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네 탓” 휴지조각 된 개헌안

모두가 “네 탓” 휴지조각 된 개헌안

입력
2018.05.24 17:40
1면

#1

31년 만에 발의된 헌법개정안

야당 불참으로 투표불성립 처리

靑, 여소야대 한계 분명한데도

대통령 개헌안 밀어붙여 진의 의심

#2

여당은 존재감 없이 끌려가기만

한국당도 개헌 발목잡기로 일관

“국민이 볼 땐 여야 모두 정략셈법

개헌동력 상실될까 우려” 지적

24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의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여당의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4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의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여당의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정치권 모든 주체가 부르짖던 개헌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사라졌다. 1987년 이후 31년 만에 발의된 헌법개정안이 사실상 폐기됐다. 대선 당시 여야 후보가 한 목소리로 약속했던 6ㆍ13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실시 약속은 휴지조각으로 버려졌다. “개헌의 주체가 되겠다”던 국회는 2017년 1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꾸리고도 1년 4개월 동안 통치구조 개편 등 권력투쟁에 몰두하며 소모적 논쟁만 반복했다. 청와대도 ‘여소야대 다당제’라는 의회의 구조적 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활용해 야당을 밀어붙인 것 외에 사회적 합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야당의 불참이 예고된 상황에서 본회의를 강행해 명분 쌓기에 몰두한 여당이나,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며 끝내 불참한 야당 어느 누구도 정치불신과 국민적 피로감만 높였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다.

청와대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정부 개헌안이 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라며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무산 가능성을 알고서도 국민적 요구라는 명분을 쥐고 개헌 정국을 줄곧 주도해온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롭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당장 청와대가 얻은 실리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앞서 문 대통령이 3월 개헌안을 발의할 때부터 국회 통과 전망은 어두웠다. 의회와 지방정부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내용이 대폭 담겼지만, ‘4년 연임의 대통령중심제’로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정하면서 야당의 반발을 샀다. 청와대의 시선은 줄곧 국민 쪽을 향해 있었다. 개헌안 발의에 앞서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나서 정부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개헌안을 ▦전문과 기본권 ▦지방분권과 국민주권 ▦정부형태 및 헌법기관 권한 등으로 나눠 사흘간 진행된 설명회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 “쪼개 팔기식 개헌 쇼”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 후 입장문을 통해 “왜 대통령이 야당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헌안을 발의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번 개헌은 국민을 위한 개헌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끌려가기만 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헌법에 따라 개헌안 국회 표결 시한이 5월 24일로 못박히는 외부 충격에 떠밀려 한때 개헌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정부 개헌안 대로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되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 또는 추천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총리 추천제 수용에 난색을 표하면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명분 없는 개헌 발목잡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당은 특히 총리추천제로 합의 가능성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그 전제로 제시된 비례성 강화 원칙을 거부하면서 다른 야당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여권은 국회의 대표성이 강화 된다면 총리추천제를 전향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도 새 헌법에 ‘비례성 강화’ 문구를 넣어 선거제도 개혁의 근거를 남겨야 한다며 동조했지만, 끝내 공염불이 됐다. 잇단 말 바꾸기도 문제였다. 한국당은 당초 대통령과 여당이 개헌안을 내놓아야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개헌안을 내놓자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로 이름을 바꿔가며 1년 4개월 동안 개헌 논의를 이어간 헌정특위도 결과적으로 헛심만 썼다.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 추진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시작된 5개월여의 개헌 정국이 승자 없이 막을 내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야당의 불참이 확실한 상황에서 설득보다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여당이나, 헌법에 명시된 절차임에도 표결에 끝내 불참한 야당 모두 정치적 셈법만 따랐다”며 “국민이 볼 때는 여야 모두 똑같다. 정치적 승자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권력분산과 기본권 강화 등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여전하다”며 “지방선거 후 정치적 상황까지 감안하면 개헌 동력이 완전히 상실될까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개헌안이 부결된 이날까지도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 의원들은 위헌 상태인 국민투표법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데 이어 개헌안 표결이라는 헌법적 절차마저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야당들은 낡은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도 없이 당리당략에 따르는 호헌세력임을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무리하게 밀어붙인 ‘표결 처리 쇼’라고 반발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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