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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이 ‘적’도 아닌데… ‘전사’가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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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계엄군 장병들의 현충원 묘비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몇 월 며칠 광주에서 전사”라고 통일돼 있는 묘비명 중 ‘전사’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전사(戰死)는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었다”는 뜻이다. 이는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한 셈이기 때문에 ‘전사’ 대신 “직무를 다하다 목숨을 잃다”라는 뜻의 ‘순직’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동작공동체라디오 동작FM, 동작역사문화연구소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제28, 29묘역에는 계엄군 장병의 묘 22기가 안치돼 있다. 문제의 묘비명은 22기 모두에 적혀 있다. 22기 중 20기는 장병, 2기는 장교의 묘다. 제28, 29묘역은 서울현충원에 조성돼 있는 총 56개의 묘역 가운데 6ㆍ25전쟁 전후 전사자 및 1980년대 순직자 1,240여위가 안장된 곳이다.
이들 단체는 보도자료에서 “1980년 이래 현재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서도 5ㆍ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과 폄훼가 계속되고 있다”며 “현충원에 있는 묘비를 ‘전사’에서 ‘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집권 당시엔 사회 분위기상 ‘전사’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해도,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쓰는 건 옳지 않으니 ‘공무 중 사망’이란 뜻의 ‘순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려 18일 오후까지 네티즌 450명의 참여를 끌어냈다.
양승렬 동작FM 방송국장은 1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몇 년 전부터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권 분위기상 적극적인 공론화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로 바뀌면서 ‘5ㆍ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며 “묘비명 문제 공론화를 위한 여러 행사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양 국장은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또한 역사의 피해자”라며 “하루 빨리 ‘전사’라는 단어를 바로잡아 영령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이날 “계엄군이 굉장히 잘못된 일을 한 것 맞지만, 그들은 적과 싸우다 죽은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사’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들도 국가의 (강제) 동원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말했다. 특히 민주화운동 당시 아군 오인 사격으로 세상을 떠난 계엄군 장병이 적잖았던 사실을 강조하며 “이런 점에서도 ‘전사’라는 표현은 더더욱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ㆍ18 민주화운동 기록물 등에 따르면, 항쟁 기간 10일(1980년 5월18~27일) 동안 발생한 시민 측 사망자는 166명이었고, 계엄군 사망자는 23명이었다. 특히 계엄군 사망자는 군 부대간 오인 사격에 따른 사망자가 많았다. 1980년 5월24일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와 11공수여단 사이 오인 사격으로 총 9명의 계엄군이 사망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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