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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간암으로 떠난 충격 때문인지… 아들이 밥 먹듯 무단결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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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망 당시 아들은 초등 6학년
중학생 되면서 담임에게 대들고
아픈 친구 옆 떠든 아이들에 욕설
학교 간다고 말만 하고 무단결석
“아들이 저랑 말도 하기 싫어해요”
가족들 각자 아픔 견디고 있어
“네가 이제 가장이다” 두려운 아들
두려움과 막막함이 우울증으로…
학교 안가면서도 죄책감 클 것
“등교보다 아픈 마음 다독여줘야”
중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3년 전 간암 4기 판정을 받은 남편이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슬픔도 잠시, 요즘은 중학교 3학년인 아들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아들은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결석을 했어요. 점점 무단 결석이 잦아지더니 지금은 학교에 가지도 않고 휴대폰만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깨우고, 어르고, 화를 내봐도 아이는 일어나지 않아요. 늦게 일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면 밥도 먹지 않고요. 아빠의 죽음 이후로 저와 대화조차 잘 하지 않는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조언이 필요합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남편은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어요. 시어머니가 낮에 간병을 하고 저는 퇴근 후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남편을 돌보고 출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던 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남편의 죽음으로 저 역시 힘들었고, 그 이후에도 회사 일이 바빠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요. 남편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였어요. 제가 아주 다정한 편이 아니라서 아들이 아빠를 더 그리워하는 걸까요?
사실 아들이 힘들다는 내색을 크게 하지 않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초등학교는 그럭저럭 잘 지나갔어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가을, 담임선생님이 아들의 심리상담을 권하더라고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시켰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대들고, 여자 아이들이 아픈 친구를 옆에 두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욕을 했다는 겁니다. 겨울방학에 상담을 시작했지만 아이가 ‘의미 없다’, ‘가기 싫다’고 하면서 상담을 거부해 두 달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상담선생님은 아이가 아빠의 죽음 후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갖지 못했다고 해요.
주말에만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 하며 지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자포자기인 것 같아요. 결석이 너무 잦아 학교에서는 수련회 참석이나 졸업사진 촬영을 만류할 정도예요. 차라리 학교를 그만 두라고 해도 다닌다고만 합니다. 자기는 학교에 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났다가 다시 침대에 눕는 걸 보면 속이 상합니다. 거짓말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담임선생님이 ‘학업중단 숙려제’라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상담을 받고 출석을 다 인정해주는 건데, 아들은 여전히 상담을 거부합니다. 학년이 유예되면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아요. 매일 학교에 간다고 말만 하고 가지 않는 일이 반복되니 가족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저도 처음엔 믿고 기다려 주었지만 이제는 정말 답답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 동안 “엄마는 네가 학교를 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네가 학교를 갈 수 있겠니? 네가 정 학교를 가기 싫다고 하면 네 의견을 존중해 줄 거야. 그런데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대화를 시도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저와 말을 하기 싫은지 “어” “아니” 라고만 답합니다. 이제는 밥 차려주고 간식 챙겨주는 정도만 하고, 대화도 “양치질 해야 한다” “일찍 자야 한다”와 같이 필요한 말만 하고 있어요.
지난 겨울 제가 회사를 그만 두게 돼 아이들과 2박3일로 일본 여행도 갔어요. 함께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었어요. 여행에서 터놓고 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습니다. 아들은 휴대폰만 들여다봤고, 놀이공원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더라고요. 둘째인 딸 아이는 저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에요. 학교 생활도 잘 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습니다. 다만 주위에 바람직한 남성상의 성 역할을 볼 기회가 없는지 남자에 대한 불신이 많고 오빠와 전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제가 본인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게 싫은 것 같아요. 최근엔 제가 이야기하다 눈물까지 흘렸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책임지라고 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휴대폰을 없애버리고 학교를 가든 말든 내버려 둬야 할까요? 저도 얼마 전 정신과의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처방 받아 먹고 있어요. 정말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유경진(가명ㆍ46세ㆍ회사원)
경진씨와 아들, 딸은 모두가 마음의 아픔이 깊군요.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가 아픕니다. 그리고 가족들 모두 너무 외롭네요. 서로가 이 외로운 마음을 부둥켜 안고 소리 내 마음껏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요.
경진씨는 물론 두 아이도 이미 아픈 자신의 마음이 더 다칠까 봐, 나아가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면 가족들이 더 아프게 될까 봐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정서를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은 아프고, 공허하고, 무력합니다. 지금 경진씨 가족은 서로를 원망도 할 수 없어요.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경진씨가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지 못한 것도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에요. 어느 누구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이런 이야기조차 서로 꺼낼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경진씨의 아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볼게요.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정상 애도 기간을 보통 두 달 정도로 봅니다. 그 때까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 따라 죽고 싶은 마음도 들고 눈물도 나요. 8주가 지나면 대부분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며 일상생활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정상 애도 반응이 6개월을 넘어가면 정신의학에서는 우울증으로 진단해요. 지금 경진씨의 아들은 우울한 상태가 맞습니다.
정서적 분화가 충분히 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겉으로 보기엔 얼마나 슬픈지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가면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경진씨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상담을 권유한 시기가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아버지를 잃고 6개월 정도를 보낸 시기였어요. 친구가 아픈데 옆에서 웃고 있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에게 욕을 했다고요. 아들은 아픈 친구에게 감정이입을 한 거예요. ‘사람이 아픈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 화가 났을 거예요. 욕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평소에 안 하던 행동문제로 ‘가면 우울증’ 증세가 표현되다가, 침체된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 마음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고 싶어요. 저는 경진씨의 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들에게 “이제 네가 가장이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까요. 경진씨의 사연에는 언급돼 있지 않지만 아직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살펴봤을 때 저는 그렇게 짐작해요. 아들은 가장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암담하고 막막했을 거예요. 게다가 엄마인 경진씨가 힘들어 하는 모습도 아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엄마를 울리는 건 아들 자신이기도 합니다. 아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자신 때문에 엄마가 울면 죄책감을 느낄 거예요. 저는 아들이 경진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엄마가 싫은 게 아니라 미안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경진씨 아들은 사춘기이기도 해요. 사회적 규범, 남성으로 정체성 등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시기예요. 그런데 지금 주변 어른들과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이 ‘학교’에 집중돼 있을 겁니다. 경진씨도 학교에 갈 건지, 안 갈 건지를 물어요. 담임 선생님도 학교에 나올 건지, 유예할 건지를 물을 거예요. 아들도 학교를 가는 게 옳다고는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학교를 간다고 대답합니다. 정말로 학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무력감이 쌓인 아이는 다음날 늦게 일어나요. 교실문을 열고 중간에 들어가는 민망함을 이겨낼 자신도 없는 것 같아요. 학교는 하루 나가지 않으면 다음 날 더 가기가 어려워집니다. 걱정도 될 거예요. 학교에 있을 시간에 밖에 돌아다니는 게 마음으로 용납이 안 돼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주말에만 PC방에 가는 겁니다. 학교 가는 걸 우습게 생각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다만 새 학년이 됐을 때 적응하는 시기를 놓쳐 버렸고, 학교에 가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거예요. 경진씨 아들의 마음도 복잡할 거라고 봅니다.
경진씨는 아이가 더 나빠질 만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러니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다만 저는 경진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데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들의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목표점이 등교시키는 것이든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든 결국은 학교가 주제입니다. 이걸 버리지 않으면 아들과의 관계 개선이 어려울 거예요. 아들과 나눌 대화 주제가 학교밖에 없으니까요.
경진씨와 아들에게는, 아들이 아빠를 잃고 얼마나 힘든지, 주변에서 힘내라는 말이 부담이 되진 않았는지, 엄마도 이렇게 힘든데 어린 아들은 얼마나 막막했는지, 아버지를 떠나 보낸 아들과 남편을 보낸 엄마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학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경진씨는 아들의 등교문제를 좀 내려 놓아야 해요. 그래야 껍질을 깨고 그 안으로 들어가 아들과 진정한 아픔을 이야기하고 치유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일단 경진씨가 학교를 내버려 두면 좋겠어요. 학교 행정에 따라 정말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결석이 쌓인다면,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아들이 학교에 가면 가는 거고, 못 가면 마는 겁니다. 더 이상 모자간의 핵심 대화 주제로 학교를 거론하지 마세요. 학교 얘기 빼고도 아들과 할 이야기는 많습니다. “오늘 퇴근이 늦는데, 아들은 그때까지 뭐 할 거야?” “주말에 친구랑 어디 갈 거야?” “혹시 용돈 필요하지 않니?” “저녁에 뭐 먹을까?”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를 하면 좋겠어요.
경진씨의 아들도 지금 마음이 아픕니다. 상처 난 부분을 어루만져 줘야 해요. 저는 지금은 학교보다 아이가 먼저라고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는 경진씨 아들이 경진씨를 싫어한다거나, 두 사람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와 대화하는 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심정인 거라고 생각해요. ‘남편을 잃은 엄마가 고생하며 나와 동생을 키우고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 다 가는 학교도 못 가고 있어, 사람들이 나한테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아들은 중3이 겪기엔 너무 무거운 짐을 갖고 있어요.
저는 경진씨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한 건 엄마로서 너무나 현명하고 용감한 결정이었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그걸 통해 경진씨도 남편에 대한 애도를 하며 힘든 마음을 회복하면 좋겠어요. 경진씨가 너무나 지쳐있는 것 같아요. 경진씨의 사연을 읽으며 간병하는 동안 정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달 동안 평생 쓸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아요. 경진씨에게도 마음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병원에서 전문의와 상담도 하고, 약도 드시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를 위해 대화를 이어가면 됩니다. 아들이 학교에 다시 가거나, 제 나이에 맞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엄마와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경진씨가 딸 아이와도 대화를 해보면 좋겠어요. 왜 오빠와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요. 경진씨 가족은 아버지와 남편의 상실이라는 너무나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가족들이 상대방을 위로하는 것보다 앞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내어놓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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