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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살인 현장 유일한 단서는 ‘사라진 돌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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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강도는 아니다
심장 부근 정확하게 찔러 살해
원한관계에 수사 초점 맞췄지만
남편,친구 등 알리바이 확실하고
인근 성폭력 우범자도 혐의 없어
#한 달 넘게 범인 윤곽 못잡아
“아이 이름 새긴 돌반지, 목걸이…”
남편이 경찰에 도난 사실 알려
전국 금은방ㆍ전당포에 협조 요청
“장물만 찾으면 쉽게 해결…” 기대
형형색색 등불이 진주의 가을밤을 환히 밝히고, 진주성(城)을 굽이 돌아드는 짙푸른 남강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였다. 임진년(1592) 왜란 당시 강을 건너려던 적군을 막으려고 띄워졌던 유등(流燈)이 이날은 평안과 행복에 대한 기원을 담은 소망등이 돼 강을 가득 채웠다. 항상 이맘때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남강 유등축제’가 열린 2010년 10월 4일 진주 풍경이다.
축제 기간 오가는 외부인 발길은 잦았다. 당연히 사건사고도 평소보다 많았다. 자잘한 소매치기와 술 취한 사람들 다툼을 처리하느라 진주경찰서 강력6팀 이영삼(44) 경위의 그날 당직근무는 고되기만 했다. 오전 회의만 마치면 퇴근할 요량으로 아침 햇살에 부신 눈을 비벼가며 서류를 뒤적이던 오전 9시30분쯤, 마약팀 직원 한 명이 그를 황급히 찾았다. “팀장님, 인사동에서 살인 사건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하필 6팀 관할구역이었다. 쏟아지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경찰서에서 2㎞ 정도 떨어진 한 빌라. 차로 5분이면 도착이 가능했다. 피해자는 30대 주부 이모씨로 밝혀졌다. 밤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숨져 있는 아내를 처음 발견했다.
PC방을 운영하는 남편은 이른 아침에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평소라면 초인종 소리에 반응했을 아내가 그날따라 아무 답이 없었다. 늦잠을 자는지 의아해하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기다리는 건 자지러지듯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피투성이가 된 채 안방에 쓰러진 아내였다.
과학수사팀이 1차 현장감식을 막 마친 방 안은 어지러웠다. 벽에는 피가 난자돼 흩뿌려져 있었다. 목과 손에 저항을 하다 생긴 상처가 보였지만, 사망의 직접 원인은 심장 부근을 정확하게 찌른 흉기였다. 얼핏 둘러봐도 단순 강도 가능성은 떨어졌다. 범인은 아이들 옷을 개어놓은 플라스틱 옷장을 조금 뒤지다 말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이전 모습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족적도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찌른 흉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경위는 일단 피해자 가족을 잘 아는 면식범이나,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을 떠올렸다.
범행 추정시각의 윤곽은 일찌감치 잡혔다. 범행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새벽 3시쯤 흐릿한 형체가 피해자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다만 화면이 좋지 않아 신원을 단박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주변인 조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이는 피해자를 가장 먼저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남편이었다. 첫날 경찰 조사에서 황망한 모습이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게 의심을 산 첫째 이유다. 갑작스레 아내를 잃게 된 남편치고는 조사를 받는 내내 표정이 너무나도 담담했다.
하지만 알리바이는 ‘남편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 새벽 3시, 남편은 일터인 PC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PC방 CCTV에는 남편이 그 시각 전후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 진술도 일관됐다.
두 번째 용의자로는 그날 밤 피해자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 집에 돌아갔다는 친구가 거론됐다. 그 역시 충분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피해자의 다섯 살배기 첫째 딸이 범행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았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봤지만 허사였다. 밤새 동생과 함께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던 아이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피해자가 살던 곳 주변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피해자가 여성인만큼 성범죄까지 염두에 두고 인근 성폭력 우범자를 수사선상에 포함시켰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범행 당일이 유등축제 기간이었다는 점도 수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았고, 기지국을 통해 받은 통화내역 역시 일일이 분석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진주에서는 근래 비슷한 사건이 없었어요. 축제를 틈타 진주로 들어온 외부 사람이 저질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경위는 그때의 답답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순순히 절도만 인정
반지 팔러온 아줌마 마침내 찾아
계속 발뺌하다 “남편이…” 실토
내성적인 용의자, 살인은 부인
추궁 않고 며칠간 구슬리기만
현장 검증 뒤 충격적 자백
“노부부와 30대 주부도 죽였다”
1심 사형…상급심 무기징역 감형
한 달이 넘어가도록 범인은 그림자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사건이 미제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밤낮없는 수사로 쌓여가는 피로와 뒤엉켜 이 경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때 피해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 처음엔 잘 몰랐는데요. 다시 찾아보니 아이 이름(이니셜)이 새겨진 금목걸이랑 돌반지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요.”
귀가 번쩍 띄었다. 가격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경험상 사라진 장물이 사건 해결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인 때가 많았다. 진주 시내뿐 아니라 전국 금은방과 전당포에 ‘혹시 아이 이니셜이 새겨진 장물이 들어오거든 지체 없이 신고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사건 전담팀 번호를 적은 전단도 만들어 배포했다. 기다림의 시간,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어떤 아줌마가 자꾸 뭘 팔러 오는데, 이게 이상해요. 어린 애가 있을 나이도 아닌데 돌반지를 팔러 왔다가 또 어느 날은 결혼 반지를 팔러 와요. 그리고 목걸이에 써진 글자가 전단에 써진 글자랑 똑같아요.” 기다리던 제보가 마침내 도착했다. 경찰서와 멀지 않은 진주 중앙시장에 있는 금은방이었다. “방금 전에도 왔었어요. 아 저기, 버스 타러 간 저 여자에요.” 금은방 주인이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다급하게 가리켰다.
경찰서로 동행한 A(46)씨는 목욕탕에서 훔친 물건이라고 발뺌했다. 그가 절도 장소로 지목한 목욕탕 주인은 ‘금시초문’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추궁의 강도가 점점 세지자 그제서야 A씨는 “남편이 훔쳐온 물건”이라고 털어놨다. 보름이 지나 A씨 집 앞에서 잠복하던 형사들이 집으로 들어오던 신모(43)씨를 검거했다. 살인 발생 후 두 달이 지난 12월 7일,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서로 연행됐다.
신씨는 순순히 절도 혐의를 시인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진주 시내의 빌라나 원룸에 들어가 2,200만원 정도 금품을 훔쳤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남편 신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A씨 진술을 확보했지만, 신씨 입에서는 ‘그날 있었던 살인’과 관련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 신씨를 구속하고, 차근히 조사하기로 했다.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아니다’라며 부인부터 하는 대부분 범인들의 입을 열기 위해선 무엇보다 증거가 필요했다. ‘내가 범인인 걸 경찰은 모를 거야’라는 믿음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이 경위로서는 어떻게 신씨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보통 강력팀 형사들은 전방위로 용의자를 압박하고 밀어붙이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 경위 눈에는 범죄의 흉악성에 비해 내성적이고 소심한 신씨의 성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식으로 추궁했다가는 오히려 겁에 질려 숨어버릴 수도 있었다. 팀원들을 한데 불러모은 이 경위가 입을 열었다. “절대 압박하지 마라. 오히려 잘 해줘라.”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사다 주고, 몸은 괜찮은지 물어봐라. 절대 반말도 하지 마라. 존중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라.”
신씨를 조사하기 시작한 지 나흘째, 이 경위가 신씨를 유치장에서 불러냈다. 새벽 3시쯤이었다. 피해자가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시간이었다. “오늘 우리가 가볼 데가 있는데, 여기도 10월 달에 귀금속을 도난 당한 곳이거든. 혹시 여기도 당신이 훔친 곳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 수사팀이 신씨를 인사동 사건 장소로 데려갔다. 사건 이후 가족이 모두 떠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경찰에 양 팔을 붙잡힌 채로 피해자가 숨져 있던 안방과 거실, 베란다를 차근차근 둘러보던 신씨 몸이 차츰 떨려왔다. “이 장소가 기억나느냐”는 질문에는 도리질을 했지만 수사팀 보기에 신씨는 분명 10월 4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현장검증을 끝낸 뒤 신씨를 유치장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며 한마디만 남겼다. “우리 오늘 다 사무실에서 잘 거니까, 먹고 싶은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좋고.” 신씨가 잠시 멈칫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샌 채로 아침이 밝았다. 구내식당으로 향하던 이 경위를, 신씨가 할 말이 있다며 불러 세웠다.
“경위님 다 알고 계시는 거죠. 맞아요. 그 아줌마, 제가 죽인 거 맞아요.” 살인 사건 범인이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안도와 기쁨,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신씨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아줌마 말고도, 제가 사람을 더 죽였어요.”
신씨 입에서 줄지어 나오는 자백은 듣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2000년 6월 7일 진주시 수정동 소재 한 청과상회에서 금품을 훔치다 발각돼 30대 종업원을 찌르고 도망간 것에 이어, 같은 해 진주시 상봉동 주택에서도 60대 부부를 살해했다고 신씨는 말했다. 이듬해 경기 성남시에서도 30대 주부를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살인 고백이 신씨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모두 사실이었다. 2000년 청과상회 살인미수와 상봉동 노부부 살인, 2001년 성남 주부 살인 모두 범인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들이었다. 신씨는 “어차피 경찰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 나를 떠보려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나같이 금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들키자 살해한 것이다.
인사동 주부 살해 역시, 유등축제가 열리고 있던 시장에서 1,000원을 주고 과도를 산 뒤 털 곳을 찾아 배회하던 중 작게 열려있는 창문을 타고 들어갔다가 피해자에게 발각되자 찌른 것이었다. “생활비가 없어서 그랬어요. 먹고 살려고.” 신씨가 털어놓은 범행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신씨가 훔친 금품은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금목걸이와 돌반지, 도합 100만원의 금품이 전부였다. 2010년 12월 11일 경찰은 마침내 사건을 마무리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신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8년째 복역 중이다.
진주=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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