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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360˚] 알파팀→심리전단→십알단→드루킹 ‘댓글부대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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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좌파가 승리하면 우리도 없어진다. 그들이 다시는 이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박사모의 구호도, 어버이연합의 선동 문구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게시글의 한 대목일까. 그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과격한 발언의 주인공은 2012년 대선 당시 직원들에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던 원세훈(67) 전 국정원장이다. 그의 말에 등장하는 ‘종북 좌파’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비롯한 야권 후보들 전반을 아우른다. 수년간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몸을 던진 대다수는 노골적인 외압을 견디지 못하고 내쳐졌다. 그렇게 5년이 흐른 지난달 19일,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쫓겨났던 자리로 되돌아온 자들이 끈질기게 원세훈의 ‘유죄’를 증명해낸 것. 긴 기다림 끝에 얻은 단죄였다.
그러나 마음 편히 박수만 칠 수 없는 분위기다. 1세대 댓글부대가 퇴장한 자리에 2세대 댓글부대가 등장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방하며 포털 기사 댓글 창의 상단을 차지한 댓글들은 5년 전 상황과 겹쳐졌다. ‘친보수’ 댓글 부대의 계보를 잇는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막상 붙잡힌 4인은 뜻밖에도 오랜 시간 진보 정치 인사들을 지지해온 민주당원들이었다. 여론을 호도하는 댓글 부대는 진영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해왔던 것이다.
여론의 대세를 가늠해볼 단서, 정보의 신빙성을 평가할 기준. 오늘날의 댓글은 기능성은 물론, 최소한의 신뢰도 잃었다. 지금 당장 이 기사에 달리는 댓글 또한 누군가의 지시나 돈을 받고 ‘전략적’으로 작성된 것일 수 있으나,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당신이 보아온 것은 과연 ‘진짜 여론’이었을까. 댓글부대의 계보를 짚어본다.
국정원이 만든 댓글 알바단 ‘알파팀’
“건당 2만5000원~5만원 상당의 고료, 집회 현장에서 충돌을 찍어오면 20만원까지도 뛰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이명박(MB) 정권에 큰 타격을 가하던 2008년 봄, 당시 국정원은 ‘알파팀’이라는 이름의 민간 여론조작 단체를 만들었다. 국정원의 구체적인 조작 지침이 내려오면 10명 안팎의 우익청년들, 즉 ‘댓글 알바’들이 행동에 나서는 식이었다. 이들을 광화문의 한 식당으로 불러낸 국정원 직원들은 말했다.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여론을 바꾸는 일을 해주십시오.” 지시를 받은 청년들은 정권을 옹호하고 비판세력을 공격하는 글을 조직적으로 써내기 시작했다. 타깃은 당시 온라인 여론의 중심이었던 ‘다음 아고라’를 포함한 주요 커뮤니티. 아예 국정원 측에서 자체 제작해 건네는 게시물도 있었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붙여 넣기 된 게시글들은 오타까지 똑같았다.
‘양’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이었지만, 사람 수는 정해져 있고 한 사람이 쥐어짜 낼 수 있는 양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클릭수를 늘리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사이트의 검색엔진에서 키워드 순위를 올려 트래픽을 증가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국정원이 직접 제공했다. “악플이 달릴 때마다 틈틈이 들어와 답 댓글을 달 것. 여러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게시물에 ‘찬성’ 버튼을 여러 번 누를 것, 링크를 여러 사이트로 옮겨 클릭을 유도할 것.” 이 세심하고 꼼꼼한 매뉴얼에 따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정 정치세력과 노조뿐 아니라 법원, 헌법상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판사 개인까지 겨냥했다. 천지성 판사가 MBC PD수첩을 상대로 제기한 보수단체의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시키자 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편파 왜곡의 주둥이”라는 비하적 표현과 함께 “사법부는 제정신이냐”는 법원 전체를 겨냥한 과격한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큰 그림’은 주로 국정원이 그렸다. 민간 댓글부대 ‘알파팀’은 그들이 깔아 둔 멍석 위에서 재주를 넘는 식이었다. 대의는 ‘보수의 미래를 위한 건강한 여론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사실상 ‘매달 국정원에서 넘어오는 월급’이었다. 당시 알파팀의 리더를 맡았던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는 대기업 사원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돈(월 400만원 상당)을 가져가며 말했다. “이 활동은 푼돈이나 벌자는 목적이 아닙니다. 청년 보수 우파의 양성을 위한 Grand Design 가운데 있는 거죠.”
직접 뛰기 시작한 국정원… 범죄 일람표 2,120쪽
2008년 ‘알파팀’의 창단으로 시작된 댓글 여론 조작 활동은 2009년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하면서 이전과 위상을 달리하게 된다. 민간인 ‘알바’들로 구성된 점조직 형태의 댓글부대는 아예 정보원들이 직접 투입되는 국정원 내 ‘공식 조직’의 형태로 발전했다. 7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이 4개의 팀으로 분화하면서 보다 ‘진화된 조직성’을 갖추게 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이슈에 대한 친보수적 논지를 하달받으면, 국정원 직원은 지시받은 대로 자신이 전담하고 있는 포털이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집중 공략한다. 한 사람당 여러 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해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는 것은 기본. 직접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타깃으로 삼은 글에 찬성과 반대를 반복 클릭해 정부 여당과 보수 정권에 유리한 전략으로 베스트 게시판을 도배했다. 이후 수사에 나선 검찰이 당시 국정원의 인터넷 공작 내용을 찾아내 작성한 ‘국정원 범죄 일람표’는 무려 2,120쪽에 달할 정도다.
“놈현이가 저 세상에 와서 보니 아주 큰 죄가 많았군요~ 살아있을 때 잘하지~ 왜 거기 가서 죽어서 후회하나~ 좌빨 여러분~ 있을 때 잘하세요.”
2009년 6월 7일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이 글은 심리전단 직원의 대표작 중 하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정국이 경색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심리전단은 한 층 높은 수위로 수백 개의 비방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4대강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MB 정권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정원 키보드엔 불이 났다.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되는 정보를 수집해야 할 첩보기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 정보를 무한 생산해내고 있었던 격이다.
내부 조직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민간인 댓글 알바를 꾸준히 고용해 영향력을 높여나갔다. 차기 대선까지 손을 뻗치며 급기야는 꼬리를 잡히고 만 2012년 당시, 국정원 내 심리전단 산하 민간인 댓글부대의 규모는 무여 3,500여명이었다. 이들에게는 매달 3억원 안팎, 1년이면 3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 지급됐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국정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그래서 감사원의 감시 조차 받지 않는 돈, 특수활동비가 그 원천이었다. 특활비도 당연히 세금이다. 국민의 피땀으로 일궈진 돈이 결국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데에 쓰여온 것이다.
십알단도 댓글부대? 박사모는 사이버 전사?
“우리는 십만 명의 박근혜 알리기 유세단, 십알단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SNS 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한 윤정훈 목사는 속칭 ‘십알단’으로 불린 SNS 계정들을 운영하며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급기야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 소셜미디어 업체를 차리고 직원 7명을 고용해 계정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여론 몰이를 시도한다. 십알단의 활동에 새누리당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윤 목사의 형은 징역 1월 집행 유예 2년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검찰이 십알단에 대한 재수사에 나서면서 국정원과 윤 목사 사이에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과 ‘검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개 목사의 개별행동인 줄로만 알았던 ‘십알단’ 또한 국정원의 댓글 부대였을 가능성이 밝혀진 것이다.
“트위터 반응은 실시간이기 때문에 여론조사보다 훨씬 더 속보성으로 보도된다. 트위터를 장악하면 신문과 방송을 모두 장악하는 셈이 된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인 ‘박사모’는 18대 대선 당시 아예 “우리의 대권 플랜은 트위터 장악”이라는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실제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트위터 정복’ 특강을 개최하기도 한다. ‘www’조차 생소한 60~70대 노년층 회원들을 대상으로 트위터 가입부터 계정 만들기, 원하는 트윗을 무한 ‘리트윗(공유)’ 하는 법까지 ‘원포인트’로 가르쳤다. 이들의 트위터 장악 전략은 이랬다. 일단 맞팔률(누군가 자신을 팔로잉했을 때 자신도 그 사람을 팔로잉할 확률)이 100%인 사람만을 찾아 팔로우하면서 자신의 팔로워 수를 단기에 늘린다. 어느 정도 숫자가 확보되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글이나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글을 무한 리트윗(공유)을 해서 트위터 전체를 ‘박근혜 찬양’으로 도배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이버 전사대’로 불렀다.
정치적 잇속을 위해 뛴 ‘댓글부대 2세대’
오로지 ‘양’으로 승부하던 10년 전에 비해 오늘날의 댓글 공작은 고도로 발전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포털로 뉴스를 소비한다는 점, 기사의 내용 자체보다는 댓글 평가에 집중한다는 점을 이용해 댓글의 공감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동원(49)씨 일당은 아예 매크로 자동화 서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도 했다. (관련기사☞드루킹 일당 댓글조작 위해 매크로 서버까지 구축했다) 가동하기만 해도 클릭수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
주요 타깃이 커뮤니티에서 포털 뉴스 댓글창으로 바뀌며 여론몰이는 이전에 비해 더욱 교묘해졌다. ‘관심 있는 특정계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간에서 ‘불특정 국민 대다수’에게 전방위로 노출되는 공간으로 공작의 활동무대가 바뀐 것이다. 게다가 진보진영의 지지자들이 현 정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조작을 벌였다. 정치적 잇속과 당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선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혼란은 가중됐다. 강한 공권력이 개입한 ‘댓글부대 1세대’는 보수정권의 몰락과 함께 과거가 됐지만, 새로운 형태의 ‘댓글부대 2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댓글부대>(은행나무)를 저술한 소설가 장강명 씨는 출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자나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도 현재의 인터넷 환경이란 몇 사람이 작정하고 몇 달간 꾸미면 다들 속을 수밖에 없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의 소설에는 히틀러의 선전부장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명언이 등장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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