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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문ㆍ김ㆍ트 기싸움과 부처님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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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3자 삐거덕
국익싸움 불가피하나 판은 깨지 말아야
부처님 손오공 길들인 지혜 발휘하기를
2주 만에 쓰는 칼럼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창 밖의 푸른 하늘과 연초록 신록에 자꾸 눈길을 빼앗겨서다. 엊그제 서울 등 중부 이북에 때 아닌 장맛비가 쏟아진 뒤 맑고 싱그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21일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인 소만(小滿).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다. 농촌에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이른 곳은 벌써 모내기가 시작됐다. 화려하게 시작된 ‘한반도의 봄’이 가을의 풍성한 결실로 이어질 것을 예감케 하는 멋진 초여름 문턱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한반도의 화려한 봄을 일군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3각 궁합이 삐거덕거리는 탓이다.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잘 맞아 돌아가던 3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북한은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비난하며 “조미 수뇌 회담 재검토” 으름장을 놨다. 남한에 대해선 ”인간 쓰레기”(태영호 전 공사 지칭)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비방중상하는 놀음을 벌였다는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40여일 만에 다시 극비리에 방중해 시진핑과 회담한 김정은이 중국을 뒷배 삼아 대남,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구도 짜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가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을 기정사실화하며 마치 패전국을 상대로 전후 처리 협상하듯 고압적 자세로 나오는 데 대한 반발 성격도 짙다. 우리 정부는 민감한 시기에 태 전 공사와 같은 탈북 고위인사들의 활동을 방치해 모처럼 형성된 신뢰 분위기를 흐리는 등 안이하게 대처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문ㆍ김ㆍ트 3자 공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결실로 얻을 이익과 실패 시 감수해야 할 타격에 비춰 결코 판이 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지금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공동 운명체다. 북한이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나, 트럼프가 서둘러 볼턴을 자제시키고 ‘트럼프 모델’을 제시하며 협상 동력을 이어가려 애쓰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21일 출국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최근의 남북미 간 미묘한 갈등을 중재하려 애를 쓸 것이다.
세 지도자가 각자 국익 극대화를 위해 기 싸움을 하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세 사람은 자국 내 강경파나 정적들로부터 견제와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김정은의 대남 강공은 위장 평화 쇼라며 그와 문 대통령을 싸잡아 공격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에게 “그러면 그렇지” 하며 반색하게 한다. 과도한 대미 공세는 미국 내 강경파에 반격의 빌미를 주기 쉽다. 반대로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대북 요구는 그렇게 어렵게 개발한 핵과 미사일의 포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북한 군부 일각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세 지도자가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이더라도 상대방들의 자국 내 입지를 감안해 줘야 하는 이유다.
핵심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와 김정은 체제의 확실한 보장(CVIG) 사이에는 미묘한 역설이 성립한다. 김정은의 과감한 선제적 행보는 트럼프의 최대 압박이 작용한 점이 있지만 이른바 ‘핵 무력 완성’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인 측면도 강하다. 그런 자신감의 근원인 핵무력의 폐기를 성급하게 몰아붙이면 김정은이 움츠러들고 결과적으로 북핵의 완전한 폐기는 멀어질 수 있다. 그가 시진핑과의 관계를 거듭 다지는 게 심상치 않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북한이 숨기려고만 든다면 북핵 폐기의 완전한 검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정은이 자신감을 갖고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핵이 체제 생존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현명하다. 역사(팬터지)상 가장 성공적인 ‘최대 압박과 관여’ 사례는 부처님이 천방지축 손오공에게 기회를 주며 손바닥 안에서 길들인 일이다. 오늘(22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논설고문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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