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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남 조심’ ‘ㄱ 같은 녀석’ 어느 것이 모욕죄 해당될까요

입력
2018.05.18 04:40
11면

사건 접수 10년새 7배 늘었지만

판례 “사회적평가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 경멸적 감정 표현…”

개념ㆍ기준 모호해 혼란 부추겨

“대상ㆍ범위 한정해야” 목소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A씨는 유명 인터넷카페에 올라온 여성 스터디원 모집 글에 ‘여자분들, 발정남 조심하세요’ ‘아재요, 공부하세요. 여자 찾지 말고’ 등의 댓글을 달았다가 “피해자를 모욕했다”고 지난 6일 벌금 50만원을 선고 받았다. 무직의 B씨는 지난해 길거리에서 무료급식 모금을 하는 봉사단에 “최순실 같은 X”라고 외쳤다가 모욕죄로 처벌 받았다.

반면 특정인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기사에 ‘ㄱ 같은 녀석’이란 댓글을 단 C씨는 ‘ㄱ’이 “초성에 불과해 의미가 다양할 수 있고” ‘개’로 특정할 수 없단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관리소장에게 “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고 소리친 D씨는 “표현이 다소 무례하지만, 상대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하지 않다”라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욕하는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고소는 부쩍 느는데, 모욕죄 개념이 모호하고 법 적용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모욕죄 사건 접수는 2007년 4,396건에서 지난해 3만2,087건으로 10년 만에 약 7배 급증했다. 예전과 달리, 사사로운 다툼으로 치부하며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모욕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형’ 등 처벌을 받아 전과가 남는 꽤 무거운 죄다. 그런데도 기준이 명쾌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상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모욕죄로 간주하는 법원 판례만 봐도 그렇다. 예컨대 ‘경멸적 감정’에 대한 판단은 상황에 따라, 재판부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 형사전문변호사는 “기준이 모호하면 영악하게 모욕하는 사람들은 처벌이 어려워지는 반면, 법을 잘 몰라 직접적인 욕을 내뱉는 사람만 처벌받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 말했다. 모욕이란 감정 자체가 주관적이라 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어려운 점도 분명 있다.

모욕죄 유죄 남발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도 두 차례나 겪었다.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만장일치였던 2011년과 달리, 2013년엔 3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모욕죄가) 판단과 감정 표현까지 규제할 수 있어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이유에서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인종 등으로 대상을 좁히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의미가 깃든 욕설을 하는 경우 등으로 모욕죄 적용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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