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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미친 사장님’의 최저 연봉 7만달러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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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고통받는 친구에게 충격
자신의 연봉 90% 깎고 결행
행복도 높아진 직원 덕에
회사 고객 80%나 늘어
최저 연봉 인상ㆍ근로시간 단축
프라이스식 경영 동참 잇달아
“예수의 재현” “사회주의자”
엇갈린 평가 속 논쟁 이어져
최근 수년 동안 이처럼 논쟁의 중심에 선 경영자는 찾기 어렵다. 찬사가 쏟아짐과 동시에 우려도 한몸에 받고 있다. 그가 내린 결정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기업 존립 이유에 반하는 ‘혁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찬반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시애틀의 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의 최고경영자(CEO) 댄 프라이스(34) 얘기다. 그는 2015년 4월 13일 당시 110만달러(약 12억원)이던 자신의 연봉 90%를 줄이는 대신 직원 117명의 최저연봉을 3년 안에 7만달러(약 8,000만원)까지 올리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리고 그해 5만달러를 시작으로 2016년과 2017년 각각 1만달러씩 최저연봉을 올려 약속을 지켰다. 직원들의 소득이 올라가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이는 곧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나름의 ‘소득주도성장론’을 펼친 것이다.
‘연민’에서 시작된 최저연봉 인상
프라이스는 2004년 시애틀에 그래비티 페이먼츠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19세 때다. 카드 결제 수수료 부담은 높은 반면 서비스 혜택은 낮아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높았던 점에 착안해 수수료를 낮춰 고객들을 늘렸다. 컨설팅 프로그램도 개발해 업종별 목표 고객층과 홍보ㆍ판매 전략 등을 회원들에 제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 위기까지 가면서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기업 1만 곳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10명 남짓으로 시작했던 직원수도 120명 안팎으로 늘었다. 그 결과 프라이스는 2010년 미국중소기업청(SBA)의 ‘올해의 젊은 기업가’로 뽑힌 데 이어, 2013년 올해의 젊은 기업가, 2014년 시애틀 최고경영자에 선정되는 등 떠오르는 CEO로 주목 받게 됐다.
연봉도 100만달러가 넘어서는 등 승승장구하던 프라이스는 2015년 초 친한 친구와의 등산 도중 “집주인이 추가로 월세 200달러를 더 내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소위 ‘투잡(두개 직업)’을 뛰며 열심히 살던 친구였다고 한다. 프라이스는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친구가 기본적인 생활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술회했다. 자연스럽게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의 임금을 떠올렸다. 친구의 연봉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위해 희생하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의 연봉보다 적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또 한번 놀랐다. 그는 “절망감에 며칠을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친구도, 내 직원들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는 직원들의 최저연봉을 7만달러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생활 임금(life wage)’이라 그는 칭했다. 당시 그래비티 페이먼츠 임직원 평균 연봉은 4만8,000달러였다. 110만달러인 프라이스의 연봉까지 포함된 액수였다. 생활임금이 7만달러로 결정된 이유는 “인간은 7만달러의 연봉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했다.
연봉 오르자 행복감도 성과도 쑥쑥
프라이스의 모험에 가까운 최저연봉 인상 소식은 미국 전역에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전례 없는 결정이었기에 논란도 뜨거웠다. 극우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는 발표 이틀 후 “이 회사는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경영대학원(MBA) 연구자료 감”이라며 “곧 망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림보는 프라이스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회사 임원 2명은 불공평하다며 사직서를 냈고, 지분을 가지고 있던 프라이스 친형이자 공동 설립자 루카스는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가입자들은 최저연봉 인상이 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탈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라이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행복감이 높아졌다. 월세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되자 직원들은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다. 1시간이 넘던 평균 통근 시간이 20분 안팎으로 크게 줄었다. 여유가 생긴 덕분에 직원 출산율도 높아졌다. 최저연봉 인상 전 한해 아이를 가진 직원이 많아야 2명이었다면 2016년에만 직원 12명에게 아이가 생겼다. 연봉 인상 이후 지금까지 20명이 출산했거나 출산 예정이다.
7만달러 인상 발표 직후 입사 지원서만 3만장이 넘게 회사에 접수됐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직원은 50명이 더 늘었다. 입사를 고민하는 데 임금 규모가 얼마나 결정적 요소가 되는지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이직이 잦았던 상황도 먼 과거 이야기가 됐다. 연봉이 오르면서 의식주의 질이 높아진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덕분에 임금 인상 이후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고객이 80%나 늘었다고 사측은 전했다. 프라이스는 “직원들은 행복도는 높아졌고, 이는 고객들의 행복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2016년 10만달러가 넘는 테슬러사의 전기자동차를 프라이스에게 ‘깜짝’ 선물했다. 회사는 쑥쑥 성장해 현재 임직원 평균 연봉은 10만3,000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긴 머리의 프라이스는 직원들에겐 ‘예수의 재현’이었던 셈이다.
프라이스에 영감 받은 기업들
프라이스는 자신의 표현대로 “기념비적인 임금인상”이 많은 기업들에 퍼져나가길 바랐다. 실제 그의 영향을 받은 CEO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프라이스식 ‘소득주도성장’은 파급력을 키웠다. 보스톤에 위치한 제약 분야 구인ㆍ구직회사 파머로직리크루팅 CEO 메건 드리스콜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라이스가 최저연봉을 7만달러로 높이겠다는 발표에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다. 드리스콜은 2016년 1월 직원 최저 연봉을 3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인상시켰다. 직원 28명의 기본 연봉이 1만5,000달러씩 단번에 올랐다. 매년 성과급이 지급되는 점을 감안하면 파머로직리크루팅 직원들이 받는 최저 연봉은 7만달러로 뛰었다. 이곳 직원들도 열심히 일했고 2015년 670만달러이던 매출은 이듬해 말 1,500만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매출이 급증하면서 46명이던 직원은 72명으로 늘었다.
지난달에는 애틀랜타 소재 정보기술(IT) 업체인 렌티드닷컴(Rented.com)도 최저연봉을 3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인상하면서 뒤를 이었다. 이 회사 공동 창업자 앤드류 맥코넬은 “도시마다 생활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틀랜타의 5만달러는 시애틀의 7만2,143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프라이스의 경영 방식은 다른 형태로 변주되기도 했다. 직원 연봉을 올려주지 못하는 회사들은 다른 형태의 보상 체계를 마련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소규모 수상 레저 회사 타워 패들보드가 그랬다. 이 회사 스티븐 애스트롤 CEO는 미국의 창업투자 유치 오디션 방송인 ‘샤크탱크’에 출연해 투자를 유치해야 할 정도로 자본력이 빈약했다. 프라이스처럼 직원 11명에게 연봉을 인상시켜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근무시간을 하루 5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나인 투 파이브(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활동시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그 결과,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는 높아졌고 사업도 번창했다. 투자자인 마크 큐번이 “내가 투자한 기업 중 최고”라고 했을 정도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CEO”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 심화는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빈부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현재진행형인 프라이스의 실험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실제 림보의 예언(?)처럼 연구도 이뤄졌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이 2016년 프라이스 케이스를 연구한 결과 최저연봉 인상은 구직자는 물론 신규 고객들도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클 휠러 HBS 교수는 “이 회사의 성공요인은 CEO가 자신들을 존경하고, 이보다 많은 임금을 주는 직장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는 직원들이 생산성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모험에는 반발도 만만찮다. ‘170명 안팎의 중소기업에서만 가능한 실험적 정책’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적잖다. 높은 임금에 익숙해진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제고시킬 수 있는지, 그래서 높은 임금을 회사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프라이스는 모순된 부의 배분을 향해 지속적으로 싸움을 걸고 있다. 연구 단체인 ‘공평성장을 위한 워싱턴 센터(Washington Center for Equitable Growth)’에 따르면 프라이스가 최저연봉 인상을 결정한 2015년, 미국 소득 상위 1%를 차지하는 가구의 평균수입은 136만달러로 집계됐다. 나머지 하위 99%의 평균수입 4만8,800달러에 비해 무려 28배에 달한다. 프라이스는 최근 “지난해 세계 부의 80%가 상위 1%에게 돌아간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년 위축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아마존을 향한 날이 선 목소리는 거침없다. 최근 그는 트위터를 통해 “7,500억달러 가치의 아마존은 55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들의 중간 임금은 겨우 2만8,000달러”라며 “시장가치가 균등하게 나눠질 경우 근로자 개인은 각각 140만달러를 가져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마존은 실패했다”고도 덧붙였다. 부의 불균형에 관한 한 프라이스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기세다. 트위터에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CEO’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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