박씨는 이 질문에 기분이 나쁜 눈치였고, “그렇게 따지면 한이 없다”는 애매하지만 단호한 반응을 보였다.

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기소에 대해서는 ‘태극기 집회’에서 반응이 없는지를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성이 있다, 돈을 하나도 안 먹었다”며 “밥 못 먹던 나라를 밥 먹게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중도파, 자기합리화를 했고 세력을 기르는데 좌파도 우파도 이용했다”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으로, (그의 처벌에 대해서는) 그저 안됐다는 생각 정도”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열렬했다. “이정현(전 청와대 홍보수석) 같은 사람이 양의 탈을 쓰고 들어와 우려 먹고, 역적이다”며 “주변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약점을 이용하고 종합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잘못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의 죄를 박 전 대통령에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수많은 혐의 중에서 한 가지를 꺼냈다. 조원동 전 청와대 수석이 이미경 CJ 부회장에게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고 물러나라고 한 음성녹음도 공개된 적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재벌들을 그리 애지중지하니, 재벌을 못살게 군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꼽아보자는 생각이었다. 이에 태극기 집회 주최측 이씨가 “그게 박 전 대통령 목소리가 직접 녹음된 게 아닌데 어떻게 믿느냐”고 반박했다.

커피숍에는 세월호 리본 무늬 장식이 있었다. “세월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난센스다”며 “세월호는 교통사고에 불과한데, (피해자들이) 천안함 사건보다 더 보상금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며(천안함 사망자는 연금이 있어 배상 액수가 세월호 피해자보다 적다고 할 수 없음), 사고 원인 등에서 조사를 제대로 못 하게 하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세월호는 문재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깜짝 놀라 “그렇게 써도 되는지”를 묻자, 표정이 굳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씨까지 가세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려다 보니 세 명이 서로 말을 가로막는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박씨는 “인터뷰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기사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2시간 가량의 인터뷰는 파국을 맞았다. 무례한 점이 있었는지, 무엇을 잘못 했는지 물었다. 진실하지 않다고 했다. 공산주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말로 인터뷰 중단 요구 이유를 댔다. 기사를 전제로 만난 자리에서 이뤄진 일방적인 통보였고, 이 과정을 전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익명을 전제로 대화 내용을 싣기로 했다.

자녀 세대와 소통 어려움은 고통

박씨에게 자녀들은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 하는지 물었다. “말이 안 통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불화가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 한다”고 했다. 박씨의 자녀들은 모두 출가했고, 1년에 5, 6번 정도 만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즈음에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자신을 향해, 자녀들이 “동상 걸린다”며 말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 묵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듣기만 하고 반박하지 않는다. 점차 자신에게 설득 당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기고 있었다. “탄핵 즈음과 달리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굳이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시종일관 진지했고, 자신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실망했다. 딸이 사준 것이라고 모자를 쓰다듬는 그는 여느 따뜻한 노인이었다.

태극기 집회 참여자의 인터뷰 섭외를 요청 받았던 이씨는 “한국일보가 ‘좌파신문’이기 때문에 말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박 선생이 해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좌파’는 범위가 넓었다.

박씨는 자리를 뜨기 전 말했다. “힘들게 집회에 나가는 것”이라며 “이타적인 생각으로 희생정신을 가지고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집회할 때 젊은이들이 조롱하고 싸우기도 한다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회비를 내고 밥값도 스스로 내고 태극기조차 자기가 사는데, 돈을 받고 집회한다는 ‘모함’을 받고 있다고 특히 불쾌해 했다. 기독교 신자인 박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되자 “대통령이 잘 하도록, 꼭 발전시켜 주도록 기도했다”며 “우리라도 안 하면 주사파 공산화가 된다”고 힘줘 말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씨는 “천주교는 좌파화 돼버렸다”며 부끄러워했다.

“젊은 세대의 이해가 반드시 필요”

이들은 모두 진심이었고, 그래서 소통은 힘들었다. 박씨의 입장에 대해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세계를 인식하게 되며, 권력집단의 이해관계나 개인의 이해관계가 중첩화되면서 정신구조가 체화된다”라고 이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것처럼 평생 바뀌기 힘들다”며 “자기의 세계관에 프레임이 작동하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거나 프레임으로 재해석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근본주의자들, 극좌ㆍ극우 할 것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되는 부분이다”고 전제한 뒤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집단이고, 젊은 세대들이 노인 세대들에 대해 저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왜 저렇게 행동하고 저런 정신세계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작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해 작업, 해석적 과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이해 과정을 한번 거치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또 때로 동의해서도 안되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 방향성을 설정하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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