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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비핵화 첫 발 뗀 날,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 회담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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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폐기
말 아닌 행동으로 보인 의지 무색
북미 적대관계 회귀 가능성
트럼프 “전화ㆍ편지 하라”며 여지
접점 찾을 땐 극적 대화 재개할 수도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은 채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면서 “비핵화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장 폭파 소식을 공식 발표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향방이 또다시 미궁에 빠진 형국이다.
북한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핵실험장을 폭파한 것은 더 이상의 핵 실험은 없다는 핵 동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단순한 ‘시설폐쇄’(셧다운)가 아니라 진정한 ‘폐기’를 단행한 만큼 핵 불능화에 한 발짝 다가선 유의미한 행동이란 평가도 나온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비핵화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핵 개발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닌) ‘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라며 “설령 쇼일지언정 의미 있는 쇼이자 비핵화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핵실험장 폐기는 보상을 약속 받거나 요구하지 않은 채로 취한 선제적 조치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는 국제 사회의 불신을 타파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도 이날 성명에서 “투명성이 철저히 보장된 핵 시험장 폐기를 통하여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이고 있는 공화국정부의 주동적이며 평화애호적인 노력이 다시 한번 명백히 확증되었다”고 선전했다.
물론 단계적ㆍ동시적 이행을 강조해온 북한이 추후 협상에서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두고 “평화를 위해 상대방에게 상응한 행동 조치를 촉구하는 선제 조치”라고 규정했다.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 참관 없이 언론인만 초청해 행사를 진행해 핵 기술 수준이나 핵실험장 사용 불가 여부 등에 대한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6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해 국제적으로도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간주되는 데다, 추가 핵 실험 없이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핵실험장 폐기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성명을 통해 폭파 사실을 알린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에서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일단 핵실험장을 자진해서 폭파한 날 협상 상대방에게 한방 얻어 맞은 북한이 이전의 적대적 북미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북한은 김계관 외무상 제1부상, 최선희 외무상 부상의 개인 명의로 각각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맹비난했다. 앞으로는 성명 주체도 개인이 아니라 북한 노동당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로 내보내고 비난 수위를 한층 더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극적으로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에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전화ㆍ편지를 해달라”고 여지를 남기며 북한에 공을 넘겼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위, 예를 들어 핵무기 일부 반출 등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타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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