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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의 기싸움 협상술에 분노... 초강력 경고로 맞대응

입력
2018.05.25 06:42
3면

김계관 부상 담화 때만 해도

대외적으로 감정 대응은 자제

‘펜스 모욕’ ‘핵전쟁 위협’ 최선희 성명에 배신감

“마지막 남은 인내 한계 넘어”

“미국민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치를 순 없어”

북한 ‘핵보유국’ 주장도 비핵화 의지 의심

북, 정상회담 준비에도 응답 없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회담 취소를 알리며 보낸 서한.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회담 취소를 알리며 보낸 서한.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6ㆍ12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은 과거와 같은 북한의 기싸움식 협상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 가능성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저격하며 북미회담 재고를 연이어 위협하고 정상회담 준비 대화에도 나서지 않는 데 대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심각하게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돌변에 충격을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을 ‘무지몽매’ ‘아둔한 얼뜨기’ 등으로 모욕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성명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마지막 남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으로 결국 정상회담 취소로 이어지게 했다”고 백악관의 기류를 말했다.

그간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훌륭하다(honorable)”며 여러 차례 칭찬을 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의 적대적 공격에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의 담화 때도 충격과 분노의 반응을 보였지만, 대외적으로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했다. 대신 북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보이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날 방송된 폭스뉴스채널의 폭스앤프렌즈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즉각적인 비핵화를 원하지만 알다시피 물리적으로 단계적 방식(phased-in)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빠른 속도의 단계적 방식이어야 할 것”이라며 단계적 방식의 필요성을 처음 인정했다. 앞서 2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완전히 확언하고 싶지 않지만 일괄타결이 더 나을 것”이라면서도 “정확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물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히며 단계적 방식 수용을 시사한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북미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 오히려 북한의 기 싸움식 협상 전략에 계속 휘말려 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미 정부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에 고무돼 지나치게 이를 열망하는 모습을 보여 북한에 협상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아울러 최 부상이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맛 보게 할 수 있다”며 사실상 미국에 핵 전쟁 위협을 가한 것도 미국이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인터넷매체인 ‘악시오스’에 “그들이 사실상 핵전쟁으로 우리 국민에 위협을 가하는 환경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순 없다”며 “대통령이 현명하게 판단한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결코 미국의 안전과 안보에 대해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계관 1부상과 최 부상 모두 성명에서 리비아 모델 뿐만 아니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대해서도 거부 의사를 시사하고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강조한 것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한 대목이다. 북한이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나섰지만 전문가 참여를 배제한 채 진행하며 핵 시설 공개를 꺼려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려는 의도라는 미 조야의 의구심을 해소시키지 못 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비공개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이해한다고 했던 한미훈련을 북한이 갑자기 문제삼고 나섰고, CVID도 거부하고 있으며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시 전문가를 현장에 초청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다”며 “싱가포르에 선발팀이 나가 있는데, 지난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협의에 북한이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을 문제 삼았다. 이 관계자는 “북한에 수 많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면서 “이 같은 대화 중단은 심각한 신뢰 부족을 암시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중국 방문 이후 북한의 태도가 돌변해 김 위원장이 애초 표명했던 비핵화에 대한 마음이 바뀐 게 아니냐는 것이 미국의 의심이다. 북한이 정상회담 준비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김 위원장과 내가 합의한대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우리의 요청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상회담 전격 취소는 과거 북한이 판을 깨겠다는 위협으로 미국의 양보를 이끌었던 협상술이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트럼프 정부는 그간 북한과의 협상에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도 “언젠가 귀측과 만나기를 고대한다. 결국에는 대화만이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며 정상회담 재개의 문을 열어뒀다. 정상 회담 전격 취소라는 강수로 주도권 잡기에 나서면서 북한에 다시 공을 던진 형국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북한이 들어 오기를 원한다면, 여전히 뒷문은 열려 있다”며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레토릭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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